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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Mar 13. 2024

말이 필요 없는 관계는 없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내 마음을 알아줘, 라는 생각이 밖으로 튀어 나갈 때는 왜 그렇게 날카로워지는지 모르겠다. 둥글둥글한 탄알 같은 생각에 방아쇠가 당겨지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땐 총소리를 내며 상대를 관통해 버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지!”


 그렇게 내뱉고 나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된 말에 불만스러워서 나 자신이 미워지고, 괜히 상대까지 미워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더 뾰족하게 군다. 심술을 부린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이야, 그래서 어쩔 건데!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특히나 연애에 있어서는 더욱더. 나는 평소에도 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영 서투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애인과의 소통에 쥐약이었다. 내 마음이 밖으로 나올 땐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듯이 삐뚤빼뚤거렸다. 그리고 종종 남자 친구에게 “말하지 않아도 알라”는 초인적인 사랑을 요구하곤 했다. 자, 이제부터 너는 내 생각을 읽는 초능력을 발휘해. 내가 원하는 걸 알아내.


 하지만 고백하건대, 사실은 나도 내 마음을 모르면서 남자 친구에게 떠넘긴 순간도 있었다. 남자 친구는 미제 사건 같은 내 마음을 앞에 두고 몹시 난감해했다. 사건은 해결해야겠지만, 단서는 하나도 없는 그런 미제 사건이었으니까.


 미제 사건을 풀다가 지친 예전 남자 친구는 나와 헤어지면서 내게 충고 한마디를 했다. “그거 아니? 넌 정말 멋대로야.”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게 늘 잘해주기만 했던 남자 친구였기에 더 충격이 컸다. 충격이 좀 가시고 나서야 내 모습이 어땠는지 진실한 눈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그래도 그 이후의 연애는 한동안 괜찮았다. 그러나 결혼해서 다시 한 번씩 초능력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표현에 서툰 나는 내 요구를 입 밖으로 나이스하게 꺼낼 줄 몰랐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차려 주길 바랐다. 그러다가 상대가 알아주지 않으면 혼자 서운해했다. 서운하다는 말을 꺼내는 타이밍은 늘 대중없어서 남편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내 마음도 잘 알 거야, 라고 넘겨짚은 세계에는 찬 바람만 불었다.


 그런데 반대로 남편도 표현에 서툰 사람이었다. 나와는 조금 다른 결로, 남편의 문제는 원체 말이 없고, 말을 하더라도 표현이 러프하다는 것이었다. 말이 많은 사람도 상대를 피곤하게 하지만, 가만가만 침묵을 고수하는 사람도 이 못지않게 상대를 피곤하게 했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어떤 상태인 거야? 어떤 의도인 거야? 그 행동은 왜 그런 거야? 남편을 향한 내 말에는 물음표가 많이 달렸다.


 신혼에 그렇게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스크린에서 나왔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말은 아름답고 훈훈하지만, 현실에선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으레 짐작이 우리의 복잡하고도 다양한 감정을 묵살해버린다.


 사랑할수록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잘 표현해야 한다. 건강한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관계가 아니라, 대화를 잘 나누는 관계다. 그런데 그러려면 상대와 소통하기 이전에 내 마음이 뭔지, 내 생각과 감정이 뭔지,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 결국 나를 더 깊이 알고, 나 자신과 잘 소통하는 것이 모든 관계의 근원이 아닐까. 


 오늘은 나에게 더 말을 걸어본다. 오늘 나의 하루는 어떤지. 어떤 기대를 가지고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사진: UnsplashAndrew N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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