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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고 상냥한 안내인.

빚 아래 설 너에게 05.

by 다우

“보시다시피 다른 종교에 몸 담고 계시던 분까지 개종의 의사를 보여주셔서···.”


리아의 말에 남자들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호국의 옷차림을 살폈다. 법복을 입고 있는 그녀를 보고 사내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리아는 창문 너머 남자들에게 다시 한 번 공손히 말을 건냈다.


“위대한 쿠로 키츠네님께서 능력을 보여주신다면, 흑호교에대한 이들의 믿음이 더욱 강해지리라 여겼습니다. 접견을 허락해 주세요.”


한울은 그녀가 앞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두 팔로 감싸듯 리아를 품에 안은 상태였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리아의 머리카락에서 자신과 같은 향의 샴푸 향이 나는 것이 한울은 자꾸만 신경쓰였다. 한들거리는 긴 머리카락이 두 뺨과 코 끝을 간지럽혔다. 리아는 한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곡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접견 후 심례당으로 가서 신도 등록을 하겠습니다.”

“얼굴이 많이 예쁜데, 도화단입니까?”


무전기를 내려놓은 남자가 리아의 얼굴을 살피다가 갑작스레 질문을 던졌다. 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녜요. 저는 일반 신도예요.”


수줍어 하는 리아를 본 남자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근대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도화단에 가입하는 것도 생각 해보세요. 일단 사당에 들어가게는 해 드리겠습니다. 접견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길을 터주며 자동차로부터 멀어졌다. 창문이 닫히고, 리아는 연이은 거짓말에 힘이 빠졌는지 한울의 다리 위로 쓰러졌다. 자신의 몸 위에 얼굴을 묻은 리아에게 한울은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부동자세를 취했다. 앞좌석의 호국이 차의 시동을 끄며 되물었다.


“리아양, 도화단이 뭐예요?”

“그건 쿠로 키츠네님의···.”


한울이 리아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리아의 말을 잘라냈다.


“일단 똑바로 일어나서 이야기해요, 입김이 닿아서 곤란하니까.”


리아는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 한울의 허벅지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카락을 바르게 정리하고, 본인 좌석의 손잡이를 잡고서 리아는 말을 이었다.


“도화단은 쿠로 키츠네님의 신부들을 말하는 거에요?”

“신부?”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곁에서 생활을 도와드리는 일들을 해요. 쿠로 키츠네님과 가까이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외모가 예쁜, 그리고 젊은 여성들만 도화단이 될 수 있어요.”


리아의 설명에 한울이 혀를 찼다. 호국은 차 키를 빼며 물었다.


“뭔가 성적인 그런 거에요?”

“아닐 거에요. 쿠로 키츠네님은 그런 저속한 분이 아니셔서···.”


한울은, 정돈이 덜 된 리아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며 물었다.


“리아씨는 왜 도화단에 들어가지 않았지? 쿠로 키츠네에대한 충성심이 무척 강한 사람인데도 ···.”

“그야 당연히, 저는 예쁘지 않으니까.”


리아의 말에 호국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울도 옅게 웃으면서 안전벨트를 풀었다.


“리아씨는 자기이해도가 낮아서 참 다행이었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맑은 숲의 공기가 폐부에 가득찼다. 한울은 코를 킁킁 거렸다. 바람을 타고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달콤한 향기가 날아왔던 것이다. 냄새는 사당에 가까워질수록 짙어졌다.


“이거 무슨 냄새야?”


한울의 물음에 호국이 고개를 저었다. 리아는 앞 서 걷는 두 사람을 놓칠 새라, 종종걸음으로 뒤를 쫓았다.

사당에 오르기 위한 낮은 계단에는 체구가 작은 여성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기척을 느꼈는지 여성은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여성은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눈썹은 동그랗게 그려놓았는데, 입술만 빨갛게 칠해 그 모습이 참으로 기묘해 보인다고 한울은 생각했다. 그녀는 상의는 하얀색, 하의는 품이 큰 붉은 색 치마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무녀님, 저희는 위대하신 쿠로 키츠네님을 뵙기 위해 사당을 찾아왔···.”


