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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Jul 14. 2024

웃으면 복이 와요

마흔에 어울리는 품격 있는 얼굴

아버지는 항상 찡그린 얼굴이었다. 국민 일요일 저녁 TV앞에 모이게 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 만이 아버지를 웃게 했다. 우리집도 식사시간을 고는  가족이 모이는 유일한 시간이 그 때였다. 나는 아버지웃음소리가 들리면 엄청나게 위화감을 느꼈다. 그 기분을 뿌리치지 못하고 TV가 있던 안방 문을 꼭 닫고 나와 나 혼자만의 고요를 찾아 들어갔다.


엄마는 본인의 불편함을 온 얼굴에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심기불편'이라고 써 있는 듯한 표정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린 나는 엄마가 언제 신경질을 부릴지 몰라 항상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엄마의 얼굴을 살피고는 했다.


아버지는 항상 인상을 쓰고 있었고 엄마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고 있었다. 집에서는 웃을 일이 없었다. 집에서 언제 웃었더라... 생각해 보니 동생과 내가 만화 대여점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쌓아놓고 같이 읽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즐거운 일을 함께 나누며 웃는 일은 우리 가족에게는 없었다.


천만 다행히도 나는 즐겁고 신날 때 한껏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거나 코미디영화를 볼 때 박장대소를 한다. 드라마 속 남주가 너무 멋있을 때 나도 모르게 큭큭큭 웃고 있더라. 그래도 디폴트 상태의 뚱한 표정이나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릴 때 "뭐라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쓸 때면 종종 화가 났냐는 오해를 받곤 했다.


웃을 일이 있으면 웃지만, 애써 웃는다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억지웃음이란 감정 노동의 상징이었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거스르는 부자연스러운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딱히 웃을 일이 없는데 웃는 건 실없는 거 아닌가? 왜 불필요한 데 에너지를 쏟지?


왜인지 대로에만 가면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잠시 시간 있으면..." 절대 절대 헌팅이 아니다. 종교에 심취해 있는 그들이 자기네들 신의 가르침을 나에게도 전파하고자 지치지 않고 말을 건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이 문제로 골머리를 싸맸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힘들었던 나에게 '단칼 거절'이라는 필살기는 말 그대로 신의 영역이었다. 고심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은... 최대한 인상을 더럽게 구기는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인상을 최대한 더럽게.... 하려고 했지만 딱히 소용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근 이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도를 아십니까' 님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대신 만만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욕구가 내 표정을 더욱 뚱~하게 만들었다.




뚱한 표정이 잘하면 귀엽게 보일 수 있는 것도 정말 한때이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나이가 되고 나니 내 얼굴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피부과나 성형외과에 가서 시술을 받아볼 생각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려 보이는 얼굴이 아니라 나이에 어울리는 품격 있는 얼굴이다. 살아온 날들의 자취가 지혜로 드러나는 얼굴, 자연스럽게 은은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얼굴.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얼굴.


엄마, 아버지의 얼굴로 늙어가기 싫다. 삶의 지난함을 짜증과 분노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 나 역시 일상의 피곤함에 지쳐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남편을 맞이하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나는 결국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고단한 하루도 작은 깨달음으로 내 얼굴에 조화롭게 새기고 싶다.


요즘 부쩍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일주일에 3번, 새벽에 온라인으로 모이는 커뮤니티 활동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직 잠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이 노트북 모니터에 그대로 보였다.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그런 인상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입꼬리를 올리자, 눈이 크게 떠졌다. 일부러 웃는 표정을 지으면 힘이 많이 들 줄 알았다. 그런데 웃고 보니 기분도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지니 생각이 달라졌다. 회사로 출근하는 길이 꽃길은 아니어도 좀 더 산뜻한 기분으로 걸어가게 되었다.


우리집 둘째 뽀뽀는 항상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고 엄마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는 "냐하!" 하면서 흔한 남매 표정을 짓으며 배를 잡고 웃는다. 뽀뽀가 살아온 6년 동안 웃는 순간이 참 많았겠다. 나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웃었을까?6년 산 뽀뽀의 시간을 41년 산 내가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덜 웃은 만큼 앞으로 더 채워가지, 뭐.


즐거우면 웃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웃으면 즐거워진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뽀뽀 뒤를 따라가며 나는 웃으면서 발걸음을 뗐다. 딱히 웃을 일이 없음에도 웃고 있는 나 자신이 참 자랑스러웠다.


뽀뽀가 찍어 준 내 사진. 납량특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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