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백 Sep 18. 2024

마흔, 내가 점점 더 좋아져.

⟦관계 편⟧을 마치며

"넌 잘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게 뭐지?라고 스스로 되물을 때면 머릿속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새하얘졌다.


"그럼 좋아하는 건 뭐야?"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하릴없이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낯선 도시에서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고... 참 다행이었다. 그게 뭐가 됐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러다 어느 순간 좋아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도 대답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비참함만 더해졌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물음표가 커져갔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무엇일까? 어이없게도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돈에 대한 생각에 함몰되었다. '경제적 자유' 돈이 많으면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자유가 진짜 나를 찾아다 주겠지. 돈에 대한 생각만 하고 돈을 좇으면서 살았다. 다른 사람보다 재테크에 대해 많이 알아가면서 나의 탁월함을 확인했다, 그렇게 나는 좋아하는 것마저 잃었다.


돈도 못 벌고, 쓰라린 실패도 겪어 보니 어느새 내 나이 마흔 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싶어졌다. 억만금을 버는 기술보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인가.


10대 때는 그날 하루치의 괴로움을 꼭꼭 씹어 넘기며 하루를 살았다. 제발 잘 소화가 되기를 바랐는데 딱딱한 물성의 그것은 내 안에 어딘가에서 얹혀 버렸다. 20대 때,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센 나 자신이 한심해서 자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30대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장이 되었고 그 노무 돈타령만 하면서 보냈네. 그리고 마흔 살, 이제야 나는 온전히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와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은 게임처럼 계단식으로 미션을 클리어하는 종류의 일은 아니다. 엉키고 설킨 생각의 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나가는 작업이다. 아, 이걸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막막했다. 나에게 선명히 새겨진 순간을 쓰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한 점이 되었던 그 순간들을 이어보니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까지 어떻게 다다르게 됐는지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 까닭 없는 것은 없다. 내가 한 선택들 중 어느 하나 그냥 한 것은 없었다.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 순간 나는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은 의외의 지점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바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의 뜻모를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때로는 괴로웠지만, 보람되고 즐거웠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체 없이 움직였고, 이런 나를 유능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이와의 관계를 정립하며 나는 원가족으부터 받은 불편한 감정들을 대물림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사랑해 준 우리 엄마만의 사랑법을 이해하려고 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면, 평생을 살아도 나를 사랑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언젠간 나도 나를 용서하겠지. 나를 인정하겠지. 나를 사랑하겠지. 종으로 횡으로 한 땀 한 땀 직조한 관계들이 나를 다시 세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나를 사랑하게 됐다. 나는 이렇게 사랑이 큰 사람이었어.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해.


그러니 감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쓰세요. 당신의 순간들을. 그 점을 이어가다 보면 당신 삶의 궤적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 끝에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당신이 서 있을 거에요.



>>>>>>>>>>>>>>>>>>>>>>>>>>>>>>>>>>>>>>>>>>>>>>>>>>>>>>>>>>>>>>>>>>>>>>>>>>>>>>>

'마흔, 점점 더 내가 좋아져'는 ⟦습관 편⟧ 으로 이어집니다. ⟦관계 편⟧⟦관계 편⟧

이전 15화 이 관계, 성공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