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초등교육기관이 내가 4학년 때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명칭도 바뀌었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 교실 안의 모습들도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처음 발령받았을 당시와 지금 학교의 모습을 비교해도 상당히 많이 변하였다. 교사를 대하는 학부모의 태도와 시선, 사회에서 교사의 위치도 많이 달라졌다. 그중 세 가지에 대하여 적어보려 한다. 교사는 달라진 학교현장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첫 번째로 '학부모가 싸주시던 김밥'이 사라졌다. 내가 어렸을 때 소풍 갔을 때 선생님들의 점심식사 모습이 생각난다. 몇 명 학부모가 고기며, 술이며 먹을 것을 푸짐하게 싸들고 와서 대접하던 때이다. 그때는 학부모들이 교사를 그렇게 챙기는 것이 부담이 되었겠지만, 당연하다 여기던 시절이었으리라. 애들은 소풍 장소에서 알아서 놀아라고 풀어놓고, 선생님들은 모여서 회식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건 좀 과하다 싶긴 하다.
신규교사 시절에는 소풍을 가면 학부모들이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싸주셨다. 반의 회장이나 음식 솜씨가 있는 학부모가 담임의 도시락을 챙긴다. 소풍 장소에 가서 도시락을 열어보면 김밥이 참 예쁘다. 맛있게 먹고, 학교로 복귀하여 도시락통을 씻어 닦은 후, 그 안에 감사의 편지나 사탕, 초콜릿 등을 넣어서 되돌려 주었다. 어찌 보면 참 정이 넘치는 도시락이고, 어찌 보면 참 부담스러운 도시락이었으리라.
담임에게 줄 도시락을 싸기 위하여 그 학부모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쌌을 것이다. 만든 김밥 중에 가장 예쁘게 잘 싸진 놈으로 골라, 가장 예쁘게 썰어진 것들을 도시락에 담았을 것이다. 그러한 정성과 수고를 생각하면 정말 고맙다. 그리고 그 학부모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소풍을 가면 그렇게 담임 도시락을 학부모가 챙기다가 김영란법이 생기고 난 후, 일절 그런 도시락은 없다. 학부모에게 부담도 없고, 서로서로 깔끔하다. 뭔가 정이 없다.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는 것은 좋은데, 너무나 정이 메말라버린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십시일반 하여 케이크를 사서 담임의 생일을 챙겨주었다고 한다. 아이들 중 몇 명은 그렇게 담임의 생일을 챙기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자신의 SNS에 올렸다. 그 사진을 보고 어느 학부모가 신고를 한다. 담임이 아이들에게 케이크를 받은 것은 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그 담임은 징계를 먹었다. 케이크를 선물해 준 아이들의 마음은 참 고마우나, 그것이 담임에게 독이 되는 참 씁쓸한 경우이다.
두 번째로 사라진 것은 '운동회'이다. 나의 6학년 때 운동회 종목은 '차전놀이'였다. 6학년 남학생들은 웃통을 까고 거대한 차전놀이 기구인 '동채'를 어깨에 짊어 메었다. '으쌰으쌰'를 외치며 이동하고, 동채 위에는 전교회장이 장군복장과 칼을 들고 서있다. 두 개의 동채가 맞붙고, 기싸움이 시작된다. 어떻게 승패가 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많은 아이들이 동원되어 차전놀이를 재현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학급당 인원수가 30명 정도 되고, 12반까지 있었기에 가능한 종목이었던 것 같다.
출처: 웹, namu.wiki
신규발령을 받고 운동회를 준비하였다. 운동회 전날 체육창고에서운동회에 필요한 물품을 꺼내고 개선문을 설치했다. 기억나는 물품 중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낚싯대와 큰 나무상자가 있다. 큰 나무상자 속에 남교사 한 명이 들어가 어르신이 낚싯대를 내리면 선물이 담긴 검은 봉지를 걸어주는 놀이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만국기를 설치했다. 다섯 방향으로 만국기를 늘어뜨리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중앙을 잡은 다음, 저 멀리 있는 높은 나무나 구조물에 만국기줄을 고정했다. 준비를 마치고 인근 식당에 가서 '운동회 전야제 축하주'를 마시고 헤어졌다.
운동회 당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운동장에 물을 뿌리고, 횟가루로 라인을 그렸다. 각종 물품들을 쓸 수 있게 정리하고 아침밥을 먹으러 인근 식당에 간다. 아침 식사를 하며 반주로 소주 한 잔씩 마셨다. 그때는 그랬었다. 그 식당의 주인도 학부모였을텐데 교사들이 운동회날 아침에 음주하는 것에 대하여 민원을 제기하지 않고, 고생이 많으시겠다며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그러한 운동회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미세먼지'때문이다. 5월 초 날씨는 보통 화창하고 맑은 날이어서 운동회 하기 딱 좋았다. 어느 순간 미세먼지 이야기가 나오더니, 운동회를 하면서도 미세먼지가 보통인지, 나쁨인지 신경을 쓰는 관리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후부터 운동회를 하지 않고 '스포츠데이'행사를 한다. 학년별로 체육관에 모여서 소운동회 느낌의 체육행사를 한다. 기상이변으로 미세먼지가 자주 발생하여 운동회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다.
교실 앞에는 칠판이 있다. 아니 칠판이 있었다. 선생님은분필을 사용하여 칠판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설명한다. 학창 시절에 다들 칠판에 낙서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필로 칠판에 적는 그 느낌이 신기하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분필은 점점 짧아지고, 하얀 글씨가 나온다. 그 분필과 칠판이 이제는 교실에 없다. 대신 '전자칠판'이 그 자리에 있다. 큰 태블릿이라 보면 된다. 전자펜이나 손가락으로 노트처럼 쓸 수 있고, 동영상도 보여 줄 수 있다.
출처: 블로그, 지오영상
작년, 올해 점차적으로 모든 교실에 칠판이 전자칠판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이다.아마 지금 1학년들은 '분필'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교실에서 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교실에 스마트기기들이 많이 들어온다. 전자칠판, 개인별 태블릿 등. 조금은 우려스럽기도 하다. 아이들의 눈이 화면에 노출되는 시간이 너무나도 많다. 전자칠판을 보고 수업을 듣고, 태블릿을 조작하며 공부를 한다.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쓰는 시간이 점차 줄어든다.
필기도구를 점차 사용하지 않는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200년 전에는 붓으로 화선지에 글씨를 쓰면서 공부를 했다. 그때 연필이라는 도구를 접하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을 것이다. 화선지가 구멍이 다 뚫리겠네! 연필을 어떻게 사용하지. 그러면서 종이가 점점 두꺼워졌을 것이다. 200년 후를 상상해 본다. 다들 손가락으로 태블릿에 글씨를 쓰고 있다. 연필이라는 도구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연필을 사용하면서 먹과 붓이 사라진 것처럼,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면서 연필 또한 옛 유물이 될지도.
학교현장에서 사라진 세 가지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세상이 변함에 따라 학교현장도 변한다. 기상의 변화, 기술의 발전, 인구의 감소 등 많은 요인들로 학교의 모습들도 차차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60살 원로교사가 되어서도 학교현장에 있을까? 만약 그때도 교실을 지키고 있다면 이 글에 추가해서 학교현장에서 사라진 것들을 적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