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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Aug 30. 2024

나는 프로답지 않은데, 나를 프로답게 대한다.

경력이 쌓이니 직장에서 사람들은 나를 '프로페셔널'하게 보는 듯.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을 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 간다. 초등교사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제일 우선이 '수업'이다. 어떤 학년을 맞더라도 그 학년의 교육과정에 맞게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학교에서 각자가 맡은 업무를 잘 처리해야 한다. 각 부서별로 다양한 업무를 그 학교의 교사들이 나누어 맡아 처리한다. 교무부, 체육부, 정보부, 창의인성부, 생활부 등 그 학교의 특성에 맞게 부서를 나누고 부장과 담당자를 정해서 업무를 나누어 맡는다.


  2006년 9월 신교발령을 받아 학교라는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처음 담임이 되어 아이들 앞에 서서 수업을 하였다. 5학년 담임을 처음 맡았다. 그러면서 맡게 된 업무는 육상지도, 직원체육이었던 것 같다. 당시 1학기 담임이 군에 가면서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어 수월한 업무를 나에게 배정한 듯하다. 하루하루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었다.


  다음 해에도 5학년 담임, 그다음 해에는 4학년 담임, 그리고 체육 전담교사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를 옮겨서는 6학년을 3번 하고, 2학년을 1번 했다. 그다음 학교에서는 6, 5, 2, 4학년. 또 학교를 옮겨서는 체육 전담, 과학전담 및 육아휴직, 6학년 2번, 5학년 담임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또 체육 전담. 결과적으로 나의 교직생활 중 1, 3학년 담임을 해본 적이 없다. 만약 내가 1학년 담임을 맡게 된다면, 엄청 떨리고 부담될 것 같다. 아직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기에.


  내가 지금껏 맡았던 업무도 한 번 생각해 본다. 체육 관련 업무, 홈페이지, 연구학교 관련 일, 자치활동, 인성부장, 진로부장, 독서부장, 체육부장, 과학부장, 인성 관련 일 등을 맡았었다. 학교의 수많은 업무 중 내가 경험해 본 업무는 전체의 1/4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머지 3/4의 업무를 맡게 된다면 생소하여 버벅대면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출처: 블로그, 따뜻한 집필실

  신규 때 보았던 40대 부장님들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자신이 맡은 일을 척척 잘 처리하고, 학급경영이나 수업면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아! 나도 경력이 쌓이면 저런 부장교사가 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한 해, 한 해 살다 보니, 어느덧 나도 그때 보았던 부장교사의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때 만났던 부장교사만큼 여유롭지도, 프로페셔널하지도 않은 것 같다. 아직도 못해 본 학년은 부담되고, 안 맡아본 업무가 많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빛을 보면, 예전 내가 부장교사를 보던 그 눈빛으로 나를 본다. 나이 사십이 넘은 중견교사이니 경험이 풍부하여 무슨 업무를 맡겨도 잘할 것이고, 어떤 학년을 맡아도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 같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아직 '프로답지' 않은데,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함에 있어서는 '프로답다.'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 괴리감을 충족하기 위하여 나는 프로다운 척, 프로답게 행동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각종 업무를 해봤기에 새로운 학년, 생소한 업무를 맡아도 어찌어찌해나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초반에 버벅거리거나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하지만 낯선 일들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은 계속 내 안에 있을 듯하다. 그래도 그 마음들을 표현할 수 없다. 이제는 중견교사이기에 사람들에게 부족하거나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 버렸다. 나중에 대나무 숲을 찾아가 소리를 질러야 하나?

  "난 아직도 두렵고 힘든 일이 많다고! 그걸 표 안 내고 하려니 힘들다고!"


출처: 블로그, 최강 대박신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교육청에 일하는 장학사들도 처음 자신의 업무를 맡으면 파악하기 전까지 버벅거리며 힘들어할 것이라고. 교육부에서 일하는 관계자들도 자신의 일을 처음 맡았을 때는 몰라서 힘들 것이다. 그래도 힘들거나 어렵다는 티를 최대한 내지 않고 일처리를 할 것이다. 자신에게 걸려오는 민원 전화에 응대하며 하나하나 찾아가며 민원을 처리해 나갈 것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저렇게 하겠습니다, 하면서 말을 한다. 하지만 그분도 처음 대통령이라는 직을 갖게 되고 일처리를 하게 된다. 그 부담감과 어려움이 얼마나 클까?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결재를 요청한다. 아마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일들도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표정과 자세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 자신은 '프로다운 대통령'이 되어야 하기에.


  부모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살면서 부모라는 역할을 연습해 본 적이 없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부모가 된다. 초보 부모이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초보 부모는 점점 '프로 다운 부모'로 성장해 간다. 아이의 눈에는 믿음직한 부모이지만, 그 부모는 사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허덕이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불완전한 어른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 불완전함을 보일 수는 없다. 부모라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프로 부모'인 척 부모답게 살아간다. 자녀가 커감에 따라 자녀의 진학, 자녀의 결혼, 자녀의 출산도 처음 겪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이벤트들을 하나하나 헤쳐나가면서, 두려움과 긴장감이 있지만 최대한 표 내지 않고 부모 역할을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프로답지 않지만, 프로다운 척, 프로답기 위해서' 애를 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주변에서 나를 프로답게 대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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