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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聖地, 미한리.

빛 아래 설 너에게 04.

by 다우

작고 낡은 자동차가 산길 진흙탕 위에서 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호국은 창문을 내리고, 크게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에 산비둘기 여러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더 세게 밀란 말이야!”

“야잇, 진짜···!”


뒤에서 차를 밀고 있는 한울이 잇샌 소리로 짜증을 냈다. 차는 앞으로 나아갈 듯 하면서도 바퀴가 자꾸만 헛돌고 있었다. 뒷좌석에 얌전히 앉아있던 리아가 몹시 곤란해 하며 말을 꺼냈다.


“언니. 저도 내려서 같이 밀어볼까요?”

“아, 리아 양은 허리 아프잖아요.”


리아는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한울님 혼자서 너무 힘들어 하셔서 속상해요···.”


호국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보다 큰 소리로 말했다.


“한울, 이 녀석아! 더더, 세게! 더 세게!”


호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가 흔들릴 정도로 거센 움직임이 덜컹했다. 차를 밀어대는 한울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으랴앗! 호국 너 임마! 차를 바꾸거나 운전을 좀 잘 하란 말이다!”


흙 더미를 간신히 빠져나온 차는 빠르게 산길을 타고 달렸다. 한울은 두 팔을 허둥대며 얼른 차의 뒷꽁무니를 쫓아왔다. 호국은 큰 소리로 웃어댈 뿐.


열심히 달려서 간신히 차에 올라탄 한울. 말끔했던 옷과 얼굴은 온통 지저분한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리아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묻은 흙탕물을 닦아주었다.


“도움이 못 되어서 죄송해요.”

“도움 많이 되고 있어요. 지금 리아씨 안내로 흑호교의 본당으로 가는 길 아닙니까.”


한울은 손수건을 건내받으며 숨을 골랐다.


“저 몹쓸 땡중이 똥차를 끌고와선 운전까지 뭣같이 해서 그렇지.”

“아니, 산길 흙더미에 바퀴가 빠진 걸 나더러 뭘 어찌하라고 내 탓을 하는거야.”


두 사람이 왕왕대며 투닥거리자, 리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코인이 남아있었으면 흑호교 셔틀 버스를 타고 편히 갈 수 있었는데···.”


호국은 한울의 말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게, 카오디오를 켰다. 여름에 어울리는 보사노바 곡이 흘러나왔다. 목소리가 묻힌 게 분했던지 한울은 품에서 부채를 꺼내서 부채날로 앞 운전석을 톡 쳤다. 검은색 부채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무척 기품있어보였다.


“야잇, 고작 말다툼 하는데 무기까지 꺼내지 말라고!”


호국은 카오디오를 줄이며 투덜거렸다. 그 말에 한울은 약간 민망해 하며 부채를 도로 품에 넣었다. 리아는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 부채가 무기예요?”

“무기 중 하나입니다.”


“제게도 보여줄 수 있어요?”


리아가 눈을 빛내자, 한울은 품에서 부채를 꺼내 리아에게 건냈다.


검은 종이에 온통 금색으로 한자가 적혀 있는 검은 부채. 신기하게도 부채살인 나무도 새카만 색이었다. 끝에는 금실로 매듭이 묶여져 있었다. 종이는 조금 두꺼운 재질이었고, 부채치고는 무게가 묵직했다. 리아의 두 눈이 데굴데굴 굴러다니자, 한울은 조금 웃었다.


“나무가 어떻게 까매요? 옻칠을 한 건가요?”

“벽조목으로 만들어서 그래요.”

“그게 뭐예요?”


“벼락맞은 대추나무.”


한울은 부채를 돌려 받곤, 리아 쪽으로 가볍게 부채를 흔들었다. 그러자 생각보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 리아의 머리카락을 전부 뒤로 날렸다. 깜짝 놀란 리아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벽조목 부채 바람에 맞으니, 머릿 속이 일순간 맑고 시원해진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것도 할 수 있지.”


