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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Oct 09. 2024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1. 습관이란 그냥 하는 것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다니?! 너무 비장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보통 건강해지기 위해서 혹은 날씬해지기 위해서 운동을 하지 않나? 훗! 나는 살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잘~~~~ 살기 위해서.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의 일이다. 이사를 앞두고 두 아이가 연달아 격리 통지를 받았다. 코로나 감염자와 접촉만 해도 격리가 되던 시기라 2주간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신세가 된 것이다. 나 역시 아이 둘과 졸지에 집에 갇혀 버렸다. 설상가상 격리해제 다음날이 이삿날이었다. 코로나 확진이라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남편은 시댁으로 대피시켰다. 아이 둘과 이사준비로 난장판인 집에서 2주를 안달복달 지냈다.


우리 가족이 이사를 간 곳은 한 블록 옆의 아파트다. 도보로 출퇴근하는 나는 회사에 가려면 전보다 한 블록을 더 걷게 되었다. 격리해제 이틀 후, 이사 간 집에서 첫 출근을 하는데 나는 회사까지 반도 못 간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유인즉슨... 너무 숨이 차서였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1.4km의 평지. 나와서 1km도 채 걷지 않았는데 하늘이 노래지면서 이상 걷겠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10km나 되는 제주도 올레길을 1일 1코스 정복하던 나였는데!! 그 기억이 전생처럼 아득했다.


2주나 집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체력저하가 온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를 해 봤다. 그리고 그 주의 토요일. 아이들과 동네 도서관에 가려다가 집에서 채 나서기도 전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울어 버리고 말았다. 애들이 말 안 듣는 거야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같은 말을 백번씩 반복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독박육아도 일상다반사인데 나는 그날, 오후 2시도 안 되는 시각에 감정적 자폭을 해버렸다.


아이들이 어안이 벙벙한 채 누구시죠?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그 순간, 밀려오는 창피함과 자괴감을 뚫고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영어 속담이 뿅 하고 떠올랐다.

Sound body, sound mind.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무엇이 문제인지 자명했다. 이노무 저질체력! 범인은 바로 너닷!


나는 바로 동네에 있는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1:1 수업은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그룹수업을 등록했다. 수년 전에 1:1로 10회 수업을 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룹수업을 소화할 수 있으리라. 완전 오판이었다.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허리가 아파서 고생했다. 디스크가 터졌나?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도 복근이 없어서 허리에 힘을 주는 바람에 허리통증이 생긴 것이었다.(처음 필라테스 시작하시는 분들! 꼭 1:1 레슨으로 시작하시길 추천합니다.)


그 후로 4년째, 나는 주 2회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운동을 하는 대신 더 열심히 먹은 덕분에 내장지방은 더 늘어났지만. 없던 근육이 몸에 붙게 되어 나는 일상을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근육으로 나는 일을 하고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밥을 해 먹인다. 주말이면 여기저기 쏘다니기도 하고, 틈틈이 시간을 내서 글을 쓰기도 한다.


몸의 근육은 마음의 근육과 연결되어 있다. 흔히들 기분이 태도가 된다고들 하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몸이 힘들어서다. "안 힘들게 살면 되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녹록한가. 일하고 애들 케어하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데도 무지하게 힘이 든다.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이라도 닥치게 되면 힘 부치다 못해 무너진다. 나를 단단히 세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몸의 근육이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 수십 년을 내리 실패했었다. 일주일에 고작 2번이지만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게  비결이 뭘까 생각해 봤다. 답은 그냥 하는 것. 김연아 선수가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유명한 짤이 있다.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기 전 몸을 풀고 있는 김연아 선수에게 "스트레칭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필라테스를 등록한 순간, 저절로 운동을 그냥 하게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필라테스 그룹 수업은 회원들끼리 예약경쟁이 치열하다. 내가 가능한 시간에 수업을 예약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가능하지 않다. 누군가 애들을 봐줄 수 있는 시간. 애들끼리 있어도 괜찮은 시간. 이 시간이 아니면 운동을 할 수 없다. 의도치 않게 득템한 무조건 가게 되는 시스템이다.


예전에 시간이 남아돌던 시절에는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오늘 아니면 내일 가지~~ 하면서 미루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등록을 하고 안 가게 될까 봐 돈을 지불하고 하는 운동은 아예 시작하지도 않았다. 운동을 하면서 겪게 될 육체적인 고통을 떠올리면 집에서 뒹굴대는 안온함이 너무나 달콤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집에서 애들이랑 지지고 볶느니 한 시간이라도 탈출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달콤한 일탈이 됐다. 이로써 그냥 하는 운동 시스템 완성!


육아의 고통을 이용한 이 시스템을 다양한 방면에 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싶거나 해야 하는데 못 했던 것들을 떠올려 보자. 요리? 독서? 공부?? 다 드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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