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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vision Jun 11. 2023

23.03.04 기록 : 진짜 해?

그럼 일단 계약을 해보자.

레이지비전 이전에 백양세탁이 있었다.


이 작당모의의 중심은 Y였다. 공간에 대한 가장 큰 열정과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가게 기준 도보 1분 거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미 사장이 될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할까. 나와 Q는 직원 겸 자금줄이 되기로 했다.


게다가 Y는 사업자 등록이 '가능할 것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회사의 공식적인 정책은 아니다.) Y는 대표님과 약속을 잡았다. 공식적으로 공이 굴러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Q와 나는 각자의 동상이몽에 빠졌다. Q는 재밌겠다는 말을 반복했고 나는 이렇게 진짜 흘러가는 건가, 괜찮은 건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하려고 보니 귀찮은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과 조금 더 재밌게 놀아보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합리화를 하며 소식을 기다렸다.


다행히 Y는 회사에서도 항상 공간을 운영해보고 싶었다는 염불을 외워왔고, 너그러운 대표님은 Y의 도전을 응원해 주기로 했다. '진짜로 하는 길'로 한걸음 더 다가간 순간이었다.


 결정이나기 전부터 Y는 인테리어 레퍼런스를 찾느라 바빴다. 어떤 공간으로 구성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단체방에 계속해서 던졌다. 느낌이 왔다. 아, Y는 하드캐리 뱃사공이 틀림없다. Q와 나는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Y는 조금 당황했다. Y의 취향과 우리의 취향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맞추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한 것 같았다. 맞다. 취향은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Q와 나는 회사생활을 통해 의지가 있고 잘 아는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효율이라는 경험적 지혜를 얻은 상태였다. 


와인을 제일 잘 아는 사람? Y다. 제일 많이 마신 사람? Y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과 전달하는 일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 그 역시 브랜딩 디자이너인 Y였다.


그렇게 계약을 결심한 우리는 건물주를 만나기로 했다. 든든한 지원군인 카페 사장님이 계약과 집주인의 성향 등에 대한 정보를 주신덕에 우리는 어느 정도 아웃라인은 예상한 채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은 사장님인 Y가 나섰다.  Y가 계약과 관련된 경험이 많은 것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Y가 가는 게 가장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기도 했다. 차분하고 신뢰감을 주는 말투, 선량해 보이는 인상.  Y는 무해함 그 잡채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 지점에서는 나는 조금 자신이 없었다.  가게 앞에서 건물주와 이야기하고 있는 Y를 보고 그대로 지나서 카페로 입장하기도 했다. 괜히 가서 어설픈 얼굴로 서있어 봤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Y는 잘 지나갔다고 이후에 덧붙였다....)


일단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니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주르륵 나열됐다.


첫 번째, 권리금을 받을 수 없다는 특약. 법적 효력은 없다고 하지만 인테리어 비용을 쓰고 이후에 나갈 때 원복을 해주는 비용까지 예상해 보면 권리금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었다.


두 번째, 이 작은 건물의 화장실은 임대 중인 세 개의 가게가 사용하는 곳이었는데, 이곳이 뒤로 연결된 주인집 주택 대문 바로 안에 있어 밤 11시까지만 사용하도록 제한을 건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예상한 영업시간이 최소 12시였기에 이 부분도 마음이 걸렸다.


세 번째, 보통 임대계약 후 바로 장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렌트 프리 기간을 2주, 길게는 한 달까지도 준다고 하는데, 카페 사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은 일주일이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Y의 마음에 가장 걸린 것은 가스 공사를 하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되면 음식을 모두 인덕션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공간에서 소품과 술 위주로 판매할 생각이라 대단한 요리를 할 것은 아니었지만 화력을 생각하면 좋은 방식은 아니었다.

Y는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는지 저녁 내내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앞에 맛난 마라샹궈와 꿔바로우를 놓고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 장소는 그런 조건을 차치하더라도 우리에게 좋은 곳임은 틀림없었다.


“그만 걱정해. 그냥 가는 거야.”


“그래! 그냥 가는 거야.”


“....”


Q와 나는, 아니 적어도 나는 그 장소 외에 다른 곳에 시도할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모든 조건이 완벽할 수가 있겠는가. Q도 옆에서 그런 곳이라면 보증금도, 월세도 더 비쌀 거라며 거들었다.


“그래, 일단 하는 걸로 하고 이야기해 볼게.”


나중에 이 어찌 보면 얼렁뚱땅 흘러간 결정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으니 우리는 가기로 결심했다. 어느 방식이든 무언가 우리에게 남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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