한울은 부채를 접어, 부채의 대 부분으로 리아의 이마를 톡, 살짝 쳤다. 리아는 순간 머리가 빙글 도는 느낌을 받아 어지러움에 감겨 잠이 들었다. 고개가 푹 숙여진 채 정신을 잃은 리아를 쓰러지지 않게 품에 안은 한울은, 그녀를 옆 자리에 바르게 앉혔다.


“아직도 마음에 드는 여자들 잠재우는데에 영력 무기를 쓰고 다니냐.”


전방을 주시한 호국이 운전대를 꺾으며 말하자, 한울이 즉시 정정했다.


“아직도라니, 한번도 그래본 적 없어. 큰일 날 소리 하고 있어.”

“리아양은 왜 재운 건데.”


“별 뜻 없어.”


한울은 리아가 목이 아프지 않게, 머리를 좌석의 목 쿠션에 잘 받쳐주며 말을 이었다.


“몸도, 마음도 편하게 가라고. 갈 길이 멀었는데, 힘들까봐.”


한울의 말에, 호국은 카오디오를 껐다. 고요한 차 안에, 잠든 리아의 고른 숨소리만 맴돌았다. 한울은 그녀의 고른 호흡 소리에 맞춰 생각에 잠겼다. 창 밖, 울창한 나무들이 익숙한 거실 풍경으로 모습을 달리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흑호교에 헌금한 돈이 일본 정계로 흘러 들어가고 있어.”


한울의 말을 들은 리아는 눈이 커졌다. 호국은 잔에 담긴 주스를 한 모금 마셨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쿠로 키츠네님께서 한국인에게 수금을 해 일본 정치자금을 조달한다는 건가요?”

“우리가 증명해내야 하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


형형히 빛나는 한울의 눈. 검은 동공은 흡사 산을 타고 날아오르는 범의 형상이었다. 한울은 서류뭉치에서 도면이 그려진 종이 낱장을 한 장 꺼냈다. 리아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르자, 그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짚었다. 건물의 단면도가 그려진 종이. 두 눈에 떠오른 불안을 감추고, 리아는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의뢰 내용은 쿠로 키츠네의 암실에 놓인 금고, 그 안의 기밀서류 및 USB를 가져오라는 것.”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는 리아를 보고, 호국은 잔을 내려놓았다. 리아의 꼬리가 도르르 말리며, 겁에 질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던 것이다. 한울은 옅게 미소지었다.


그래, 무서울테지.

부모처럼 따르던 존재를

바닥에서부터 부정해야 할테니···.


평화롭게 살아오던 세상의 천지가 서로 뒤바뀌는 기분이겠지.


“거짓말이야, 교주님이 그러실 리 없어요···.”

“리아씨.”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게 뭐가 나쁜거죠?”

“뭐라고요?”


리아는 주먹을 꼭 말아쥐고 쿠로 키츠네를 변호하려 애썼다. 한 발자국만 더 밀려나면 그 뒤로 절벽이라도 펼쳐질 듯, 리아는 필사적이었다. 그녀의 두둔에 한울은 눈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흑호교의 본당은 일본에 있어요. 우리 한국의 신도들이 돈을 모아서 본당에 보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 만약, 만약 흑호교의 본당이 미국에 있다면 그렇다면 돈을 미국으로···.”


“정계에 정치자금으로 흘러가고 있다고요. 리아씨가 머물 집도 없이, 밥도 못 먹을 만큼 바득바득 애써 낸 헌금. 그 전 재산이 일본 총선의 선거자금으로 쓰일거라고요.”

“그, 그런 ···.”


“못 믿겠다면.”

“못 믿겠어요.”


즉답하는 리아에게, 호국이 손을 뻗었다. 호국의 손이 등에 닿자 리아는 어깨에 힘이 풀어진 듯 몸이 조금 앞으로 굽어졌다. 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하, 깊은 숨을 토해냈다. 호국은 등에 글씨를 쓰듯 손가락을 휘저었고, 리아의 숨이 고르고 평온해 진 후에나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 리아는 호국의 손이 등에서 떨어지자 마자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방금 뭐였어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수인.”


몸의 힘이 빠진 듯, 리아는 숨을 깊고 길게 내 쉬며 소파 팔걸이에 몸을 기댔다.


