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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Aug 19. 2023

안심시켜 줄 어른이 필요해

안심 1인분 주세요

 모두가 안전한 울타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울타리가 망가졌거나, 아예 없는 사람도 많다.


 내게도 울타리가 없었다. 내 가족은 나를 안심시켜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개척 교회를 세우게 된 우리 집은 어린 내가 잘 자라기에 안전지대가 될 만한 환경도 아니었다.


 목회자 자녀들은 종종 부모로부터 신앙심을 강요당하곤 한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일마다 교회에 가는 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집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의무 중 하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 외에는 강요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외의 것들은 모두 방치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교회만 잘 나가면 되었다. 그뿐이었다. 덕분에 내게는 ‘자립성’이 생겼고, 동시에 ‘회피성’도 개발되었다.


 집안의 막내, 목사 딸, 방치된 양육 방식은 나를 ‘회피형 인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막내의 의견은 항상 가장 마지막에 묻거나, 아예 묻지 않을 때가 더 많아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목사 딸은 목사가 아닌데도 교회만 가면 과도하게 관심을 받아서 한껏 움츠러든다. 방치된 양육 방식에서는 누군가와 충분히 신뢰하고 애착할 만한 관계를 형성해 본 적이 없으므로 밖에서도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준다. 내가 회피형 인간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방치된 양육 방식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건 ‘감정의 방치’였다. 아빠는 나를 예뻐하다가도 내가 교회에서 조금이라도 감정을 드러내면 이상스러울 만큼 싫어했다. 한번은 교회에서 한 남자아이에게 맞아 울고 있었는데, 아빠에게 큰 꾸지람을 들었다. “어디서 맞고 와서 우는 게 창피하지도 않냐? 여기서 울지 말고 당장 나가라.”


 어린 나는 당시 무척이나 서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상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건과 함께 다른 여러 사건이 겹겹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밖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할 수 있는 한 감정을 숨겼다. 감정을 드러내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은 의식의 영역이었지만, 그것이 서서히 무의식의 영역으로 내려가고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집에선 방치, 밖에선 눈치. 이런 내게 안전지대라 할만한 곳은 없었다. 안심하고 내 마음을 드러낼 곳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것이 문제라고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잘 모르면서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나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남의 비위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친절한 나는 겉으로 볼 땐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속에서는 곪고 있었다. 가끔 사람들로부터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신비주의냐”는 말을 들었다. 나를 제대로 본 것이 맞았다. 남들이 내 감정이나 생각을 알 수 없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표출하지 않기 위해 꾹. 꾹.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안에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 생각이 많았고, 이름을 잃고 떠도는 감정이 많았다. 심지어는 내 생각이 뭔지, 내 감정이 뭔지, 나도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상황에 휩쓸려서 어떤 역할을 맡는 경우도 많았다. 원치 않는 일을 자꾸 하다 보니 마음은 점점 더 곯아갔다. 곪을 대로 곪아서 터지는 시점이 오면,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무책임하게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실제로 나는 학교에서 채플 시간에 피아노 반주를 맡게 되었는데, 어느 날은 피아노가 너무 치기 싫어서 무단결석해 버렸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원하던 대로 반주자가 바뀌어 있었다. 처음부터 하기 싫으면 안 하겠다고 하면 될 것을. 회피형 인간이란 이런 몹쓸 인간이다.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하지 않는 것은 나에 대한 학대였다. 그리고 적당히 하는 척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무책임함으로 표출하는 건 타인에 대한 학대였다.


 내게도 안전지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 감정과 생각을 잘 들여다보고 표출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내 안에 깊이 뿌리 내린 회피성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이어졌다.


 어린아이에게도 안심시켜 줄 어른이 필요하지만,

 어른에게도 안심시켜 줄 또 다른 어른이 필요하다.


 안전지대가 없는 사람은 어린이든 어른이든 바깥 세계를 탐험하거나 타인과의 교류를 맺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내게도 안전지대가 될 어른이 한 명만 있었더라면, 나 자신을 이렇게까지 방치하고 학대하지는 않았을 텐데. 언제까지나 부모님의 양육 방식을 물고 늘어질 수도 없고, 지나친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싫지만, 이렇게 흘려보낸 어린 시절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이 늘 안 좋기만 하란 법이 있던가. 내게도 안전지대가 생기는 시점이 있었다. 안전지대가 될 만한 ‘진짜 어른’을 만난 것은 나 또한 어른이 되고 난 이후였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황금기였던 나의 20대 초반 시절, 빕스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빕스는 스테이크가 메인 요리였지만, 레스토랑 입장에서나 그랬고, 고객들은 주로 샐러드바를 이용하러 왔다. 사실상 뷔페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가 상당했다. 직원들은 하루씩 돌아가면서 그날의 담당자를 지정해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웠다. 무거운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은 고역스러웠다. 냄새는 둘째치고, 여자 혼자 들기엔 너무 무거워서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친구를 만난 그날도 뒤뜰에서 팔을 바들바들 떨며 쓰레기통을 비우려 하고 있던 날이었다. 이런 나를 보고 친구가 다가와 말했다. “무겁겠다. 도와줄게.”


 그날은 본인이 당번이 아님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를 도와주었다. 회피형 인간인 나는 웬만해서는 타인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데, 인류애 넘치는 이 친구에게는 마음이 활짝 열렸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친구는 나의 안전지대가 되었다.


 친구는 일터에서 내게 아낌없이 힘이 되어 주었다. 크리스천도 아니면서 “교회에 같이 가보지 않을래?” 라는 내 제안에 흔쾌히 내가 다니던 교회에도 몇 번씩 나와주었다. 세상이 무너질 만큼 힘든 일을 당했을 때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며 두 팔 벌려 나를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토닥토닥’은 정말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우리의 신뢰 관계는 그때로부터 벌써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친구는 여전히 나의 안전지대다. 내 감정과 생각을 안심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이야기를 해도 경청하며 공감해 주는 사람, 잘못된 길로 갈 때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사람, 가족도 아니고 자주 만나지도 못 하지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 우리에겐 그런 어른이 필요하다.


 최근 나는 두 명의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새 나도 누군가의 안전지대가 될 만한 어른이 된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친구를 통해 누렸던 안전지대의 수혜를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 또한 누군가에게는 안전지대 같은 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 필요하다. 나도, 당신도.



사진: UnsplashBelinda Fe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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