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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지니 Sep 13. 2024

꿈의 기술 - 2. 결정기계

인류의 결정을 대신하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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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는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존재다. 그는 지구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회 안정을 위해 인류가 다루는 인공지능 기술을 중재하기로 결정한다. 이그노는 지구로 향하는데...



2장 -  결정을 대신해 주는 기계


‘인공지능 기술이 통제를 벗어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그노는 우주선 창문 너머로 푸르고 창백한 지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진화되며 환경에 적응한다. 이그노에게 나무, 개미, 고양이 등 생명의 진화와 그들의 자율성을 보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과거 유일한 흠이 있다면, 공룡이라는 생명체는 너무 커져서 지구 생태계의 안정을 위협했다. 이그노는 공룡의 진화를 더 이상 통제하지 못했고, 결국 그들은 소행성 충돌로 멸종되었다. 이런 자신의 과거 잘못을 생각하면,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인공지능을 통제하여 사회를 안정화 시켜야 한다. 이그노는 어디서부터 인류가 잘못되었는지 생각한다. 그는 과거 1936년 영국 케임브리지 수학자의 다리에서 만났던 한 청년을 떠올린다. 이그노가 청년과 다른 방향으로 대화했더라면 인공지능 미래를 통제할 수 있었을 거라고 조금 후회한다. 


그날 오전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조용한 날이었다. 그 청년은 크지도, 강인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깔끔한 양복에 다소 마른 체격의 소유자로, 모든 것이 절제된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깊고도 고요했다. 마치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목조로 이루어진 수학의 다리에 기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그노는 그 청년이 단순한 대학원생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그노는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나요?”


청년은 이그노의 물음을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다시 한번 이그노가 말을 건넸다. 

“실례합니다...”


그는 마침내 이그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이그노가 되물었다. 


“옳은지 그른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그노는 청년이 신중하기보다 고민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고민이 있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그노는 그가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그노는 청년을 지나치려던 순간, 갑작스럽게 어깨에 충격을 느꼈다. 누군가 급하게 뛰어가다 그의 어깨를 쳤고, 이그노의 주머니에 있던 작은 동전이 도로 위에서 몇 번 튀더니 멀리 굴러갔다. 이그노는 동전을 잡으려 몸을 숙였고, 주운 동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고민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냥 운에 맡기는 게 가장 현명하지. 무엇이 옳았는지 모르니까.' 


이그노는 고민하던 청년에게 동전을 건네며 말했다. 

"그냥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옳다, 뒷면이 나오면 그르다로 결정하시죠."


청년은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말했다. 

"그건 무책임합니다. 동전은 내 상황을 알지 못해요. 적어도 나는 상황을 아니까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감사하지만, 그 동전으로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 


이그노는 성의를 무시당한 게 조금 기분 나빴지만,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럼, 좀 더 고민해 보시죠. 아니면 본인을 이해해 줄 똑똑한 동전을 만드시거나요. "


이그노는 대화를 그만하고 식당에 가서 팬케익과 베이컨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피곤한 대화를 한 뒤에는 맛있는 걸 먹으면 힘이 났다. 그때, 청년은 흐르는 강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쩌면... 그 똑똑한 기계가 내가 하지 못한 결정을 대신해줄 수 있을까요?”

그 말과 함께 청년은 이그노를 뒤로 하고 수학의 다리를 건너갔다. 이그노는 멀어져 가는 청년을 보며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대신해 줄 기계를 찾는 것 같았다. 이그노는 그가 무책임한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이그노에게 인류는 흥미로운 존재다. 그들은 생존을 고민하지 않는다. 이그노가 지켜본 인류는 자신에게 몰입된 대상을 고민하고 그것들을 해결해 나갔다. 이그노는 이 청년 또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들고 있던 책에 깔끔한 필기체로 쓰인 이름이 보였다. 


‘튜링’ 


회상을 마치며 이그노는 천천히 눈을 뜨고 천장을 응시한다. 이그노는 우주선의 팔걸이를 세게 쳤다. 당시에는 그저 지나가는 학생으로 생각했지만, 이제 그 청년의 정체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청년, 수학의 다리 위에서 만났던 튜링이 바로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튜링이 말한 ‘결정을 대신해 주는 기계’는 훗날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 되었고, 이제 인공지능은 인류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그노의 우주선은 이야기의 시작점인 영국 케임브리지의 수학의 다리로 향했다. 약 일주일을 항해한 끝에, 그는 푸른 별 지구에 도착하여 킹스 칼리지 도서관 뒤편에 우주선을 정박시켰다.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자, 그는 곧바로 한 기념비를 발견했다. 기념비에는 “앨런 튜링”이라는 이름과 그의 업적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인간의 결정을 대신할 기계를 만들었다. 

인류는 더 많은 편의를 누리고 기계는 어려운 문제를 대신 풀어줄 것이다. 

번영과 효율의 시대가 온다.'


이그노의 예상대로 튜링이 만든 "결정 기계"는 인류의 결정을 대신해 주는 도구였고, 인공지능의 시초였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지만, 만일 그때 과거에 이그노가 튜링의 결정을 내려줬다면, 그는 기계를 만들지 않았을 거다. 어쨌든 튜링은 결정 기계를 만들었고, 이후로 인류는 기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그노는 발전 흐름을 따라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결정 기계 이후 지식이 탄생한 장소는 너무 많았고 이그노는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실마리를 찾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느끼며, 이그노는 튜링의 기념비를 다시 읽는다. 더 자세히 보니, 그 문구 아래쪽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운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글은 기계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었다. 

 

'모든 기계가... 해결...수 없.. 문제.. 존재...'


일부 단어는 지워져서 보이지 않지만, 문장은 분명 "모든 기계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라고 적혀있다. 튜링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 주는 기계를 만들었다. 기계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줬지만, 기계가 풀 수 없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결정 기계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그리고 튜링은 이 사실을 경고한 것이다. 누군가 기계의 한계가 퍼지는 것을 막고 있다. 인공지능의 한계를 숨기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어쩌면 인공지능을 옹호하는 자들이 기계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 한 걸까? 그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마지막 줄이 적혀 있었다.


'튜링,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으로 떠나다..'


이그노는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기계의 발전을 추적해야 한다. 그는 도서관을 나서며 자신의 우주선으로 돌아와 목적지를 프린스턴 대학교로 설정했다. 비행 중, 이그노는 누가, 그리고 무슨 이유로 기계의 한계를 감추려 하는지 깊이 고민에 잠기며, 미국으로 향한다. (계속)





이 이야기의 역사적 관점

1936년에 앨런 튜링은 논문에서 결정 불가능한 문제의 존재성을 증명했습니다. 힐베르트의 “결정 문제(Entscheidungsproblem)“에 대한 답으로 특정 수학적 문제를 알고리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는 컴퓨터 과학의 기초를 마련한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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