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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Aug 07. 2024

엄마의 밥(2)

엄마는 밤마실이 잦았다.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나와 동생을 집에 남기고 나갔다. 엄마의 마실은 이른 저녁 시간에 시작됐기에 엄마는 항상 정성껏 저녁식사를 차린 후 때가 되면 챙겨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 집을 나섰다.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시각은 기약이 없었다. 12시 전에 들어온 적이 거의 없었다. 아빠가 없을 때면 아이들만 있는 집이 무서웠고 아빠가 있을 때면 엄마의 밤마실을 질색하는 아빠가 오늘 사달을 낼까 두려웠다.


고운 색동 밥상보로 덮여 있는 밥은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웠다. 차게 식었지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 미지근한 된장찌개, 식으면 비린내를 더욱 풍기는 생선. 나는 항상 그 밥이 먹기 싫었다. 배고파서 먹는 밥이, 나중에 안 먹었다고 혼날까 봐 무서워서 먹는 밥이 참 맛이 없었다.


작은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은 너무나도 커서 언제나 아이를 순식간에 집어삼킨다. 다섯 시쯤 되면 여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귀를 열었다. 그래, 거기로 갈게. 엄마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면 세상에서 제일 깊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울며불며 오늘만 나가지 말라고 사정했다. 어느 날은 악다구니를 쓰기도 하고 어느 날은 눈깔이 찢어지도록 있는 힘껏 엄마를 노려보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꽤 큰 시장과 인접한 주택가에 있었다. 주방기기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길을 지나면 시장의 입구가 나왔다. 시장의 입구에서 지하상가도 시작이 되었는데 지하상가 회센터에서 엄마의 오랜 친구분이 횟집을 운영했다. 작은 횟집 서너 군데가 옹기종기 모여있던 상가의 회센터는 한동안 엄마의 아지트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동생과 나는 단 둘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밤이 되고 동생이 먼저 잠이 들자 나는 엄마를 찾으러 가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주방기기 골목은 학교로 가는 등굣길이기도 했다. 익숙한 길이었지만 밤이 되면 칠흑같이 캄캄했다. 인적도 없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혼자 밤에 다녀서는 안 되는 길이었다. 설렘과 흥분, 두려움이 뒤섞여 내 가슴은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가면 밤에 위험한 길을 혼자 왔다고 혼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는 분명히 나와 함께 집에 돌아갈 거야. 엄마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을 거야.


나는 시장의 지하상가로 날듯이 달려갔다. 주방거리에 길가로 나와 있는 주방기기들은 시퍼런 비닐 보로 덮여 있었다. 이리저리 장애물들을 피해 가며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내달렸다. 나는 엄마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용사가 된 것 같았다.


엄마의 아지트인 횟집에는 엄마와 아줌마들이 테이블에 일렬로 앉아 술과 먹을거리를 잔뜩 늘어놓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나를 보고 다들 매우 놀라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숨 가쁘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집에 가자!"


엄마는 참 유감이라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주머니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어 주면서 나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과자 사 먹고 집에 가 있어. 나는 그 오백 원을 잠시 노려보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집으로 뛰어갔다. 등 뒤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몇 번 부르고는 이내 횟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집으로 갈 때는 올 때보다 백배 천배로 빨리 뛰어갔다. 엄마를 찾으러 가는 설렘보다 밤거리로 나 홀로 내보내는 엄마 때문에 느끼는 비참함이 내 등을 훨씬 세게 밀어냈다.


그 이후로 다시는 엄마를 찾으러 나가지 않았다. 부엌 한가운데 예쁘게 차려져 있는 밥상을 보면 왈칵 성이 났다. 발로 차서 국이고 밥이고 다 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단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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