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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Oct 03. 2024

습관 - 나를 사랑하는 방법

나를 위한 일을 일상 속으로

습관 :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좋은 습관을 기르자.' 이렇게 따분한 말이 또 있을까? 하루에 3번 양치질을 하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 매일 30분은 운동하자... 같은 새나라 어린이를 육성하려고 했던 구시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문장이다. 그래서였을까? '습관'이라는 말을 참 싫어했었다. 꼰대가 늘어놓는 잔소리같이 따분하고, 나에게 태도와 행동을 강요하는 단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면 그걸로 족하지, 누구의 기준으로 '좋음'을 판단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종용하는 걸까? 습관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삐딱해졌다. '아, 네~ 그 좋은 거 댁이나 많이 하세요.'


어렸을 때는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내 방안에 울려 퍼지는 라디오 소리, 사각사각 넘어가는 책장의 감촉이 참 좋았다. 그 시간만이 온전히 내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해가 지고 난 후 어스름한 저녁의 공기가 좋았다. 낮의 열기가 사라진 여름밤, 시원한 바람이 훅 불어올 때면 묘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오라고?


습관은 숨 막히는 일상에서 내가 찾은 작은 틈을 막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였다. 좋은 습관을 만드는 일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 이유가. 싫은 것으로만 일상이 가득했던 시절,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할 일과 좋아하는 일을 조율해 가면서 살아왔다. 시험기간이 되면 하기 싫은 공부를 꾸역꾸역 하고 시험이 끝나면 참았던 드라마를 몰아 보는 식으로, 평범하게 사는데 필요한 성실함을 적재적소에 발휘하며 나름 잘 살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습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해야 할 일들밖에 없는 삶을 맞닥뜨리고 나서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가 어느 날 엄마가 되었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녹록지 않다. 거기에다 휘몰아친 재테크 광풍에 돈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틈나는 대로 돈과 관련된 콘텐츠만 보았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토록 바라던 어른이 되었는데 내가 마주한 것은 소소한 기쁨조차 사라진 하루하루였다.


어느 날은 비관적인 생각이 몰려왔다. 해야 할 일들만 해치우며 사는 인생이 노예의 그것과 뭐가 다를까? 숨 쉴 틈도 없이 어린이집으로, 회사로, 집으로 뛰어다녔다. 집에 오면 잠시 앉을 틈도 없이 집안일을 해치웠다. 치워도 치워도 방바닥은 아이들 물건으로 어질러지고, 쉬지 않고 움직여도 잡안일은 끝도 없이 쌓인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남편의 하루도 고단하긴 마찬가지였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이 나는 계속 소진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태도가 되어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에게 감정풀이를 할 때가 잦아졌다. 화를 내고 때로는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를 단단하게 세우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해야만 하는 일들 속에 파묻혀 있는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저, 내가 좋아서 했던 일들을 다시 찾아야 했다. 아이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을 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내 시간이 생긴다. 내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좋다.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일찍 자게 된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또 일찍 자게 된다.

잔뜩 먹고 자면 소화가 안돼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체한 상태로 중간에 일어나 다시 잠에 들지 못하는 일도 있다. 공복 상태로 잠에 들자.

긴장이 많은 나는 쉽게 몸이 굳어진다.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서는 스트레칭이 좋다.


새벽에 일어나 나 혼자만의 시간을 나를 위한 일로 채웠다. 나를 위한 일은 일상 구석구석으로 번져갔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너무 어깨가 아프면 휴게실에 가서 스트레칭을 한다. 자기 전에 몸이 너무 찌뿌둥해도 스트레칭을 했다. 다음날의 컨디션이 달라졌다.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했는데 읽게 되었다. 살면서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글도 쓴다. 나의 길티 플레저, 밀가루 음식을 잔뜩 먹고 나서는 케일주스를 마신다. 무거워진 몸이 가벼워진다.


그 순간순간, 내가 향하는 대상은 오롯이 나다. 엄마로서 내 아이를 귀애하듯, 나 자신을 귀애하는 그 시간이 쌓여간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끌어올린다. 마중물 퍼올리듯 펌프질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콸콸 차오른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하다 보니 이게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갓생'인가 싶었다. 나를 위해 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어느덧 습관이 된다. 해야 할 일들에 짓눌려 불평을 터뜨리는 대신,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로운 일을 하나라도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습관 : 나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일. 나를 사랑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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