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무심코 스쳐가는 하나님 말씀에 가끔 나도 모르게 아멘~하게 된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와닿지 않는 말이 있었으니.. 바로 "네 원수를 사랑하라."
아니 내가 부처도 아니고, 예수도 아닌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해? 원수가 원수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을진대. 나한테 못되게 굴고, 함부로 대한 사람들을 사랑하라니. 이건 폭력이야!
미워했던 사람이 참 많았다. 내일 당장 죽어버려도 하나도 안타깝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워했던 사람도 있었다. 다시 돌이켜 봐도 그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백 가지 이유와 백 가지 상황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미워하면 안 됐을까?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증오의 역사가 찬란하게 꽃 피웠다. 와, 나는 정말 이런 사람들이 직장에 버젓이 나와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 아직도 신기하다. 내가 입사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을 일부러 처리 안 하고 뭉개고 있다가 민원을 키울 대로 키운 다음! "현 담당자 바꿔 드리겠습니다."라며 일언반구도 없이 전화를 돌려서 욕 폭탄을 듣게 한 자. "뭐야?"하고 뒤를 노려보니 이미 조용히 자리를 비우고 난 뒤였다.
숫자 하나 보는 것도 제대로 못 보던 50대 어르신. 어쩌다 한 번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겠는데 똑같은 실수를 연짱으로 해대다 신입사원인 나에게 민원을 떠 넘기고는 나 몰라라 했던 어르신. 동일인의 소행 같지만 다른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과 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화가 나고 스트레스받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마음의 상처를 키웠다. 내가 구축해 온 세계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사회에 발을 디디는 순간, 깊고 깊은 무력감의 진창에 빠졌다. 내가 이제까지 배운 바로는, 내가 싸 놓은 똥은 내가 치우는 것이 당연지사, 남한테 피해를 주었으면 사과를 하는 것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불문율이었는데. 저 인간들은 대체???! 저런 외계인들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런 기분을 키울수록 나는 고립되어 갔고, 남이 저지른 일들, 또는 떠넘긴 일들을 수습하며 내가 여기 있어야 할 필요를 의심했다.
온 힘을 다해 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해치우고 있었지만 인정 대신 돌아오는 것은 눈총이었다. 매일 우거지상을 쓰고 개저씨들을 대한 탓이다.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조용히 무탈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다. 전화기를 쾅쾅 내려놓고 에이씨를 연발하며 온몸으로 증오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내가 당연히 불편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못되고 나쁜 인간들이야 차고 넘쳤지만 이하생략하자. 한 사람만 더 얘기해야지.
이십 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최악의 상사는 단연 K부장이었다. K부장은 좋다고 소문난 사람이었다. 인간적이고, 소탈하다고 했나? 인간적인 것도 맞고 소탈한 것도 맞았는데 지나치게 인간적이고 소탈해서 문제였다.
K부장은 본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히면서 "예, 본부장님! K입니다!"라고 목청껏 소리를 높였다. 나는 그때마다 사무실에 내가 모르는 CCTV가 설치되어 있는지 K부장 주변을 빠르게 스캔했다. 그 광경은 고종황제와 통화하기 전에 전화기에 대고 네 번 절을 올렸다는 구한말시대 대신들을 떠올리게 해 애잔하기까지 했다.
본부장에게 조건 없는 충성을 바쳤던 K부장은 본부장의 종이자, 구박데기였다. 본부 내부평가에 구멍을 낸 K부장과 그 팀원들은 본부장의 눈엣가시였다. 복도를 지나가다 본부장이 보이기라도 하면 팀원들은 숨겨왔던 닌자본능을 발휘했다.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사라질 수 있는지 평범한 회사원도 의지만 있으면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러나 너무너무 인간적이어서 쉬운 남자, K부장은 본부장이 저녁 먹을 상대가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소환을 당했고 그렇게 당일 잡힌 회식에 우리도 줄줄이 끌려갔다.
K부장은 자기가 그러듯, 팀원들도 자기에게 조건 없는 충성을 바치길 바랐다. 어쩌다 한 번 휴가를 내는 것도 더럽게 눈치를 주었고 반차를 내고 두 시간을 더 일하다 가면 콧노래를 불렀다. 누군가 자기를 어렵게 여기고 눈치를 본다는 사실에 너무나 행복해하는 사람이었다.
'어딘가 사람이 좀 바보 같긴 하지만 불쌍하니까, 그래도 악랄하진 않으니까' 희한하게 착했던 부서원들은 나름 합리화를 하며 모두 K부장을 배려해 줬다. 성과도 안 나오는 일에 모두 야근을 하고 주말에 나와서 마트 앞에서 찌라시를 돌렸다. 이유는 하나, 맨날 본부장한테 구박받는 K부장이 원해서였다.
그리고 다음 해 인사이동 때 부서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아, 엑소더스가 이런 것인가. 나도 그 무리에 동참해서 적극적으로 이탈을 시도했지만 K부장이 중요시하던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강제 억류를 당했다. 그리고 곧바로 유산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그 과정에서 또 K부장의 인성의 바닥을 보며 나는 막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막 나가봤자지. 일은 일대로 다하고 예전 주특기를 살려 증오의 에네르기를 온 사방에 뿜어낼 뿐. 눈치를 잔뜩 보던 애가 야근도 안 하고 강제 회식도 빠지기 일쑤. K부장은 뒷말도 잘했다. 내 평판은 땅에 떨어졌고 나도 열심히 K부장을 욕하고 다녔다.
사실은 그전부터 K부장을 엄청나게 욕했다. 증오의 에너지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그 사람을 미워하면 눈빛으로, 피부로, 온몸으로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발산된다. 나는 단 한 번도 대거리를 한 적이 없었다. 부당하게 주어진 일도, 떠넘겨진 일도 다 했다. 그런데 내가 죽어라 미워했던 사람들은 아무리 둔한 사람이어도 내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나를 불편해했다.
"야, 모를 수가 있냐? 그렇게 똥 씹은 표정으로 "알겠습니다!" 하는데?" 친한 회사친구 Y가 말했다. 그래 모를 수가 없지. 그런데 내가 알아 버렸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누워서 침 뱉기다. 나쁜 마음이 담긴 말들은 입 밖으로 내뱉거나 손가락 끝에서 활자로 형태를 갖추는 순간, 그가 아닌 나를 향한 독침이 되어 버린다. 정말 죽도록 미워해 보고 나서 깨달은 사실이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을 때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이 모든 게 다 그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나의 행복 공장 운영에 차질을 빚게 해?
그런데 행복 공장 공장장은...바로 나지! 재료와 공정을 선택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 결정하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다. 공장의 연료가 되는 내 소중한 시간을 싫은 사람과의 불쾌한 경험을 떠올리고 분개하느라 다 써버렸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즐거워야만 하는 시간이 그들의 이야기로 오염됐다. 미워할수록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 때문에 온몸이 땅땅 굳어갔다. 몸이 안 좋을수록 체력은 달리고 기분은 더 안 좋아졌다. 더 짜증이 났다. 더 사람이 싫어졌다. 마법 같은 악순환으로 공장의 완제품은 행복 아닌 불행, 땅땅!
한때는 웬수 같은 말이었던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 까지는 못하더라도 덜 미워하고 덜 생각하는 것이 바로 너를 이롭게 하는 일이다. 고로 네 원수를 사랑... 까지는 못하더라도 아무튼 거시기하는 것이 바로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하나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