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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Aug 25. 2024

아저씨들이 왜 물수건으로 겨드랑이를 닦는지 알게 되다.

어느 날 갑자기 겨드랑이의 찝찝함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식당에 가보면 아저씨들이 물수건으로 얼굴, 손을 닦고 겨드랑이까지 닦는 것을 가끔 본다. 공공장소에서 참 매너 없는 행동이지 않나! 주변 사람들이게 불쾌감을 주면서 저런 행동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겨드랑이에 땀이 나면 그 찝찝함이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살짝 생긴다.

 '아! 너무나도 찝찝하여 공공장소에서의 매너가 아님을 알지만 겨드랑이를 닦았구나!'


  여름에 겨드랑이에 땀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마에 땀이 나는 것처럼 몸에 땀샘이 있는 구멍에서 체온조절을 위해 땀을 배출한다. 곁땀. 예전에는 별 신경이 안 쓰이고 그냥 지나쳤는데 요즘 유독 시리 찝찝함이 느껴진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때도 일부러 허리를 펴고 겨드랑이에 살짝 공간을 만든다. 그러면 바람이 통해서 그 찝찝함이 덜하다. 이 자세를 어디에서 봤나 생각해 보니, 나의 이 자세는 '장군의 아들'에서 본 하야시가 앉아 있을 때의 자세이다. 하야시도 겨드랑이에 땀이 차는 것이 많이 찝찝했었나 보다.


출처: 포토뉴스, newsen.com

  예전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들이 크게 다가오며 나를 변화시킨 것들이 있다. '이 닦기'.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입 안의 찝찝함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를 안 닦아도 안 찝찝하였고, 이 닦는 것이 귀찮아서 생략한 적도 있다. 그런데 마흔을 넘기고 몇 년 전부터는 이를 안 닦으면 너무나 찝찝하다. 이 찝찝함을 견딜 수 없어서 식사 후에 이를 꼼꼼하게 닦는다. 나의 치아 건강에는 참 좋은 일이다. 이렇게 변한 까닭은 치아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찝찝함을 면하게 위함이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전에는 술 마시고 난 다음날, '입마름'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술을 많이 마시면 탈수 증상이 나타나 입이 마른다. 그냥 물을 많이 마시면서 그려려니 하며 하루를 보내면 입마름이 가신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입마름이 너무  싫어졌다. 그것도 마흔이 넘고 나서인 것 같다. 술 먹고 난 다음날 힘든 것도 싫지만, 입마름이 너무나 싫어서 이제는 술을 적게 먹거나 안 먹는다. 이상하게 나이가 드니 '입마름'이 너무나도 거슬린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내 몸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기분이 변하면서 생활습관이 조금 변하였다. 겨드랑이의 찝찝함이 너무나도 크면 나도 공공장소에서 물수건으로 겨드랑이를 닦고 있는 아저씨가 되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의 눈보다 나의 찝찝함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참아야지! 대신 하야시처럼 허리를 곧게 펴고 팔을 몸통에서 살짝 떼서 겨드랑이에 바람이 통하도록 앉아 있을 듯싶다.


  나이가 들면서 변한 것이 또 있다. 예전에는 영화나 공연을 볼 때 꾸벅꾸벅 조는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비싼 돈을 주고 보러 와서 자고 있지? 밤에 안 자고 뭐 했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 내가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서 졸고 있다. 안 자야지! 뮤지컬은 생동감 넘치니까 안 잘 꺼야! 하면서도 어느 순간 내 머리가 헤드뱅잉을 하고 있다. 옆에서 여보와 아이들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예전에 내가 그런 사람들을 보던 그 눈빛으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윗 세대들의 모습과 행동을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음이 놀랍다. 그러면서 나도 공연장에서 졸고, 겨드랑이 땀을 닦는 구세대로 점점 변하는 것일까?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이렇게 변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일까?


출처: 포토뉴스, news.naver.com

  '트로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트로트'라는 장르의 음악을 사실 안 좋아한다. 어르신들이 트로트를 듣고, 버스에서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장인어른, 장모님께서는 트로트를 좋아하신다. 요즘은 트로트 관련 음악 프로그램도 참 많다. 과연 나도 더 나이가 들면 트로트를 좋아할까? '에이, 트로트를 왜 들어?' 하던 내가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리면 트로트를 좋아하며 듣고 부르고 있을까?


  그 세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그 세대가 되면서 이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릴 때는 추어탕이나 어탕국수가 싫은데, 나이가 들면 그런 음식의 맛을 알게 되고 찾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지금 나의 자녀들이 나를 볼 때 젊은 아저씨에서 늙은 아저씨로 변해가는 시기인 것 같다. 나의 아이들은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 꾸벅꾸벅 조는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왜 비싼 돈 주고 보러 와서 졸고 있지?'


  식사시간에 허리를 곧게 펴고 팔을 살짝 벌린 자세로 앉아서 밥을 먹는 나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왜 저런 불편한 자세로 밥을 먹고 있지?'

  나의 자녀들이 내 나이가 되면 그 마음을 알게 될까? 겨드랑이의 찝찝함이 너무나 견딜 수 없어서 그런 자세로 앉아 있었구나! 나의 아들이 나이를 먹어 마흔이 넘으면 나를 이해하게 될까?


  사람이 그 상황, 그 나이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 같다. 겨드랑이의 땀을 닦는 몰상식한 매너 없는 행동을 이해하게 될 줄이야!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트로트를 좋아하는 것도 이해하고 공감할 날이 아마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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