“오늘 쿠로 키츠네님께서는 접견을 허락하지 않으시니, 다른 날을 택해주십시오.”


무녀라는 여성은 공손히 손을 바닥에 모으고 머리를 조아렸다. 리아 역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서 말을 이었다.


“새로 가입할 신도들인데, 쿠로 키츠네님의 신비를 체험하면 분명 강한 믿음이···.”

“외부인은 심례당에서 신도 가입 후 코인을 사용하여 접견 신청을 해주셔야 합니다.”


리아는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치료를 위한 접견으로 코인을 전부 상납해서 더는 보유한 코인이 없어요.”


무녀는 다시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녀는 리아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되물었다.


“혹시 도화단입니까?”

“아, 아뇨. 일반 신도예요. 다이아 등급이에요.”


다이아 등급이란 말에 무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기묘하게 달싹였다.


“도화단에 가입하시면 코인 없이도 쿠로 키츠네님을 일상에서 항시 뵐 수 있어요.”

“아, 그 ···. 제가 춤과 노래에 재능이 없고, 무엇보다 예쁘질 않아서.”


머쓱해 하는 리아의 표정에 무녀는 옅게 미소지었다.


“도화단에 가입 신청 해보세요, 꼭.”


무녀는 심례당을 가르켰다. 노을이 건물의 창문마다 어려, 온통 붉은빛을 반사 해 건물은 마치 금이 둘러진 탑으로도 보였다. 화려하고 우람한 위용에 압도감이 전해졌다. 리아는 몸을 돌려 호국과 한울을 바라보았다.


“우선 신도로 가입하고 나서, 내일 다시 접견을 요청 해 보는 건 어떨까요.”

“글쎄 ···. 아직은 흑호교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서.”


한울의 말에 무녀의 두 눈이 커졌다. 리아는 마른 땀을 흘리며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보시다시피 믿음이 부족한 가여운 자들이에요. 제가 왜 코인도 없이, 다짜고짜 사당에 먼저 왔는지 아시겠죠.”


무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뗐다.


“악에 현혹되고, 타고나길 어리석어 눈에 보여야만 믿는 아둔한 사람들이 있죠. 이해합니다.”


무녀의 말에 호국이 웃음을 터트렸다. 리아는 호국의 앞으로 걸음을 옮겨 그녀를 등 뒤로 숨겼다. 호국은 웃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기침을 하기도 했다. 무녀는 가엾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시간이 늦긴 했으나 미한리를 둘러보실 수 있도록 행정 요원에게 일러둘게요. 쿠로 키츠네님의 접견은 내일 오전에 다시 요청 해 주시고, 오늘 저녁에는 행정인의 안내를 받아 마을을 둘러보세요. 접견 이후 심례당에서 가입 신청을 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


한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무녀는 몸을 일으켜서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서 다시 자리로 되돌아왔다.


“마당 앞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곧 안내를 해주실 행정요원이 한 명 올 겁니다.”


한울과 호국은 이제 어떻게 할까, 작게 소곤거렸다. 리아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행정 건물 쪽을 바라보았다. 붉은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고, 연보라빛 하늘에 총총히 빛이 어렸다. 리아는 별을 바라보며, 차가운 강바람을 떠올렸다. 그러자 허리가 지끈 거렸다.


멀리 행정 건물 방향에서, 나이가 제법 되어보이는 중년 남성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작은 태블릿 PC를 들고 있었다. 가슴에는 흑호교의 문양이 적힌 뱃지가 달려있었다.


“다이아 등급의 신도 분이 새로 가입할 신도들을 데려왔다고 들었는데, 어떤 분이 다이아 이십니까?”

“저예요.”


