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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Nov 03. 2023

피아노 학원에 마녀가 산다

나는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저 여자, 마녀야.”

 우리 동네에는 큰 닭장이 하나 있다. 큰 닭장 안으로 들어가면 공간이 두 개로 나뉜다. 닭들이 주로 모여있는 가운데 공간이 있고, 벽 쪽으로는 10개의 작은 방으로 또다시 분리되어 있다. 작은 방에는 보통 닭이 한 마리씩 들어가 있다. 작은 방에 들어간 닭들은 일정 시간 동안 그 공간에 갇혀서 악보에 따라 피아노를 쳐야 한다.


 그 닭장의 이름은 '호산나음악학원'이다.


 나는 작은 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닭이었다. 그 안에 한 번 들어가면 매번 똑같은 걸 열 번씩, 스무 번씩 쳐야 했다. 그 과정은 너무 재미없고 지루해서 대개는 한 번 쳐놓고 두 번 쳤다고 표시했다. 나의 뻥튀기 스킬은 이때부터 개발되었다.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재미있는 일은 그저 코딱지를 파면서 친구들이 남겨놓은 낙서를 구경하는 일이었다. 간혹가다 다른 친구의 코딱지를 발견하는 날도 있었으니, 혼자 있을 때 유독 콧속의 코딱지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건 국룰인가보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에 새로운 피아노 선생님이 왔다. 그녀의 등장에 아이들이 술렁였다. 왜냐면 '호산나음악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자한 웃음을 머금고 다니는 원장 선생님과는 생긴 게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풍채는 한눈에 봐도 원장 선생님의 2배가 족히 넘는 듯했다. 수수한 원장 선생님과 달리 두둑한 화장을 한 그녀는 왠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지나치게 팔랑거리는 속눈썹은 태풍도 일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무언가 잘못될 것 같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와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30cm 투명 자를 들고 내 옆에 앉았다. 피아노 칠 건데 왜 자를 들고 왔지? 피아노를 자로 칠 건가? 처음 몇 분까지도 나는 자의 용도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타악!

 "으악!"


 자가 내 손등을 공습했다. 나는 놀라 피아노에서 손을 뗐다. 손등이 살짝 얼얼했다.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다가 자로 손바닥을 맞은 적은 있지만, 손등을 맞은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는 말썽을 피운 것도 아닌데 왜...? 영문도 모른 채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진한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눈으로 말했다. ‘대체 왜?’ 그녀는 내 눈을 보지도 않고 호통을 쳤다. 이번엔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발성이 아주 좋았다.


 "손등이 내려갔잖아! 손등 세워야지!"


 손등을 왜 세워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맞지 않으려면 손등을 세워야 하나 보다 싶었다. 이번에 다시 손등을 세우고 피아노를 쳤다. 조금 있으니, 손등이 아까 맞았던 걸 까먹고 또 내려갔다. 긴 자는 다시 매몰차게 내 손등을 타격했다. 타악! 으악!


 "손등!!"


 악보를 따라가면서 피아노를 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대체 손등을 어떻게 계속 신경 쓰느냐는 말인지! 그 뒤로도 그녀와 나의 환장의 하모니는 계속되었다. 타악! 으악! 타악! 으악!


 자가 때린 것은 손등이 아니라 심장 같았다. 엄청나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무지하게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첫 수업이 끝나고 나는 원장 선생님을 찾으며 닭처럼 두리번거렸다. '원장 선생님...' 마녀를 만나고 나서야 내 옆에 있던 천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제 호산나음악학원은 사라졌다. 지옥의 음악학원이었다. 이후로도 나는 한동안 원장 선생님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정말로 닭이 된 기분이었다. 원장 선생님에게서 나던 특유의 풀 냄새도 그리웠다. 그러나 원장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바쁜 건지 도통 보이지 않았다.


 마녀와의 수업은 계속되었다. 수업에서 한 대라도 맞고 나면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마녀를 만나고부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공간도 바뀌었다. 나는 원래 작은 방에 갇혀있는 걸 가장 싫어했는데, 이제는 마녀에게 레슨받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공간이 최고로 싫다. 나는 학원에서 친구들에게 그녀의 정체를 누설하고 다녔다. 만나는 친구마다 귓속말을 해댔다. "그거 알아? 저 여자 사실 마녀야."


 마녀에게 맞는 날이 늘어나니 복수심이 올라왔다. 복수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로 보나, 덩치로 보나, 나는 마녀에게 한 입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세계는 냉혹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힘으로 안 되는 건 확실하니까 색다른 복수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작은 방에서 코딱지를 파던 중에 묘안이 떠올랐다. 마녀는 까탈스러우니까 분명 코딱지를 싫어할 거야! 그러니까 마녀에게 몰래 코딱지를 묻히자. 방법을 떠올린 나 자신이 심히 자랑스러웠다.


 드디어 마녀에게 레슨받는 시간이 왔다. 나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마녀 옆에 앉으면서 동시에 미리 준비해 둔 코딱지를 마녀의 치맛자락에 슬쩍 묻혔다. 작전은 한번에 성공이었다. 그리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마녀가 코딱지의 존재를 발견해야 좋은 건가? 아니면 발견하지 못해야 좋은 건가?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지만, 발견하든 못하든 내 기분은 통쾌했다.


 다음 수업에서 마녀는 저기압 상태였다. 학원 친구들과 '마녀가 오늘 왜 저럴까'를 이야기하던 중에 누군가 말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아마도 차였나 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확신했다. 그 남자는 분명 마녀의 치맛자락에 붙은 코딱지를 보고 도망갔을 것이라고. 코딱지의 대승리였다.



사진: UnsplashLorenzo Spol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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