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니홉 Aug 27. 2024

나의 절친 '조부장님'

나보다 열여덟 살 많으신 조부장님을 감히 '절친'이라 부르고 싶다.

  때는 바야흐로 2006년 9월, 스물여섯 살 청년이 군 제대 후 신규 발령을 받아 초임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연구부장님이셨던 '조부장님'께서 나를 환대해 주셨다. 장교 출신에, 키도 크고, 글씨도 예쁘게 잘 쓴다면서 나에게 칭찬 세례를 퍼부어 주신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 주시며 악수를 청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우리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조부장님은 사회에서 만난 인연 중, 나와 나이 차이가 18년이 나는 선배교사이다. 조부장님을 감히 '절친'이라 부르고 싶다. 그분과 함께한 에피소드가 많고, 나누었던 이야기가 많고, 함께 마셨던 술이 많기에. 2006년 처음 만나 세월이 흘러 2024년이 되었다. 나이를 계산해 보니, 당시 2006년에 내 나이가 26살, 조부장님의 나이가 44살이었고, 지금 내 나이가 44살, 조부장님의 나이가 62살이다. 글을 쓰는 이 시점의 내 나이가 조부장님이 나를 처음 만났었던 나이인 것이다. 나는 '닭띠'이고, 조부장님은 '토끼띠'이시다.


출처: 블로그, 비막는 남자

  당시 연구부장을 하시던 조부장님께서는 나에게 일을 좀 도와 달라고 하셨다. 나도 조부장님을 좋아했기에 흔쾌히 함께 저녁에 남아 일을 많이 했다. 교육계획서 작업, 연구학교 관련 일 등 당시 신규였던 나는 함께 남아 일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모든 사람이 퇴근 후 교무실에 둘이 앉아 연구부장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일하였다. 젊은 내가 문서 편집 능력이 나으니, 조부장님이 불러주는 대로, 혹은 둘이 문구를 의논하여 작업을 하였다.


  같이 근무할 때 함께 여행도 많이 다녔다. 2007년 개교기념일에 지리산 등산을 함께 갔다. 햇반, 반찬, 소주 등 장을 보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장터목 산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천왕봉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하였다.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이동하는 차 안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고민거리, 가족사, 연애 상담 등 조부장님과 대화를 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다. 그 와중에 술을 한 잔 함께 하면 더욱 즐겁다.

 

  2008년에는 교장선생님의 제안으로 동료교사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교장선생님의 친구분 중 독일에서 음악공부를 하신 교수님이 가이드를 맡아주셨다. 술을 좋아하는 교장선생님, 조부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서 매일 저녁 소주를 2병씩 마셨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를 렌터카로 다녔다. 조부장님과 나는 스위스의 어느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함께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부장님과 나는 맥주, 와인을 골고루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그때 조부장님께서 무리를 하셨는지 토하셨다면서.

  "이제 나는 육해공에서 다 토한 사람이 되었단다."

  "아, 축하드립니다. 값진 경험이네요."

  유럽여행 관련 글을 한 번 적어보려 조부장님께 전화를 드리니 그때가 생각난다면서 목소리가 한껏 들뜨셨다. 누군가와 진귀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같이 동학년을 하면서 동학년 멤버들과 1박 2일 여행을 가기도 했다. 교직생활 중 동학년이 그렇게 여행을 가는 경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남해, 순천, 보성, 진주 쪽을 돌았던 기억이 난다. 조부장님의 온화하고 편안한 성품 덕분에 동학년 분위기가 좋아서 가능했던 여행이었다. 조부장님께서 친히 운전을 하시고, 동학년의 다양한 연령대를 잘 아우르시는 대화로 여행을 편안하고 즐겁게 이끌어 주셨다.


  나의 삶의 전환점에도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결혼 전 연애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털어놓으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해답도 제시해 주셨다. 결혼 후에는 여보와의 다툼이 있거나 마음이 불편할 때 연락 드리면, 만나서 함께 술 한 잔 하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사는 집이 멀지 않아 동네 주민이라면서, 늦은 시간에도 기꺼이 나와주셨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내 마음을 공감해주기도 하고,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기도 하셨다. 함께 술 한 잔 하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내 마음은 후련하고 평온했다.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난 고아가 되었다. 그러면서 형과도 관계가 틀어지며 내 마음이 너무나도 심란한 적이 있다. 죽을 듯이 답답하여 조부장님이 생각나 연락을 하니 만나 주셨다. 그때도 조부장님께서는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시며, 함께 마음 아파해 주셨다. 나는 울분을 토하며 눈물을 흘리며 소수 잔을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나의 빈 잔을 말없이 채워주시며 내 앞에 앉아계셨던 그때의 조부장님이 너무나도 고맙다.


  함께 근무했던 학교에는 나를 포함한 총각 삼인방이 있었다. 그 세 명과 조부장님은 다들 학교를 옮기며 흩어진 후에도 종종 만났었다. 네 명 모두 성씨가 달라 우리의 모임명은 '조채남강'이었다. 함께 만나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면 편안하고 즐거운 네 명이라, 아주 띄엄띄엄 만나도 반갑고 정다웠다. 보통은 내가 모임을 추진하였는데 둘째를 낳고 키우면서는 저녁 술자리를 피하게 되어 '조채남강' 모임이 중지되었다.


  대신 가끔 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토크를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방학 때 한 번 정도 낮시간에 만나 점심을 먹기도 한다. 작년에는 둘이 브런치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꽤 유명한 브런치 식당이었는데, 테이블 가득 찬 손님들 중에 남자가 우리 둘 뿐이라는 사실에 놀랐었다. 조부장님께서 그때 한 말씀하셨다.

  "수개미들은 다 일하러 가고, 여왕개미들이 여기에 모여 있군요."

  그렇게 수개미 두 마리는 난생처음 둘이서 브런치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조부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끝도 없이 떠들게 된다. 나의 이야기도 많이 하고, 조부장님의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된다. 서로의 근황, 가족사, 관심사 등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밤 시간에 술자리가 아닌, 낮 시간에 브런치를 먹으면서도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이것이 조부장님의 매력이다. 조부장님과 이야기를 하면 즐겁고 유쾌하고 편안하다. 그리고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출처: 블로그, 선캘리

  조부장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두 가지가 있다. 가정의 화목과 가족을 우선시하는 조부장님의 주옥같은 말씀이다.

  "회식자리에는 네가 없어도 되지만, 가정에는 네가 없으면 안 된다."

  "우리 다 내일이 있은 사람들이니, 오늘은 이만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요."

  이 두 말씀을 잘 기억해서 내 삶에 적용하며 살고 있다.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조부장님을 '스승', '선배'라는 호칭 말고, '절친'이라고 부르고 싶다. 조부장님께서 기분 나빠하시지 않으신다면.


이전 15화 드디어 아들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