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오 남매 중 셋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1950년대에 태어난 엄마는 그 나잇대 사람치고 결혼이 늦은 편이었다. 나와 동생이 태어나기 전, 엄마에게는 참 지난한 세월이었을 그날들에 대해서 엄마는 거의 이야기한 적이 없다. 언뜻 지나가는 말로 들려준 엄마의 한 마디 한 마디로 나는 그저 엄마의 과거를 상상할 뿐이다.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엄마는 애살스러운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였을 것이다. 엄마의 아버지는 엄마를 각별히 예뻐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와 아이 다섯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엄마의 아버지는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지인에게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의 그 한 마디가 어린 엄마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과거를 입에 올리지 않는 엄마가 건넨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였기에 나는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엄마는 엄마에게 한없이 인색한 사람이었다. 다른 자식들에게 어땠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 다만 명절에 주워들은 정보로 짐작컨대, 남편이 집을 나간 이후 가장의 역할을 최대한 빨리 큰 아들이 맨 지게에 얹어 주었다. 큰 아들은 어린 나이에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어머니와 동생들의 존재가 참 버거웠을 것이다. 학교 대신 오늘 하루 식구들의 생존을 위해 생업의 현장으로 나갔을 한 소년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아주 먼 훗날, 내가 어렸을 때 평상시에는 한없이 온화해 보이던 큰 외삼촌이 '장남이 맡아야지'라는 말에 화가 나 주먹다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돌아왔을 때 나의 조리를 도우러 우리 집에 온 엄마는 미역국을 한 솥 가득 끓였다. 미역국을 한 술 뜨는 나에게 엄마는 한마디 툭 던졌다.
"느이 할머니는 너 낳았을 때 미역국 한 번 끓여주지 않았다!" 아, 엄마는 엄마한테 미역국 한 그릇조차 대접받지 못했구나. 외할머니에 대해서 항상 원망의 말을 늘어놓고 외할머니 항상 신경질적으로 할머니를 대했던 엄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소녀였을 때, 식구들 먹을 한 끼를 차려내는 것은 장녀인 엄마의 몫이었다. 매일 밖에서 돌아오는 큰오빠의 손에 뭐가 들려있을지 기대했을 것이고, 엄마의 엄마가 장에 나가 내다 팔만 한 것을 함께 구했을 것이다. 어느 날은 맛있게 차려낸 밥상에 성취감과 행복을 느꼈다. 어느 날은 빈한한 밥상머리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날을 세우며 생채기를 냈다.
밥은 엄마가 이 집에서 필요한 사람이란 것을 매일 증명해 주었다. 작은 소녀인 엄마가 외면하고 싶어도 밥 때는 꼬박꼬박 찾아 왔다. 엄마의 엄마는 엄마가 학교가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엄마가 아무리 울구불며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해도 엄마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애쓰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의 책걸상은 조금만 방심해도 손가락에 나무 가시가 박혔다. 그래도 엄마는 삐걱거리는 그 책걸상, 엄마의 자리가 좋았다. 그런 엄마의 마음은 엄마의 집에서 쌀 한 톨보다 하찮은 것이었다. 엄마는 엄마의 집에서, 어느 날은 최고의 요리사로, 어느 날은 무능한 부엌데기로 자기의 자리를 확인했다.
"나 없으면 다들 피죽도 못 끓여 먹을 거면서!"
엄마는 무시받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웠다. 엄마는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 바로 있는 힘을 다해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었다.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상대방의 마음에 불편함을 남길지언정 엄마의 존재감은 선명하게 새길 수 있었다.
엄마는 초라한 집구석의 부엌요정으로라도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무책임한 인간이었던 엄마의 아빠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 말고도 엄마가 기댈 구석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밥은 엄마가 살아도 되는 이유였다.
항상 바랐던 것은,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다. 흰쌀밥을 밥그릇 위로 산이 솟아오르게 담고, 고기를 볶고 생선을 구워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밥을 먹는 것. 온 가족의 칭찬이 엄마를 부드러운 보슬비처럼 적셔줄 수 있도록.
엄마는 아이들이 애원을 하거나 말거나 홀로 남겨 둘지언정 밥상만은 악착같이 곱게 차려 주었다. 엄마에 대한 원망이 밥상에 스며들어 그 밥이 꼴도 보기 싫은 마음 따위는 한 순간도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엄마는 밥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썼고, 밥을 차려줌으로써 자기의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를 만나면 불평부터 늘어놓는다. 방바닥이 끈끈하다. 냉장고가 어지럽다. 프라이팬은 닦은 게 맞냐. 불편함을 안기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새기는 엄마의 방식에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거부감을 느낀다.
아침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는 나인데 엄마는 나의 가족과 함께 지내는 날이면 분주하게 아침밥을 차린다. 밥은 항상 머슴밥처럼 가득 담아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밥을 덜어낸다. 평생 수박은 입에도 대기 싫어하는 나에게 엄마는 아직도 수박 먹으라며 수박을 내 온다. 엄마가 내 온 수박을 보면 나도 모르게 엄마처럼 잔뜩 인상을 쓰게 된다.
남루한 옷을 입은 한 소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학교에 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소녀의 자리는 어느 교실 안 작은 책상이 아니라 낡고 좁은 부엌 한편의 아궁이 앞이다. 불을 지피다가 연기에 눈이 따가워 눈물을 흘린다. 이러다 연기처럼 내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진다. 그래서 화를 낸다. 나 좀 봐달라고. 여기 내가 있다고. 그제서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여기 살아 있다. 나는 살아낼 것이다. 어떻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