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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Aug 03. 2024

엄마의 밥(1)

엄마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외면하고 싶은 불효녀가 된 이유

엄마는 내가 사는 구와 인접한 구에 사신다. 매주 목요일이면, 아이들을 볼 겸 문화센터 수업을 들을 겸 겸사겸사 우리 집을 방문하신다. 가장 큰 명목은 일하랴 아이 돌보랴 정신없이 바쁠 딸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엄마가 오시면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는 집이 치워져 있고 맛있는 저녁식사도 정갈하게 차려져 있다. 아이들도 할머니가 오시면 펄쩍펄쩍 뛰며 반긴다. 다만, 나는 몸은 편해지는 딱 그만큼 마음이 불편해진다.  


겨울 내내 그리고 봄으로 넘어가면서까지도 엄마는 기침으로 고생하셨다. 아무리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해도 낫지 않자 큰 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하셨다. 당연히 느껴지는 의무감에 엄마한테 휴가를 내고 병원에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됐다며 손사래를 쳤다. 엄마는 병원을 다녀와 우리 집에 온  날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내어 놓을 때면 왠지 모르게 살짝 격앙된 것이 느껴진다.

"진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 큰 일이면 어쩌지? 해서.

그러셨냐고, 많이 걱정 됐겠다고 따뜻하게 공감을 표하는 대신 왠지 모를 반감이 내 속에서 또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나는 엄마한테 시큰둥하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처럼 자기 몸을 극진히 아끼는 사람한테는 큰 병은 안 와~"


아마도 걱정하는 딸의 모습을 기대하고 이야기를 꺼냈을 엄마는 서운함에 왈칵 성을 내셨다.

"아니 병원에서 걱정이 돼서 눈물이 났다는데! 몸을 아낀다는 말이 왜 나와?"


엄마와 나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같은 언어로 이야기는 하지만 엄마의 문법과 나의 문법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70세가 훌쩍 넘는 고령의 엄마가 자기 몸을 아끼고 챙기는 것은 자식으로서 축복 같은 일이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서까지도 여전히 엄마가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질문을 억누른다.


왜 내가 아프다고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하는데 데려가지 않았어?

왜 내가 일주일째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하는데 못 들은 척했어?


왜 엄마는 엄마가 조그만 아파도 당장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끙끙 댔어?

왜 엄마는 나 때문에 엄마가 아픈 것처럼 느끼게 했어?


엄마의 보살핌이 없다면 살아남는 것이 어려웠을 유아기를 지나면서 엄마는 나에게 보살핌의 손길을 거두기 시작했다. 며칠 있으면 몇 주 있으면 나을 것을, 겉보기에는 튼튼한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엄마는 내가 아직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던 조그만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몸살이라도 앓을라치면 집이 떠나가도록 끙끙 앓고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굴었다. 엄마는 괴팍한 아버지 때문에 스트레스성 위염이나 신경증적 몸살을 달고 살았다.


엄마의 약봉투에 위염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물었다.


"위염이 뭐야?"

"응, 위염이 심해지면 위암이 되는 거야."


어린 나는 엄마가 아빠 때문에, 나와 내 동생 때문에 하루아침에 암환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엄마가 저 정도로 자주 끙끙 앓는데 당장이라도 암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의 끙끙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질 때면 나의 마음은 누군가가 슬라임처럼 쥐고 함부로 주무르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그렇제 작은 아이도 알고 있었다.


너 때문이야........

나 좀 봐줘..............


엄마가 앓을 때 내는 그 끙끙 소리가 그게 누가 됐건 자기를 봐 달라는 신호였음을 눈치챈 순간부터는, 나는 엄마가 앓는 소리를 낼 때면 진저리를 쳤다. "연기 좀 하지 말라고!" 내 속에서 끓어올랐던 말을 진짜 엄마한테 내뱉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반은 하고 반은 삼켰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건강체였던 나를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엄마는 병원에 잘 데리고 가지 않았다. 목소리가 천둥소리 같던 아버지가 나에게 윽박을 지른 날, 나는 너무 놀라서 벌벌 떨었다. 그리고 그 후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 잘 안 되었다. 가슴은 계속 쥐어짜듯이 아프고 숨은 계속 차고 나는 매일 엄마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가슴 위에 돌이 얹어져 있는 것 같았던 그 답답함과 통증은 먼 훗날, 집을 완전히 떠나고 나서야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며칠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져!" 엄마 말마따마 병원에 가도 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화병'이었으니. 그러나 엄마의 무대응, 무관심을 보며 그때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내 안에 생생히 남아있다. 엄마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엄마가 엄마를 소중히 여겨 달라고 나에게 신호를 보낼 때마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엄마가 나를 부당하게 대했던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나는 엄마한테 지랄발광을 했다. 일주일 동안 엄마와 말 안 하기. 이런 거지 같은 집구석 지긋지긋하다고 소리 지르기, 다른 사람에게 엄마 욕 하기. 경멸에 찬 표정으로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 마음에 그어지는 생채기가 느껴졌다. 그때마다 내 마음도 무너졌다.


반면, 엄마는 철옹성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상처를 줄 때, 그것이 상처가 될지 안 될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셀 수도 없이 많이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엄마와 함께 과거를 복기하면서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려고 할 때마다 엄마는 다 지나간 일을 왜 꺼내냐며 대화를 더 이어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완강한 태도에 나는 또 너무나 화가 났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단 하나였다.


"나 때문에 네가 힘들었구나."


여전히, 엄마가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면 나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듣고 싶지 않아서 시선을 돌린다. 누구에게도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던 나 자신이 자꾸 떠올라서. 너무 불쌍해서 눈을 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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