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여전히 부운 눈.
파리한 낯빛,
바스락대는 비닐을 먹은 후론 더부룩해서 아픈 배.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은 없지만
고인 눈물 밖으로 고개를 빠곰 내밀어본다.
새벽이 쪼개져 수평선 위로 빛이 새로 앉는다.
분수에 맞게 자잘한 플랑크톤만 먹어야 했는데,
사람이 좋아서, 사람이 연일 자아내는 빛이 좋아서
놓고간 비닐들을 바지런히 주워먹었지.
미역과 닮은 그것을 우적우적 씹고 있을 땐
마냥 뭍의 존재가 된 것만 같아.
나의 검고 비대한 몸을 잊고 그들처럼
빛처럼
날쎈 무언가가 된 듯 했기에
속이 아파올 때까지 부러움을 씹어 삼켜왔다.
온갖 비닐로 부글대는 뱃속과 달리 고요한 물 밖
멀리 보이는 배는 통발을 거둠에 여념이 없고,
철썩 대는 물결에 그들의 손이 더뎌진다.
그래, 나의 눈물로 비롯된 거친 파도.
그래, 나의 한 숨으로 비롯된 거센 바람.
눈이 마주친 선원들의 고함과 손가락질을 뒤로하고
고독과 절망의 물살을 가른다.
그들의 놀란 표정은 수치심마저 자아내지만
뭍으로 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
매끈한 등에 햇빛이 어리는 것이 그나마의 격려.
반짝이는 빛을 얹고 나 역시 뭍으로 향해
붉은 온기를 느끼며 내일을 꿈꿔
물 밖의 아름다움을 향해
나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수심이 얕아지며 폐가 타들어가지만
어두운 어제와 멀어지며 숨이 멎어가지만
환상을 향하여, 뭍으로. 뭍으로.
까끌거리는 모래가 이제는 배에 닿는다.
쓰라린 희망에 온 몸을 부비며, 기어오른다.
멀리 한 무리의 고래 떼가 자족의 노래를 부르지만
내 목소리가 더해지지 않아 더욱 좋은 듯 해.
물 밖의 아름다움을 향해
나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환상을 향하여, 뭍으로.
뭍으로.
[ 시 노트 ]
2026년 3월 5일은, 제가 문예창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5300일이 되는 날입니다. 한 계절인 100일이 지날 때마다 저는 홀로 자축을 하곤 합니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가는 만큼 제가 빚어낸 문장들이 그만큼 늘어가고, 한 계절을 잘 견뎌낸 스스로에대한 자랑스러움도 조금씩 더해져 갑니다. 지난 겨울은 유독 힘이 들었던 시기였습니다. 몸이 많이 아팠고, 정신적으로 지쳤으며, 새로운 장르에대한 도전을 했기에, 한계까지 내몰렸던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글을 썼기에 고통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집필을 할 수 있었기에 기쁨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예쁜 봄이 되었고 새싹처럼 단단한 정신력과 강인한 체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또한 도전한 새 장르에 대한 결실도 조금씩 맺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업로드한 '뭍으로'는, 문예창작으로 인한 자기 치유 그리고 구원이라는 환상을 향하여, 몸과 정신이 망가질지언정 끊임없이 나아가는, 어리석고도 맹목적인 제 자신을 두고, 뭍을 향해 헤엄치는 고래에 투영하며 쓴 시입니다. 작 중 고래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사람들이 자아내는 빛에 홀려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주워먹고 배탈이 납니다. 몸은 형편없이 망가집니다. 하지만 동족들을 뒤로하고, 기어코 뭍으로 향합니다. 이 고래의 자살은 안타깝고 어리석어 보일 수 있지만, 고래의 입장에서는 꿈꾸는 이상을 향한 주체적인 삶,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죽음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고결하며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A4용지에 까만 활자를 적어나가는 행위에 일 백년의 귀한 수명을 모두 다 탕진한다는 것,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마저 글 쓰기에 매진한다는 것.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는 바라는 이상을 향한 주체적인 삶이자 스스로 택한 죽음의 방식인 것입니다. 집필이라는 행위에 저는 많은 의미와 상징을 두고 있습니다. 이 보다 중요한 가치는 제게 몇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평생 저는 행복했고, 행복하며, 행복할 것입니다.
이제 겨우 펜을 쥔 지 5300일이 되었습니다. 그의 곱절이 되는 시간 동안 마주하게 될 낯선 풍경들이 무척이나 기대되고 설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