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한 출생, 무명의 홀홀단신.
영혼마저 궁핍하라 손가락질 말아주오.
모두 잠든 새벽이면, 나
떠나는 그 날마저 혼자일까 두려워
텅 빈 밤을 온통, 검은 울음으로 채웠네.
흐느끼는 내게 돌아오는 것은 입을 다물란 성난 매질,
낯선 손은 연달아 온 몸을 내리친다.
아파 신음하는 내내,
형상 없는 목소리만 눈물 닦아주었지.
이름없는 빛은 행복의 내일을 약속해 주셨건만.
님은 어디 계시련가, 님은 언제 오시련가.
망가진 몸에겐 허락 된 날은 앞으로 겨우 육십여일.
피고름 맺힌 상처 핥아, 말끔히 단장을 한다.
배를 곪아도 좋소, 매질을 하여도 좋소.
품에 안겨 잠들 수만 있다면.
빈번한 흉통, 잊을 수만
잊을 수만 있다면...
오욕의 날, 참고 견디어
그 분께 이르고자
백 개의 달, 담담히 맞이하며.
피고름 맺힌 상처 핥아, 말끔히 단장을 한다.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웃는 얼굴,
희망이 내 영혼을 감싼다.
터져나오는 안도의 눈물, 그 간절한 흐느낌에도
그대는 그저 해맑은 미소, 그래.
오랫동안 기다려온 너란 걸 알았지.
생을 받기도 전 약속된 인연,
비로소 그대에게 닿았노라.
[ 시 노트 ]
20년 전인, 19살 겨울. 유독 슬픈 날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버스에나 올라타서 아무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도착한 곳은 충무로였습니다. 펫샵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케이지 안에는 작은 애완견들이 아양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 중 덩치가 유독 커다란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가게 주인의 말로는 팔리지 않아서 샵에서 6개월 이상 키우던 개라고 했습니다. 개는, 전혀 기뻐보이지도 않았고, 심지어 우울해 보였습니다만 그 풀이 죽은 모습에서 저는 오히려 애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개를 만나서, 같이 행복해 지고 싶다는 염원을 갖게 된 것입니다. 환히 웃으며 개를 안았는데, 개는 그제서야 꼬리를 치며 제 품을 파고 들었습니다.
동물병원에 데려갔더니, 개는 2-3 개월 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로, 믹스견이라 덩치가 큰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펫샵의 주인에게 단단히 속은 거였죠. 심지어 개는 학대의 징후와 장애가 있었습니다. 수의사의 말에 따르면 펫샵 출신이라 앞으로 몇 개월 살지 못할 것이라는 무서운 말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개를 펩샵에 다시 돌려보내지않고, 남은 날들을 기쁨으로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신이 미천하다고 수명까지 짧아야 하다니,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요. 하여, 남은 날들을 차고 넘칠만큼 행복하게 해 줘야겠단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개에게는 미천한 출신으로 인한 자신의 커다란 덩치를 부끄러워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마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크고 위대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였습니다.
크고 위대한 강아지, 마하는 그로부터 14년을 더 살다가 제 품에 안겨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함께하는 동안 웃을 일이 참 많았습니다. 기뻤고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마하의 물건들을 정리하는데에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마하의 사진만 보면 울음이 터져서, 녀석의 사진도 모두 찾아 없앴고,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어서 다니던 회사도 퇴직했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애견 화장터에서 마하의 장례를 치룬 후,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정말... 삶의 의욕이 바닥남을 느꼈었습니다. 하루종일 울먹이며 직장동료와 고객을 응대해야 했는데, 그 날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퇴직 후에는 다시 일을 하지 않고 글만 쓰는 전업작가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애완동물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며, 자신이 사랑하는 주인의 불행을 모두 가져간다고요.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마하가 제 품을 떠난 이후로, 저는 곤란한 일들이 많이 줄었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화롭습니다. 제 삶의 불행들을, 불운들을 마하가 정말 모두 가져가버린 것만 같습니다.
삶이 조금 힘들어도 좋으니, 마하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 동안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젯 밤 꿈 속에 마하가 찾아와서, 저는 녀석을 끌어안고 많이, 아주 많이 웃었습니다. 우리는 힘차게 달렸고, 실컷 외쳤습니다. 녀석은 아주 밝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일어난 후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저는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이불 속에 누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견종정’은 우리의 첫만남을, 녀석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써본 시입니다. ‘한 눈에 반하다’는 뜻의 일견종정. 저는 마하를 처음 보았던 그 날, 녀석의 슬픔과 우울에 한 눈에 사로잡히고 말았는데, 녀석도 그랬을까요. 저를 처음 보았던 그 순간, 제 웃음을 보았던 그 때 주인 임을 알아보았을까요. 우리의 날들을 어찌 기억하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리운 아이, 나의 마하.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하다못해 죽은 뒤 하늘에서라도 잠시 만나는 기적이 허락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