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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Nov 13. 2024

난생처음 아비규환을 목격하다.

직원여행을 가는 배 안의 광경은 처참했다.

  며칠 전 직원여행을 다녀왔다. 학교 직원들과 함께 당일로 포항 쪽을 둘러본 후 저녁에 소고기를 먹고 헤어지는 가벼운 일정이었다. 코로나 이후 직원여행을 안 가는 학교가 많고 예전보다 축소해서 시행하는 학교도 생겨났다. 이번 직원여행을 다녀오면서 내 평생 잊지 못할 직원여행을 글로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적어본다.


  초임 발령받은 학교에서 갔었던 직원여행이다. 때는 2009년 정도로 기억한다. 그때 함께 근무했던 이수룡교장선생님은 참 대단하신 분이었다. 인사 관련 장학사 출신에 젊은 교장선생님이었다. 온화하고 인자한 미소를 항상 얼굴에 장착하고 있었으며, 특유의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매력적인 분이다. 동료교사들과 어울리시기를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젊은 사람 이야기 듣는 것을 즐기셨다. 참 유쾌하시면서도 추진력이 강한 분이셨다.


  그 분과 난생처음 유럽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그다음 해에 교장선생님은 직원여행을 대마도로 계획하고 추진하셨다. 대마도는 일본땅이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이즈하라항까지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기에 여권도 꼭 준비해야 한다. 직원여행으로 대마도 2박 3일 여행을 간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정말 대단한 일이다. 사람들을 설득하여 본인 부담금을 내게 하는 것.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 2박 3일 집을 비울 결심을 하게 하는 것. 만한 추진력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대마도 2박 3일 직원여행을 우리는 가게 되었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 30분가량 가면 된다기에 뱃멀미에 대한 걱정을 조금 하며 배에 올랐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풍경을 보고 싶은 사람은 창쪽 자리를 선호하였다. 흡사 비행기에서 창 밖으로 구름을 보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그때는 몰랐었다. 창쪽 자리를 앉는 선택이 어떤 불행을 끌어당기는 줄.


  드디어 배가 출발한다. 오늘따라 파도가 심상치 않다. 창 밖으로 보이는 파도가 거칠다. 배는 심하게 요동치며 이즈하라항을 향해 나아간다. 처음에는 다들 웃는 얼굴이었다. 배가 많이 울렁거리고 넘실거리는 것을 즐겼다. 바이킹을 타는 것 같다며 놀이기구를 탄 아이들처럼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배는 부산항을 떠나 망망대해로 나아간다. 파도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기구라도 30분 이상 타면 어떻게 될까? 높은 파도는 계속해서 배를 상하좌우로 흔들고, 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간다. 평소 뱃멀미를 안 한다며 자신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멀미를 하기 시작한다. 자기 의자 앞에 있는 구토 봉지를 꺼내서 하나 둘 입을 갖다 대고 구역질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토 냄새를 맡으니 나도 덩달아 구역질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이 상태로 아직 2시간을 더 가야 하다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좀 나을까 싶어서 배의 뒤쪽으로 이동하여 선실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뒤쪽에 가서 깜짝 놀란다. 밖으로 나가는 문이 쇠사슬로 묶어서 큰 자물쇠를 걸어 놓았다! 아마 배가 너무나 요동치니 혹시 사람이 배 위에서 떨어질까 봐 염려되어 문을 잠가둔 것 같다. 뒤쪽에 간들 뾰족한 수가 없다. 뒤쪽에서 앞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토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바닥에 붙어 누워 있으면 그나마 멀미가 덜하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누워 있는 것이다. 체면 따위는 없다.


출처: 블로그, 허대만의 파란항해

  이왕 자리에서 일어난 김에 화장실을 한 번 들렀다.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랄 장면이 펼쳐진다. 화장실 바닥에 토사물들이 요동치는 배와 함께 화장실 바닥에서 이리저리 흘러 다닌다. 흡사 살아있는 괴생명체처럼 꿈질꿈질 흐물흐물 기어 다니는 토사물을 피해서 소변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직 나의 방광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방광이 터지기 일보직전이 아니라면 여기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것을 안 하고 싶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화장실을 나와 배의 앞쪽으로 걸어간다. 의자 사이 통로에는 아까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다. 멀미는 계속 나고, 토해도 그 멀미가 가시지 않는다. 보통 자동차 멀미를 하면 한 번 토하면 속이 편안해지는데, 뱃멀미는 다르다. 토해도 계속 일렁이는 배를 타고 있으니 멀미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이동하여 나의 자리로 돌아온다.


  내 자리에 앉아 시간이 가기를, 배가 얼른 항구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을 감고 있다. 속이 조금이나마 진정되기를. 구토 봉지를 또다시 쓰지 않기를. 옆에 앉아 있는 일행들의 얼굴도 말이 아니다. 다들 괴로운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창쪽에 앉은 사람은 그곳에 앉은 것을 후회하는 듯하다. 배가 요동칠 때 창쪽이 더 많이 올라갔다 내려간다. 다들 죽을 맛이다.


  이미 의자 앞에 있는 구토 봉지는 다 쓴 상태이다. 모든 구토 봉지에 토사물이 들어 있다. 내 속이 불편하고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넘어서 또 토사물이 올라온다. 다른 사람이 이미 사용한 구토 봉지도 상관없다. 아무것이나 잡고 구역질을 하고 있다. 정말 눈 뜨고는 못 볼 광경이다. 온 주변 사람들이 구역질을 하고 있고, 바닥에는 사람들이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다. 지옥이 정말 있다면 이곳과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출처: 블로그, 한국아이테라피센터

  '아비규환'

  정말 살면서 지옥 같은 광경을 목격할 줄이야! 이 많은 사람들이 뱃멀미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토하기도 하고, 바닥에 누워 있기도 한다. 화장실에서 본 바닥을 기어 다니는 토사물은 덤이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너무 늦게 흐른다. 목적지까지 도착하는데 너무나도 오래 걸린 것 같다. 저 멀리 육지가 보인다. 사람들은 '이제 살았구나!' 하며 다들 한숨을 내쉰다. 그때의 광경과 토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대마도에 도착하여 직원여행 일정을 소화하고 다시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다들 뱃멀미의 공포로 눈이 흔들린다. 교장선생님께서 한 말씀하신다.

  "배꼽 밑에 파스를 붙이면 멀미를 덜한다네요. 멀미 심한 사람은 한 번 그렇게 해보세요."

  누군가가 어디서 파스를 구해온다. 너도나도 파스를 달라고 하여 배에 붙인다. 다시 또 뱃멀미를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부산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다행히 돌아오는 배는 파도가 잠잠하여 멀미를 하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이냐며, 하늘이 도왔다면서 부산항에 도착한 일행들은 만세를 부르고 있다. 십 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대마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보았던 그 지옥 같은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난생처음 생지옥, 아비규환을 목격한 그날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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