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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Oct 17. 2024

새벽에 일어나 보니 알게 된 것들

#2. 역시 농경민족의 DNA가 쏴라 있네!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 바로 새벽기상.


늦게 잠드는 것이 좋았다. 모두가 잠든 후에는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듣기만 해도 반가움이 퐁퐁 아나는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내 방을 가득 채우면, 나는 책을 읽거나 뭔가를 끼적였다. 오로지 나만 존재하는 시간, 그 고요함이 전하는 공기의 울림. 그 시절 나를 설레게 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체력이 좋은 편인 나는, 새벽까지 잘도 버텼다. 밤 열시만 도 눈이 스르르 감기는 친구를 볼 때면 '쟤는 나랑 다른 것을 먹고 사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뭔가를 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음, 나와는 다 생체시계를 갖고 있군.'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앞서 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늦게 자면 일찍 일어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게 나는 딱히 이룬 것도 없이, 아침형 인간과는 백만 광년 떨어진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그 시절에는 1분 , 1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몰랐다.


나이가 들수록 역할이 늘어간다. 해야할 일도 많아진다. 예전에는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썼었는데 이제는 타인을 위해서 시간을 쓴다. 하루 중 8시간은 회사를 위해 일하고, 하루 중 6시간은 엄마의, 생활인의 일을 한다.

로 사는 간이 너무나 간절했다. 몇날며칠을 폐인처럼 틀어박혀 '그레이 아나토미'같은 미드를 뚝딱 감상하고 싶었다. '장미의 이름'같은 진도 안 나가는 책을 한 달 내내 끌어안고 지내고 싶었다. 재미없는 영화를 틀어놓고 잠들어 버리고 싶었다. 한때는 흘러넘쳐, 주체하지 못했던 나의 시간들. 지금은 30분도 내기 어렵게 되어 버린. 어떻게 하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올빼미 엄마를 닮아서인지 아이들도 올빼미였다. 아이들을 재운 후, 하루의 정리를 끝내면 어느덧 자정에 가까운 시각, 나만의 시간을 가질라치면 어느덧 새벽 두 시. 다음 날의 컨디션이 최악이 되어 하루가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였다.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몸이 힘들면 내 마음의 날씨는 폭풍전야다. 독야청청 나 혼자 살면야 상관없지만 내 기분에 전이되는 대상이 생겨 버렸다. 안 그래도 힘든 몸, 수면부족까지 얹을 순 없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나는 하루를 마무리한 후가 아닌 하루를 시작하기 전의 시간에 눈을 돌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불이 주는 달콤한 온기는 물론 못 참지만 몸을 둥그렇게 말고 일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고 식탁에 앉았다.

처음에는 앉아서 뭔가를 할 공간조차 없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고릿적 시험공부할 때 샀던, 먼지가 뽀얗게 않은 LED스탠드를 꺼내 식탁 위에 놓고 아무 책이나 손에 집히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거실에 내가 공부하고 글을 쓰는 작업공간이 생겼다. 짬짬이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리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쓴다.


새벽에 일어나면서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됐다. 언제 새벽에 일어나 봤어야지.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절대 알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 한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 같은 시간을 자더라도 훨씬 몸이 가볍다. 밤 열 시부터 새벽 2시 사에 잠을 자고 있어야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된다더니. 그게 미라클모닝 전도사들이 퍼뜨린 낭설이 아니고 사실이었나 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늦게 잠에 들충분한 시간을 잤음에도 머리가 멍하고 온몸이 아팠다. 예전에는 그냥 '좀 피곤하구나'하고 말았었는데 컨디션의 미묘한 변화를 느끼고 나니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좀 더 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스트레칭을 하면 좋다거나, 자기 전 한 시간은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거나.


나는 밤의 시간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밤에는 치열하게 하루를 살고 난 찌꺼기들이 잔뜩 쌓있다. 잠을 자는 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리는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벽에 일어나면 전날 밤까지 나를 괴롭히던 일들이 다르게 보였다. 다시 나를 다잡고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늦게 일어나 또 허겁지겁 아침 준비를 마치고 회사로 달려 나갔다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거다.


물론, 밤에 유독 집중이 잘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올빼미족이라는 자신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한 번 시도해 보세요. 내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면, 당신을 위한 시간이 한밤 중이든, 새벽녘이든 중요하지 않을 거예요.  그저 나아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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