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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Sep 05. 2024

이 관계, 성공적!

비로소 느낀 '나'로 사는 효능감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좀 더 철이 들고 난 후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화번호를 알고 있거나 카톡에 친구로 설정되어 있는 친구들이 두 명... 고등학교 한 명, 대학교 한 명. 적어놓고 보니 처참하네? 이 친구들과는 몇 년에 한 번쯤 생존신고 같은 인사를 카톡으로 주고받는다.


굳이 상대방이 알고 싶지도 않은 TMI를 이렇게 흘리는 것은 그다지 관계지향적이지 않은 나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게 만나는 것을 추구했지만, 그 관계가 이런저런 이유로 어그러지거나 소원해져 이렇게 인간관계가 빈한해졌다.


원가족과 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에 가족처럼 의지하고 희로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길 바랐다. 그런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지. 안정적인 정서적 토대 위에 깊게 뿌리를 내린 흔들리지 않는 나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야 팔랑개비처럼 나풀대는 나의 감정들도 제자리를 찾아갈 것 같았기에.. 한데 그런 사람들은 원가족의 탄탄한 정서적 지원 속에 자랐기에 가족을 대체할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고 있던 가장 큰 정서는 외로움이었다.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한 마음들은 허공에 흩뿌려지고, 이렇게 못난 나임에도 사랑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사람의 마음을 저울질하고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참 사무치게 외로웠다. 책 속으로, 영화 속으로 끊임없이 유영했지만, 생생하고 선연한 실체가 필요했다.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운 좋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지만, 마음의 구멍이 완전히 메꾸어지지 않았다. 속을 여과 없이 드러낼 없었기에, 나의 관심사가 그의 관심사와 상통하지 않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미묘하게 겉돌고 있었다. 나를 잡아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도 나와 함께 하면서 겪는 파동으로 혼란스러워했다.


해갈되지 않 외로움을 안고 방황하던 그때, 나는 아이를 가졌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나는 엄마가 된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거대한 수조를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채운다면 그 수위가 발목에 찰랑찰랑한 정도랄까. 다만, 이제까지 살아온 대로 그저 성실히 아이의 성장을 위한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지독히도 시간이 더디 다. 부모가 되면, 아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내 앞에 산적해 있다. 가까이에는 기귀 갈기, 씻기기, 먹이기, 재우기 좀 더 멀리 보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나만의 기준 정하기. 그 일들을 투두리스트 목록 지우듯 하루하루 해치우고 나면 나는 하루를 알차게 잘 보냈고, 아이는 또 그만큼 자라 있었다.


나와 나의 아이, 이제껏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관계의 시작점에서,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어갈지에 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었다. 말인즉슨  관계의 성패는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


아. 이 관계도 망하면 어쩌지? 어딘지 묘하게 뒤틀려 있던 나의 사회성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하지만 아기는 내가 원인이 아닌 것들 대해 나를 비난하지 않았고 날벼락같은 호통쏟아내지도 않았다. 딱 내가 하는 만큼, 웃으면 따라 웃고 찡그리면 따라 찡그리고. 퇴근 후 같이 놀이터에 가면 그네에 매달려 행복해하고, 쩍쩍 나오는 하품을 참으며 책을 읽어주면 눈을 반짝이고. 피로가 몰려와 널브러져 있다가 이제 게임 좀 그만하라고 화풀이를 하면 엄마 때문에 다 망쳤다며 울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안아주면 그제야 눈물을 그치고. 아이와의 관계는 내 마음그릇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었다.


모든 엄마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특히 일하는 엄마는 해야할 것들과 허용할 수 있는 것들 그 사이의 기준을 찾아 매일 줄다리기를 한다. 파김치가 되어 저녁시간 내내 유튜브를 보여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날은 원 없이 게임을 하라고, 대신 나를 찾지 말라고 내 핸드폰을 순순히 넘겨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잡고 해야 할 일을 했다. 단지 안 공원이나 산책로로 나가 뛰어놀게 하고 서점에 가서 한 시간씩 쭈그려 앉아 있다 오기도 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조율해 갔다.

매일이 고되었다. 때로는 분노로 산화되기도 하고 자괴감에 무너지는 날들 있었지만 성실한 엄마로 보낸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관찰하고,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우리의 관계는 '서로를 존중'하는 레벨까지 올라갔다.


온전히 내 손으로 처음부터 일구어가는 관계는 처음이다.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가끔은 엄마를 미워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제 몫을 다해 열심히 크고 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구김 없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나로 사는 효능감에 젖어들었다. 그래, 이 관계는 성공적이야!


발목에 찰랑댔던 수조 안에 물이 꽤 차 올랐다. 언젠가는 다이빙을 해서 뛰어들 수 있을만큼 사랑이 차오르겠지. 나의 사랑의 문법은 최선이다. 열심히 사랑할 거야. 온 힘을 다해.


엄마의 사랑 속으로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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