“괜찮아요?”


호국은 리아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손은 놀라울 만큼 따뜻했다. 그저 손을 맞잡고 있었을 뿐인데 호국의 손에서부터 시작한 미미한 열이 리아, 자신의 손바닥을 타고 몸을 한바퀴 도는 게 느껴졌다. 기이한 기운이 호국의 손 안에 담겨 있었다.


“리아씨, 직접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호국은 리아의 손을 조물조물 주물러 주며, 말을 이었다.


“쿠로 키츠네의 금고를 열어보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한번 직접 보는 것도 ···.”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에요.”


“글쎄요, 어떨까.”


호국의 목소리에 한울은 차창 밖 나무들로부터 시선을 거뒀다. 차는 덜컹거리면서도, 바르고 곧게 나아갔다. 호국은 카오디오를 켜며 말을 이었다.


“한울아. 리아씨를 깨워줘. 흑호교의 성지, 미한리에 들어왔어.”


그는 옆자리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리아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고 뺨을 어루며 잠을 깨웠다. 으음, 낮은 신음과 함께 리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한울의 어깨 너머로, 어느덧 노을이 어려 있었다. 창 밖의 나무, 그 가지가지 마다 온통 붉음이 차올라 감정을 건드렸다.


“잘 잤나요?”

“아, 그 부채. 정말 신기한 것 같···.”


“여긴 미한리입니다. 지금부터 리아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리아는 한울의 도움을 받아 자세를 바르게 했다. 한울의 품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리아는 생각했다. 리아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넘겨 정돈해준 한울은, 리아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어찌 된 일인지 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아요. 집들도 비어있는지 불켜진 집이 없습니다.”

“그건 지금이 해 질 무렵이라서.”


리아는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건물을 손으로 가르켰다.


“심례당深禮堂이에요. 다들 저기 모여서 오후 예배를 올리고 있을 거에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 쿠로 키츠네를 만날 수 있습니까?”


“심례당의 반대 편 건물, 여우 사당이에요.”


리아의 말에 따라, 호국이 운전대를 꺾었다. 산 위에 지어진 깨끗한 고층 건물, 심례당. 그 맞은 편으로 일본식 빨간 색 사찰이 한 채 지어져 있었다. 사찰 뒤로는 심례당과 비슷한 크기의 건물이 한 채 놓여있었다.


“사당 뒤의 건물은 뭔가요.”


호국의 물음에 리아는 앞좌석까지 몸을 당겨 앉으며 설명을 했다.


“업무를 보는 건물이에요, 일반 신도들은 들어갈 수 없어요. 맨 꼭대기 층인 21층에 쿠로 키츠네님의 방이 있어요.”

“그럼 저 건물로 가야 하는 게 맞지 않아요?”


호국의 질문에 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쿠로 키츠네님의 접견은 사당에서 이뤄져요. 우린 행정 건물 안으로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어요.”


한울이 턱을 괴었다. 그는 무언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텅 빈 마을을 가로질러 사당 앞, 넓은 마당에 차가 들어서자 낯선 남자 3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평상복을 입고 있었지만 전원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차창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낯선 남성들이 운전석에 앉은 호국에게 퉁명스레 질문을 던졌다. 호국은 룸미러로 한울과 눈을 맞춘 뒤 뒷좌석의 창문을 열었다. 창이 내려오자마자 한울이 사람좋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아, 수고 많으십니다. 저희는 흑호교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


남자들은 서로의 눈을 번갈아 본 뒤, 차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런데 왜 사당으로 오셨습니까? 심례당으로 가서 등록을 하시면 될 일인데 ···.”


한울이 즉답하지 못하고 숨을 한번 꿀꺽 삼키자, 남자들이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그 때였다. 상황을 지켜보며 잠자코 있던 리아가 한울의 몸 위로 올라와 열린 창문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는 신도번호 980422-S-216A, 다이아 등급의 신도입니다. 두 분은 제 소개로 오신 분들이세요. 의심하고 불신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듯 해, 흑호교에 가입하기 전 위대하신 쿠로 키츠네님을 뵙고자 이렇게 사당으로 먼저 찾아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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