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일.
난 인턴으로 첫 출근을 했다. 어젯밤에 처음 꺼내본 새 의사 가운도 어색했고. 새로 받은 pager도 어색했다. 가운 주머니에는 언제 필요할지 모를 각종 포켓용 참고 자료들. 그리고 그 안엔 타이와 셔츠까지 갖춰 입었다. 아무리 의대를 어엿히 졸업한 의사라 할지라도, 난 너무 떨렸다. 내가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느낌이었다. 사실 의대생 때 다 실습을 돌아봐서, 대충의 플로우를 알고 있었음에도, 갑자기 무슨 바보가 된 것처럼, 백지상태의 느낌이었다. 그저 겉모습과 내가 달고 있던 병원 아이디만이 내가 이제 닥터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뿐. 인턴의 첫 출근은 그렇게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는 조금 다르게, 인턴제도와 레지던시 제도가 따로 있지 않다. 의대 졸업 후에는 대부분 자신이 정한 과의 레지던트가 되는데, 그 수련기간 첫 해를 인턴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PGY-1 (post-graduate year 1), 즉 의대 졸업 후 1년 차 수련의들은 인턴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고, PGY-2부터는 레지던트라고 주로 칭한다. 그리고 수련기간도 전공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인턴으로 출근 한 오전. 난 내과 병동 한가운데 있는 컴퓨터에서 환자 차트를 검토하고 있었다. 읽어도 읽어도 머리에 입력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끼려는 찰나, 어떤 간호사 한분이 나에게 오신다.
"Doctor, can you please prescribe something for Mr.P's pain?"
난감하다. 이건 내 의사로서의 첫 처방오더인데, 벌써부터 나한테 어려운 질문이다. 왜 아픈지 물어봐야 되나? 얼마나 아팠는지 물어봐야 되나? 아님 내가 가서 환자를 봐야 되나? 근데 무슨 진통제를 쓰라는 거지? 타이레놀로 안되나? 환자 차트를 보니까 이미 마약류 진통제를 쓰고 있다. 그럼 저 진통제가 듣지 않는다면 더 강한 것을 쓰라는 말인가? 그럼 더 강한 진통제 종류는 뭐가 있지? 온가지 생각과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그 어떠한 질문에도 스스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나 어떡하지?"
의대 다니는 내내, 그렇게 밤을 새 가면서 사람의 몸과 병에 대해서 공부하고 시험치루고 이젠 졸업까지 어엿하게 했지만. 그 단순한 증상 - 통증 - 에 대해서 나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진통제를 써야 하고, 그 진통제를 어떻게 환자들에게 처방해야 하고, 환자들과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아무런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실 요즘에야 미국 사회 내의 마약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뉴스를 통해서도 그 사실이 너무나 피부에 와닿는데, 거의 10년 전, 저 당시엔 적어도 내 삶 안에선 사회의 마약 문제는 큰 이슈가 아니었다. 특히 마약성 진통제 같은 경우는 가끔 마취과나 아님 완화치료 (palliative care) 로테이션 돌 때 접한 것 빼고는 그렇게 익숙지 않았는데. 이게 웬 걸. 내 레지던트 생활 내내 진통제 문제는 계속 나를 괴롭혔다. 외래로 오는 환자들부터 입원한 병동 환자들 까지, 항상 그놈의 진통제가 문제였다. 얼마나 센 것을, 얼마나 자주 처방하느냐, 과연 누가 그 처방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지도. 진통제를 처방받는 환자들 그 안에는 걱정한 대로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된 사람도 있었지만, 또 반대로 어떤 사람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진통제를 적절하게 처방받아야 했지만, 옳지 않은 의심의 눈초리로 오해를 받아 제대로 진통제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경우도 있었을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통제 처방하는 문제는 레지던시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결국 그렇게 의대 다니는 동안 책으로만 공부하고 시험 치르면서 습득한 각종 서적지식들은,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통해서 내 몸에 습득되는 과정을 다시 새로 겪어야 했다. 더 이상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은 시점이 왔던 것이다. 직접 처방하고 사용해 본 경험, 즉 실제 환자들 케이스로부터 얻은 현장의 배움과 트레이닝이 필요했다고 느꼈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의사에 불과했다.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고, 갈 길은 멀어 보였고, 앞으로 어떤 의사가 어떻게 되고 싶은지 생각이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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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첫째 주.
난 심장내과 병동에서 어텐딩으로, 그리고 우리 팀엔 눈빛이 파릇파릇한 인턴 두 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눈빛이었고, 내가 뭘 하나 가르쳐 주면 그다음 것들도 척척 해나아 갔다. 첫날은 그렇게 어벙벙해 보이던 그들도,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쭉쭉 성장해 나아갔고,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서 내 9년 전 모습이 투영되기도 했다 (사실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턴들이었다).
그렇게 아는 것은 별로 없고, 배울 것만 많아 보이던 그 시절, 몸은 힘들고, 그 와중에 행복했었다고 느끼진 못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저렇게 빛나는 눈으로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인턴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열정이 꽤 멋지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러게 말이다.
별 것 아닌데.
그렇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환자를 대하고, 그 안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이면 되는 것인데.
항상 욕심이 많아서, 고민이 고민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