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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May 27. 2024

'간소하게' 준비하는 '이바지음식'은 없다.

간소의 기준은 신랑 측과 신부 측이 너무 달라 정할 수가 없다.

  결혼식 전이나 후, 신부 측에서 신랑 측에 보내는 음식을 '이바지음식'이라 한다. 결혼으로 맺어진 두 집안의 화합과 존경을 상징하는 의미로 음식을 준비한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결혼하여 여자가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산다는 느낌이 강하여서, 시부모님이 며느리를 어여삐 챙겨주십사 하는 딸의 부모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현대사회에서는 이바지음식을 간소하게 하거나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의 경우,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이바지음식' 이야기가 서로 오고 가면서 어떻게 준비를 할지 고민을 하였다. 그러다 결국 '이바지음식'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쿨하게 이바지음식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 과정을 떠올려보며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출처: 블로그, 말똥이네 아침밥상


  달콤하고 꿈만 같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드디어 현실이 시작된다. 장기간 직장을 비우다가 출근할 때, 맨 손으로 갈 수는 없다.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경우, 답례 떡이나 과자라도 직장동료에게 돌리며, 나의 귀환을 알려야 한다. 그와 동시에 밀렸던 업무 폭탄을 하나하나 해결하며 직장생활의 공백을 메워 나간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직장에도 적응해야 하고, 양쪽 집안 어른들도 뵈어야 한다. 이제는 신혼부부가 되어 세트로 움직이게 되었다. 신혼여행 때 사 온 선물, 로열젤리를 드리러 우리 집에 먼저 갔다. 나의 부모님은 우리를 반겨 맞아주신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가다가, '이바지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전에는 결혼식을 하면 신부 측에서 이바지음식을 성대하고 정성스레 준비하여 보냈었던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이바지음식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하신다.

  "예전처럼 먹을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간소하게 생선 3마리, 과일 조금 하면 되지 않겠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투를 듣고 짐작하건대, 자신의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 요즘 이바지음식의 트렌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듯하다.


출처: 블로그, 임옥휘의 젬마전통음식연구원


  처음에는 그것을 쉽게 생각하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처갓집을 방문하여 이바지음식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생선 3마리, 과일 조금. 사과, 배 정도. 말씀하시던데요."

  그 내용을 장모님께 전달하니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모님께서는 이바지음식에 대한 엄청난 고민을 시작하시게 된 것이다. 생선을 선물로 주는 것은 얼마나 큰 생선이어야 하나? 과일은 준비했는데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백화점에 가서 고급 과일과 생선을 사야 하나?


  양쪽 부모님 모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의 어머니 입장에서는 이바지음식을 '간소하게 생선, 과일 정도만 받아도 되니 너무 거창하게 준비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본인의 뜻을 전달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장모님 입장에서는 '준비하는 생선, 과일이 최상급 물건으로 마련하여 소홀함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혹시 물건을 받고 서운해하시지 않을까?'를 염두에 두신다.


  참 애매하고도 어려운 이바지음식이다. 조기를 한 마리 준비했는데, 아주 튼실하고 큰 놈으로 마련하여 보내면 시댁에서는 '무리하셨네요, 뭘 이런 걸 다.' 하면서 부담스러워하며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기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으면 주는 입장에서는 소홀히 준비한 듯한 느낌이 들고, 받는 입장에서는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소홀함 없이 최상급의 물건을 보내드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받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기에 돈이 많이 들더라고 서운함을 느끼지 않게 준비하려 할 것이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너무 비싸고 과한 이바지음식을 받으면 부담될 것이고, 소홀히 준비된 물건을 받으면 기분 나쁨을 느낄 것이다. 말이 '간소하게'이지만, 애당초 '간소하게'라는 말이 성립이 안 되는 이바지음식이 아닌가!


출처: 블로그, 예향


  장모님께서 백화점에서 생선과 과일을 구입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신다는 말을 나의 부모님께 전했다. 그 말을 들으시고, 아차! 싶으신지, 그냥 이바지음식은 없던 일로 하자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양쪽 모두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결혼을 시키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상대편 부모가 참 조심스럽다. 나의 자녀가 그쪽 집안에 가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 시댁이나 처갓집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잘 처신할지 등 걱정이 태산일 것이다. 그 와중에 '이바지음식'은 그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는 현물인 것이다. 과해서도 안되고, 소홀해서도 안 되는 그 중도를 걷는 이바지음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이제는 이바지음식을 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 주고받는 집안도 있을 것이다. 결혼 관련, 비단 이바지음식뿐 만 아니라, 양쪽 집안이 얽혀있는 일들은 최대한 줄이고, 안 할 수 있는 것은 안 하는 것이 모두 다 마음 편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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