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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지니 Sep 20. 2024

꿈의 기술 - 3. 뇌파

이그노의 뇌파는 등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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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는 지구에서 새롭게 개발된 인공지능 소식을 듣고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지구로 향한다. 우주선 안에서, 그는 한때 위대한 수학자였던 앨런 튜링과의 만남을 회상한다. 튜링은 인공지능의 시초인 결정 기계를 만들었고, 이그노는 그 기계의 발전을 막지 못한 것을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그곳에서 튜링의 기념비 앞에 서던 그는, 누군가 결정 기계의 한계를 은폐하려는 시도를 발견한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그노는 다음 단서를 찾기 위해 프린스턴으로 향한다.



 3장 - 등록되지 않은 뇌파 


이그노는 약간 붉은 기를 가진 단발의 곱슬머리로 외형을 바꿨다. 둥근 안경은 그의 얼굴에 지적인 매력을 더해주며,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 돋보인다. 남색 남방은 어깨에서 흘러내려 편안하고 느긋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낡은 청바지는 그의 활발하고 활동적인 성격을 잘 반영한다. 이그노의 전체적인 외형에서 자유로움과 에너지가 넘친다.


이그노는 프린스턴의 변화에 약간 당황하면서도 흥미롭게 거리를 바라보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변화는 당연했지만 그가 기억하던 아날로그적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번쩍거리는 전자 간판과 움직이는 로봇들, 자율주행 킥보드들이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이그노는 화장품 가게 앞에서 가게를 홍보하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둘은 외형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 쌍둥이가 같이 쇼핑을 나왔다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보니 오른쪽 사람의 팔에 네모난 LED가 있다. 초록빛으로 깜빡이고 있는 건 마치 전자 기기의 배터리 잔량 표시 같았다. 그녀의 팔에 있는 번개 표시는 그녀가 충전이 필요한 상태임을 나타내는 걸까? 이그노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인간일까, 기계일까?’ 


이그노는 예전에 함께 여행했던 관찰자 라모스를 떠올렸다. 이럴 때, 라모스는 언제나 그런 미묘한 차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생명체를 정확히 구분해내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도시에선 그조차도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게 이제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몰라.’ 그는 생각했다. 이그노는 인간이 기계를 닮아가고, 기계가 인간처럼 되어가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그노는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었다. 길을 계속 걸으며 드디어 한적한 골목에서 팬케이크 집을 발견했다. 창문 너머로 따뜻한 노란 불빛이 비치는 그곳은 마치 이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가게는 골목에 있어 조금 작지만 오래된 벽돌로 이루어지고 주변에 있는 나무와 골동품은 상당히 정겨운 느낌이다. 가게는 아주 마음에 든다. 여유롭게 식사를 하기 좋아 보인다. 이그노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잠시나마 기술이 아닌 맛있는 음식이 주는 위안을 기대했다.


"안녕하세요" 


이그노는 점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그녀는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어깨까지 닿는 갈색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발랄한 인상을 주는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식탁 위 접시를 정리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에게는 배터리 표시나 전자 기기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온전히 인간의 감각이 흐르는 공간인 듯했다. 그녀는 접시를 치우던 손을 멈추고, 이그노를 향해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이그노에게 말했다. 접시를 치우던 손길이 멈추더니,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가게에는 세 팀 정도가 팬케익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다. 이그노는 인간적인 모습을 오랜만에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그노는 메뉴를 고르기 위해서 메뉴판을 찾는다. 식탁 위에는 손수건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다른 건 하나도 없다. 어쩌면 종업원에게 메뉴판을 요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그노는 종업원에게 말을 건다.


"혹시, 메뉴를 볼 수 있을까요?"


종업원은 깜짝 놀라며 말한다. 

"아,,, 저희 가게 시스템이 좀 느려서요. 금방 처리되실 거예요." 


이그노는 가게 안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그 누구도 종업원에게 말을 걸지 않고, 가게는 묘하게 조용하다. 메뉴판도, 주문을 받는 카운터도 보이지 않는데, 팬케이크가 자연스럽게 사람들 앞에 놓인다. 이그노가 의아해할 때, 심지어 뒤에 들어온 손님들조차 묵묵히 자리에 앉기만 했는데 팬케이크가 차례로 놓인다. 그는 혼란스럽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폭발한다. 도대체 이 가게는 어떻게 운영되는 걸까? 무언가 알 수 없는 비밀이 숨어 있는 듯하다. 이그노는 속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이건, 예약 시스템이라는 건지 모르겠군. 지구에서는 이제 주문을 말이 아니라 기계로 한다던데,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미리 하는 방법이 있는 건가?'


이그노는 불편함을 느끼며, 점점 현기증이 일어나는 듯한 기분을 경험한다. 아무 설명 없이 모든 게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정수기 근처로 눈을 돌리니, “물은 셀프”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유일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을 마시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그노. 그때, 문소리가 크게 울리며 두 명의 경찰관이 단호한 표정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공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곳에 미 등록 뇌파가 있다는 경보가 떴습니다. 주문을 못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경찰관이 단호하게 소리로 종업원을 향해 말한다.


종업원 제이는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 

"네? 보시다시피 모든 사람들은 음식이 있는걸요. 아마 예측이 잘못된 거 아닐까요? "


"그럴 리가요. 인공지능 모델은 틀리지 않아요. 분명 이곳에는 등록되지 않은 자가 있습니다."


경찰관은 마치 인공지능은 신봉자 같았다. 그는 모델이 틀릴 수 있다는 가정을 하지 않았고, 흡사 알고리즘에 의존하듯 행동했다. 범인을 찾으려는 듯 가게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본 후, 경찰관의 시선이 정수기 근처에 있는 한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이그노는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그노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손끝은 차가워졌다. 경찰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수록, 그의 목덜미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경찰관은 이그노 쪽을 향해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쪽 발이 땅을 떠나기 직전,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제이가 다급하게 경찰관을 향해 말했다.


"아! 어쩌면 테이블에 올라갔던 고양이 때문일까요? 방금 전에 고양이가 빈 테이블에 올라가서 몸을 뒤척거렸거든요. 저기 5번 테이블이에요." 


경찰관은 이그노를 향한 몸을 제이 쪽으로 돌린다.


"고양이라고요..? 음.. 그런 경우는 본 적 없지만, 고양이도 뇌파 신호는 있을 테니..."


그는 이 말을 하며 한쪽 눈썹을 살짝 추켜올렸다. 고양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뇌파를 상상이라도 하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호기심과 의심이 섞인 표정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럴지 모르겠군요,” 마치 가능성에 대해 고민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 경찰관은 별 일 아니었다는 듯, 긴장을 풀면서 다른 동료를 향해 가자는 제스처를 취한다. 문을 나서기 전 경찰관은 한 마디 덧붙인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추적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위험합니다.” 


그의 목소리엔 약간의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감시 체계가 촘촘히 깔린 사회, 뇌파 신호 하나하나가 안전망을 구성하는 세상이었다. 그는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신중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경고하듯 덧붙였다. 


뇌파가 등록되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면, 바로 신고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마치고 경찰관은 문을 나섰다. 경찰관이 문을 나서자, 공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제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제이가 이그노를 향해 다가갔다. 제이가 이그노에게 응시하며 말한다.


"당신, 정체가 뭐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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