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그리고 레지던트로서의 생활은 정말 정신없고 바빴다. 매일매일 새로운 환자들을 보고 진료하고 처방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바쁜 하루하루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그 안에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의사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의사들 사이에선, 이 레지던트라는 존재가 아직은 한없이 배울 것이 많은 젊은 의사에 불과했기에, 난 항상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항상 내 위에 있는 펠로우나 어텐딩들의 허락하에 모든 의학적 진단과 결정이 이루어져 나가는 꽤 수동적인 "일꾼"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주위를 둘러보면, 나도 이제 어느덧 나이도 30대에 접어들었고, 첫 아이도 태어나고, 마치 사회적으로는 어른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병원 안에만 들어서면, 나는 아직도 뭘 모르는 풋내기 어린 의사에 불과했고, 그래서 계속 스스로 되뇌었다.
"그러니까, 난 정말 의사를 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할 것인가?"
그렇게 해왔던 이러한 근본적인 고민들은 "변함없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단지 이젠 의사가운을 입고 하는 실질적인 고민이어서, 학부생 때 했던 것보단 조금 덜 터무니없었던 것일까? 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았고, 그저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오히려 더 작아지는 듯만 했다.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 내에서 내과 레지던시 수련과정은 인턴을 포함하여 총 3년에 불과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러한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과 플랜은 꽤 짧은 시간 안에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해가면서 준비해야 했고, 사실 정신적으로 그 압박갑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의대 졸업할 당시만 해도, 일반내과 레지던시를 마친 뒤 어느 한 세부분과 전공으로 펠로쉽을 지원하여 무언가 조금 더 깊이 있는 전문분야를 가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세부분과를 무엇으로 할지에 대해선, 약간의 물음표가 있었다. 그 후보 중에선 심장내과나 소화기내과처럼 조금 더 acuity가 높은 환자들, 그리고 시술의 기회도 있는 그러한 전공을 하면 좋겠다 생각해 보긴 했지만, 그 결정 또한 짧은 시간 안에 내리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난 여전히 완연한 한국국적자로서 고용 비자를 통해 레지던트로 수련을 받고 있었는데, 이러한 나의 비자 신분의 상태가 펠로우쉽 지원할 때 여러모로 불이익으로 작용했다. 외국인을 차별한다기 보단, 고용비자로 펠로우를 수련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행정절차와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보니, 모든 프로그램에서 그러한 비자 스폰서를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일이 비자를 스폰서해주는 펠로쉽 프로그램들만을 찾아서 확인하고 지원해야 했고, 그렇다 보니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펠로쉽 프로그램의 폭은 미국동료들보단 조금 제한적인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신분문제를 가지고 내 신세를 한탄하고 푸념하기엔 이젠 이러한 내 상황의 특이성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던 것 같다. 대학교 때부터 진로 다음 단계로 지원할 순간순간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신분의 문제는 항상 내 앞에 놓인 진로 문제를 좀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 왔기에, 펠로쉽 지원 역시 내가 써왔던 애플리케이션들 중 하나에 불과했고, 나는 또 변함없이 한국인 시민권자인 내 정체성을 완연히 인지하면서 진행해 나아가야 했던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돌이켜보면, 학부생 그리고 의대생 때 하던 진로고민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여러 갈래의 고민들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것 같다. 어떤 세부분과를 전공해야 할지. 펠로쉽 지원에 있어서 외국인의 신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가 되고자 하는 의사의 길은 무엇인지. 그 안에서 내 가족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그 고민의 갈래와 깊이는 꽤 다채로웠고, 그 다양한 고민의 무게가 예전의 그것들보단 조금 더 크게 다가왔었 던 기억이 있다.
어느덧 시간의 흐름에 이끌려 레지던트 3년 차가 되었고. 그 사이에 나는 나름대로의 논리적인 정리와 스스로에 대한 설득을 통해 심장내과 펠로쉽에 지원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나는 내가 레지던시를 마치고 있던 대학병원 소속 심장내과에 합격하게 되었고, 비자문제도 잘 풀렸고, 그리하여 애틀랜타에서 수련의로서의 생활은 조금 더 연장되게 되었다.
그럼에도 왜일까, 그 당시 내 마음은 조금 답답했다. 의사로서 한 단계 성장해 가는 과정, 그로 인한 성취감도 분명 있었겠지만, 미래 진로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의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던 것 아닐까.
"나는 어떤 의사의 모습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미국에서 어떤 의사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왜 미국이어야 하는가?"를 다시 되묻기엔, 난 이미 너무 많이 와버린 듯했다. 그래서 아마 조금 외로운 것은 아니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정체성을 고민하던 유학생인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난 이제 미국에서 의사로서의 진로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나 그리고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고 고민해보아야 하는 한국계 이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되뇌던,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는 좀 거리가 먼 이야기 같이 느껴졌고, 그렇게 나는 유학생이 아닌 이민자의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과도기 속 기로에 선 내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