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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정리, 정리합시다.

끌려가지 않고 끌어가는 방법

by 영백

오늘은 브런치북 연재일. 저번 주에 제꼈으니 오늘은 기필코 글을 발행하리라. 얼마 전에 새벽 모임에 함께 하는 미아 님이 내 표정이 좋다고 칭찬해 줬으니 그 얘기를 써 볼까? 그래! 제목은 '웃으면 복이 와요' 어맛! 제목 너무 잘 지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 쓰면 쓸수록 단어 하나하나에 기시감이 느껴졌다. 응? 내가 이 얘기를 고대로 한 것 같은데? 우리 엄마 아부지가 웃지 않았다는 말을 어디선가 했던 것 같은데? 왜 이 글에 어떤 댓글이 달릴지 예상이 되는 거지?


아뿔싸!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내가 쓴 글 목록을 확인하니 2024년 7월 14일 자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웃으면 복이 와요'란 제목의 글이 발행되어 있었다.(음... 누구냐, 너는?)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닌지는 이미 꽤 오래되었다. 항상 허둥지둥, 헐레벌떡, 허겁지겁, 얼렁뚱땅... 내 하루를 묘사하는 부사들을 나열하니 사뭇 처연하기까지 하다. 스스로 일상을 꾸려 나간다기보다 해야 할 일들이 나를 끌고 다니는 그런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찝찝하게 나를 따라다닌다. 내가 또 빠뜨린 것이 있지 않을까? 내가 놓친 일정이 있지 않을까? 아이들 스케줄은 내가 제대로 확인한 건가?


올해 초 새로 옮긴 부서에서 쏟아지는 잡무들을 처리하느라 일 년 내내 눈물 콧물 다 뺐다. '일이 많은 거야!'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돌이켜 보니 그게 이유가 아니었다. 새로 바뀐 환경에 익숙해지는데 예전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렸다. 거기다 밀려오는 업무들에 우선순위를 매겨 처리하는데 나의 정리력이 매우 일천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집에 돌아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에 출근하면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한 기분으로 불안에 떨며 앉아 있었다. 집에 오면 집안일과 씨름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아니지, 그냥 매우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름도 낯선 파일들로 빽빽이 가득 차 있는 PC의 바탕화면처럼, 집도 온갖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즉시 해야 할 일들부터 쳐내가고 당장 필요한데 보이지 않는 물건들은 쿠팡 로켓배송을 검색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 나갔다.


어느 날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하루하루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외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손으로 뭔가를 쓰는 것이 너무 어색했지만 일정을 메모하기 위한 노트부터 구입했다. 뭔가를 정리해서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왜 이게 안 되는 건지 매우 의아했다. 머릿속에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서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 감이 히지 않는다. 손으로 적어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완결된 형태기에 여전히 혼란스러운 나는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어서 포털에 검색을 해 보았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분명히 있을 것이다. A를 하자니 B가 떠올라 쉽게 주의집중할 수가 없다. 한 편에 치워놓자니 B의 존재를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아서 불안하다.


'브레인 덤프'라는 메모법을 발견했다. 브레인 덤프는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무작위로 쏟아내어 정리하는 방법이다.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과 아이디어를 적는 것이다. 이거다, 이거!! 생각의 조각들을 메모장에 나열하다 보면,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은 위로 올리고 다른 것들은 쓰인 채로 그냥 두면 된다.


사소한 것을 적는데도 내 안의 완벽주의가 발동해 항상 발목을 잡았다. 내 머릿속이 이렇게 복잡한데, 아직 구체적인 형태로 남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낙서하듯이 그냥 적으니 술술 써졌다. 회사에서는 일과를 시작하기 전 메모장 앱을 열어 가볍게 타이핑을 한다. 누가 볼 일이 없으니 정확한 명칭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만 알아볼 수 있게 쓰면 된다.


개인일정과 관련해서는 노트를 하나 사서 기록해 보려고 한다. 집안에 어질러져 있는 것들은... 음, 기분이 산란할 때 한 번씩 TV주변/화장대/식탁 위 이런 식으로 구역을 나눠 정리를 해왔다. 금세 다시 원상 복구되긴 하지만 전보다는 낫다. 새로 산 노트에는 이제까지 쓴 글의 목차를 적고, 앞으로 쓸 글들에 대해서도 '브레인 덤프'식으로 적어볼 요량이다. 이렇게 조금씩 해 나가다 보면 정리가 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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