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다니?! 너무 비장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보통 건강해지기 위해서 혹은 날씬해지기 위해서 운동을 하지 않나? 훗! 나는 살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잘~~~~ 살기 위해서.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의 일이다. 이사를 앞두고 두 아이가 연달아 격리 통지를 받았다. 코로나 감염자와 접촉만 해도 격리가 되던 시기라 2주간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신세가 된 것이다. 나 역시 아이 둘과 졸지에 집에 갇혀 버렸다. 설상가상 격리해제 다음날이 이삿날이었다. 코로나 확진이라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남편은 시댁으로 대피시켰다. 아이 둘과 이사준비로 난장판인 집에서 2주를 안달복달 지냈다.
우리 가족이 이사를 간 곳은 한 블록 옆의 아파트였다. 도보로 출퇴근하는 나는 회사에 가려면 전보다 한 블록을 더 걷게 되었다. 격리해제 이틀 후, 이사 간 집에서 첫 출근을 하는데 나는 회사까지 반도 못 간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유인즉슨... 너무 숨이 차서였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1.4km의 평지. 나와서 1km도 채 걷지 않았는데 하늘이 노래지면서 더 이상 못 걷겠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10km나 되는 제주도 올레길을 1일 1코스 정복하던 나였는데!! 그 기억이 전생처럼 아득했다.
2주나 집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체력저하가 온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를 해 봤다. 그리고 그 주의 토요일. 아이들과 동네 도서관에 가려다가 집에서 채 나서기도 전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울어 버리고 말았다. 애들이 말 안 듣는 거야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같은 말을 백번씩 반복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독박육아도 일상다반사인데 나는 그날, 오후 2시도 안 되는 시각에 감정적 자폭을 해버렸다.
아이들이 어안이 벙벙한 채 누구시죠?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그 순간, 밀려오는 창피함과 자괴감을 뚫고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영어 속담이 뿅 하고 떠올랐다.
Sound body, sound mind.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무엇이 문제인지 자명했다. 이노무 저질체력! 범인은 바로 너닷!
나는 바로 동네에 있는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1:1 수업은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그룹수업을 등록했다. 수년 전에 1:1로 10회 수업을 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룹수업을 소화할 수 있으리라. 완전 오판이었다.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허리가 아파서 고생했다. 디스크가 터졌나?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도 복근이 없어서 허리에 힘을 주는 바람에 허리통증이 생긴 것이었다.(처음 필라테스 시작하시는 분들! 꼭 1:1 레슨으로 시작하시길 추천합니다.)
그 후로 4년째, 나는 주 2회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운동을 하는 대신 더 열심히 먹은 덕분에 내장지방은 더 늘어났지만. 없던 근육이 몸에 붙게 되어 나는 일상을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근육으로 나는 일을 하고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밥을 해 먹인다. 주말이면 여기저기 쏘다니기도 하고, 틈틈이 시간을 내서 글을 쓰기도 한다.
몸의 근육은 마음의 근육과 연결되어 있다. 흔히들 기분이 태도가 된다고들 하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몸이 힘들어서다. "안 힘들게 살면 되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녹록한가. 일하고 애들 케어하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데도 무지하게 힘이 든다.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이라도 닥치게 되면 힘에 부치다 못해 무너진다. 나를 단단히 세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몸의 근육이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 수십 년을 내리 실패했었다. 일주일에 고작 2번이지만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게 된 비결이 뭘까 생각해 봤다. 답은 그냥 하는 것. 김연아 선수가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유명한 짤이 있다.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기 전 몸을 풀고 있는 김연아 선수에게 "스트레칭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필라테스를 등록한 순간, 저절로 운동을 그냥 하게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필라테스 그룹 수업은 회원들끼리 예약경쟁이 치열하다. 내가 가능한 시간에 수업을 예약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가능하지 않다. 누군가 애들을 봐줄 수 있는 시간. 애들끼리 있어도 괜찮은 시간. 이 시간이 아니면 운동을 할 수 없다. 의도치 않게 득템한 무조건 가게 되는 시스템이다.
예전에 시간이 남아돌던 시절에는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오늘 아니면 내일 가지~~ 하면서 미루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등록을 하고 안 가게 될까 봐 돈을 지불하고 하는 운동은 아예 시작하지도 않았다. 운동을 하면서 겪게 될 육체적인 고통을 떠올리면 집에서 뒹굴대는 안온함이 너무나 달콤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집에서 애들이랑 지지고 볶느니 한 시간이라도 탈출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달콤한 일탈이 됐다. 이로써 그냥 하는 운동 시스템 완성!
육아의 고통을 이용한 이 시스템을 다양한 방면에 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싶거나 해야 하는데 못 했던 것들을 떠올려 보자. 요리? 독서? 공부?? 다 드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