리아가 앞으로 나서자, 그는 리아에게 신도 번호가 적힌 실물 카드를 요구했다. 리아는 카드가 없음을 실토하고 외우고 있는 자신의 신도 번호를 또박또박 말했다. 태블릿 PC에 번호를 기입해 신원을 확인한 요원은 그제야 웃는 얼굴이 되었다.


“리아님이시군요. 쿠로 키츠네님과의 접견은 이번 달만 해도 벌써 10회가 넘었네요.”

“네, 그래서 이제는 코인이 하나도 남지 않았어요.”


“아, 그렇습니까?”


요원은 뒤에 서 있는 한울과 호국에게 손짓을 하며 따라오라고 말했다. 리아와 요원은 앞서 걸으며 살갑게 대화를 나눴다. 한울과 호국은 조금 떨어져서 리아의 뒤를 쫓았다.


“남은 코인이 없다라···, 그것 참 큰일이겠군요. 새로운 신도 분들을 데려온 것은 그래서?”

“아뇨. 그런 것은 아니고, 두 분께서 흑호교에 흥미를 보여주시길래.”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흑호교에 대한 리아님의 믿음이 반짝반짝합니다.”


행정 요원은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빠져나오는 심례당으로 향했다. 그는 심례당의 건축 양식과 내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하며 흑호교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한울은 대답없이 건물 내부의 동선을 살폈다. 심례당의 계단을 오르던 호국은 코를 감싸쥐었다.


“리아양, 아까부터 신경쓰여서 그러는데, 마을 전체에 감도는 이 달콤한 향기는 도대체 뭔가요?”


리아가 대답하기 전, 행정요원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저희 흑호교에서 쓰는 향에는 심신을 안정시키는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약간 달콤한 향기가 나죠. 미한리 기념품 가게에서 살 수 있으니, 돌아가시는 길에 구입하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행정요원은 다시 몸을 돌려, 심례당 벽면에 그려진 쿠로 키츠네님의 성장 역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울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호국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심신 안정이라고 하지만,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미약 성분이 들어있는 것 같아.”


심례당에서 나오는, 과하게 웃고 있는 많은 신도들의 표정을 살피며 호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 건물 내부도 안내 해 주시나요?”


한울의 물음에 요원은 흠, 하고 기침 소릴 냈다. 리아는 허둥대며 말을 보탰다.


“저희가 멀리서 와서 오늘 묵을 곳이 없어요. 잠잘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그런 것이라면 미한리 신도의 집에서 묵으시는 것도 좋은 방법 ···.”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당직실, 작은 소파 정도면 충분해요.”


리아의 말에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직실을 써도 되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리아님께 따로 드려야 할 말도 있으니까.”


네 사람은 밤의 거리를 가로질러, 행정 건물 방향으로 걸었다. 수풀 속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여름의 정취를 더했다. 초승달이 걸려있는 건물. 바로 그 옆으로 작은 건물이 한 채 더 놓여있었다.


“행정 건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요?”

“직원들은 행정 건물과 이어져 있는 이 숙소를 사용합니다. 당직실은 제일 윗층인 6층에 있어요.”


한울은 허리를 짚고서 건물의 모양을 살폈다. 호국은 미소띤 얼굴로 요원에게 물었다.


“우리가 묵는 것은 6층, 그리고 행정건물과 숙소는 어떻게 이어져 있죠?”

“지하 2층에서 통로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물으시죠?”


“교단이 돈이 많은 것 같아서요. 건물이 참 멋지네요.”


요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흑호교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두 분께서 가입하시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신도로 등록하려 하고, 그만큼 코인의 시세도 높아지고 있죠. 리아님께서도 코인을 그저 갖고 계시기만 했어도, 나날이 재산이 늘어나셨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요원은 태블릿 PC로 뭔가 검색하는가 싶더니 리아에게 말을 보탰다.


“혹시 원하신다면 교단을 통해 돈을 융통해 주는 곳을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태블릿 PC 화면에 적혀있는 사채라는 단어에 리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요원은 비릿하게 웃었다.


“이미 많은 신도 분들께서, 헌금을 내시기 위해 이용하시는 금융업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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