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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n 26. 2023

포용하는 자의 세상은 평온하다

때로는 먼저 포용하는 마음이 얽혀있던 실타래를 쉽게 풀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좀비처럼 출근하던 어느 날 아침,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본 한 영상 클립이 내 뇌를 깨웠다.


 “저희는 누가 미우면 그냥 사랑해 버려요. 그게 마음이 편해요.” 


 <서울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독립 영화 감독이자, 구교환 배우의 연인인 이옥섭 감독이 한 말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해외에 나갔을 때, 버스에서 어떤 여성분이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어요. 냄새도 나고 싫었죠. 그런데 이 여성분이 내 작품 속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사랑스럽더라고요.”


 그녀는 타인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꾸었다. 사랑해 버리면 싫은 사람이 없고, 다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그녀의 말에서 기시감이 들었다.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이 구절을 마주할 때면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강한 결단력이 필요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억압적인 어조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온도가 달랐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퍽퍽한 바게트 빵과 같이 다가왔다면, 그녀의 말은 입 속에서 살살 녹는 슈크림 빵처럼 들어왔다. 바게트 빵으로 깨우지 못한 좀비를 슈크림 빵이 깨우고 말았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요즘은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고, 상처 주는 사람은 거리 두고, 손절(관계를 끊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서 미운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겠다는 그녀의 태도는 그동안 사랑의 가치를 잊고 산 게 아닌지 반추하게 했다.


 우리에게는 왜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걸까?

 미움을 사랑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일례로 직장에서 많은 이들이 마주하기를 꺼리는 동료가 한 명 있었다. 이유는 이 동료가 타 부서의 영역에 간섭을 심하게 하고, 심지어는 타 부서 영역의 업무를 침범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이들처럼 그 동료를 전심을 다하여 미워하진 않았지만, 지속적인 선 넘기와 불필요하게 요청하는 업무로 약간의 귀찮음을 느끼고 있었다.


 ‘미우면 사랑하라’는 이옥섭 감독의 말처럼 과연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머뭇거리는 마음을 한편에 넣어둔 채 동료에게 티타임을 요청했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해 주자는 마음으로 동료를 만났다.


 놀랍게도 나의 태도가 달라지니 그의 태도도 달라졌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다. 티타임이 끝나갈 무렵엔 나를 바라보는 동료의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만 같아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동료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고 인정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는 본인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약간의 상처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리고 대화의 후반전에서는 내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까지 털어놓았고, 나아가서는 인생의 조언까지 해주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라, 같이 일하는 것이 훨씬 쉽다, 혼자만 잘나면 주변에서 질투만 생길 것이다, 편을 잘 들어줘야 한다는 류의 이야기였다.)  바깥으로 비치는 그의 모습은 다소 거칠어 보였지만, 사실 그는 겉보기와 달리 여리고 겸손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관계를 손절하면 일시적으로는 마음이 편하겠지만, 무조건적인 손절만이 답은 아닐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때로는 먼저 포용하는 마음이 얽혀있던 관계의 실타래를 쉽게 풀기도 한다.


 이후로는 그 동료를 꺼리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깝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그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 때면 대신 나서서 옹호해 주기도 했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그 또한 좋은 면도 있는 사람이다. 열정 많고, 순수한 사람일 뿐이다.”라고 말이다.


 내 의지에 따라서 사람을 향한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나니,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이 꼭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미워하는 마음은 자기중심성에서 생겨날 때가 있다. ‘내가 옳다’ 혹은 ‘내 방식이 맞다’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때로는 내 감정 상태가 좋지 않거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아서 상대의 작은 행동이 괜히 미워 보이기도 하니, 이런 경우엔 더더욱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 아니던가. 그래서 마음속에 미움이 생긴다면,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어떤 때는 상대가 정말 이상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이상한 적이 없나? 살면서 이상한 적이 너무 많아서 다 나열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인간은 그저 다면적이고,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구나 - 하며 포용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타인에게는 물론이고,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미워도 참는 것이 소극적 대처라면, 미워도 사랑하는 것은 적극적 대처다. 무턱대고 참는 대신에 미운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나아가 포용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로 한다. 나의 세상이 평온해질 수 있도록.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법정 스님의 <봄여름가을겨울> 중 -



사진: UnsplashIrina Grotkja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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