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 그 사이
미국 사람들은 항상 묻는다.
"Where are you from?"
"Where is your home?"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이를 묻는 것처럼, 미국사람들은 계속 묻는다. 집이 어디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미국이란 나라가 정말 큰 나라이고 그 안 지역마다의 특색과 환경이 굉장히 다르며, 각종 인종과 외국 출신의 사람들도 모여사는 까닭에,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나에게 집은 어디이고 고향은 어디일까?"
난 스스로 당연히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민을 왔다기 보단, 어린 나이에 유학을 왔었고, 결혼하기 전까지 나의 가족, 특히 부모님은 계속 한국에 계셨기에 나에게 있어서 정서적으로 집과 고향은 의문의 여지없이 한국이었다. 또, 한국을 떠나서 미국에 살기 시작한 시기도 10대였기에, 나만의 온전한 결정으로 미국을 오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한국을 떠난 경우도 아니었다. 비록 결국에 내 결정이긴 했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였기에, 현실적으로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정서적 그리고 경제적인 서포트를 받으면서 유학생활을 해왔었다. 그렇다 보니, 나의 정신적 고향 그리고 그 시작점은 언제나 한국일 수밖에 없었던 듯싶다.
그에 반해, 오히려 조금 더 늦은 나이에 한국을 떠나서 미국으로 온 유학생이나 이민온 주변인들을 보면, 그들의 유학 또는 이민 결단과 그들의 정체성은 좀 더 명확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말이다). 학위와 공부, 또은 연구를 열심히 하여 궁극적으로 한국으로 돌아가 미국에서 얻은 경험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겠다는 부류. 한국은 이미 떠나서 미국에 공부나 새로운 직장생활로 새로운 생활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부류.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난 이러한 부류들 중 그 어디에도 명확하게 속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였다.
또 미국의사들 중에선, 외국 출신 의사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그들의 절대다수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모국이나 다른 나라들의 의대를 졸업한 뒤 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미국에서 수련을 받거나 일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들어온 경우였고, 그들의 목적의식은 굉장히 명확했다. 미국에서 성공적인 의사생활을 하는 것. 그에 반해, 난 그들과 비교해 여전히 무언가 다른 결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했다. 나에게 주어진 길, 기회들은 너무나도 감사했지만, 20년 전 미국의대를 준비할 당시에, 난 미국에서 수련하면서 레지던트 그리고 펠로우로 살아갈 나의 모습, 궁극적으론 미국에서 의사로서 정착할 살아갈 한국계 이민자 의사로서의 모습은 그려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미국에 있는 이유는 남들과 조금 달라." 이러한 생각, 결국엔 어쩌면 변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미국 의대 입학 실패를 준비하던 나의 백업플랜 같은 것일까. 사실 20여 년 전 한국을 떠날 때 내 계획 속에 미국에서 정착하여 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결국엔 한국에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은 더 컸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 그리고 이제는 펠로우의 생활도 들어서다 보니, 결국엔 미국에서 삶의 터전을 정착해 나가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했다. 그래서 혹시나 미국에서 정착하는 생활이 힘들고 어려우면, 스스로 설치해 놓은 defense mechanism처럼, "그래, 난 원래 미국에서 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니까" 라면서 심리적인 보호장치를 쳐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2018년 즈음.
난 심장내과 펠로우로서 리서치 펠로우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4년의 펠로우쉽 기간 중 2년 즈음을 연구활동에 정진하는 기간이었는데, 그 당시 나를 지도해 주시던 지도교수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었다. 인도계 영국 출신의 의사 분이셨는데, 마지막 수련을 미국에서 받으시면서, 성공적으로 심장내과 교수로서 자리를 잡으신 내가 정말 존경하는 교수님이셨고, 그래서 내가 정신적, 그리고 학문적으로도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그분은 내 전담 지도교수님이었기에 항상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어느 한날 우연히, 내 입 밖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이 그분 앞에서 나왔다. 난 내가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미국에서 의사로서의 길을 가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그래서 항상 한국의 삶은 어땠을까 동경해보기도 하는 것 같다고.
그때 그분이 말씀해 주셨다.
"내 아버지가 너와 같은 경우였다. 내 아버지는 어렸을 때 인도에서 자랐지만, 결국 영국으로 유학을 왔고, 영국에서 의대교육을 받고 평생 영국에서 의사생활을 하셨어. 근데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인도를 그리워하셨어. 그럼에도 결국에 아버지는 인도가 아닌 영국에서 돌아가셨단다. 내가 볼 땐 말이지, 집과 고향이란 건, 결국엔 우리가 지금 생활하고 있는 곳, 여기 미국이, 너의 진짜 집이고 고향이야. 또 그렇게 사는 게 맞은 것 같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그 대화가 생생하다. 그분 특유의 영국영어로 무심하게 건네신 저 말에 나는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결국엔, 내가 아무리 한국을 그리워한다 한들, 결국 난 미국에서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인데, 결국 내가 있는 이 땅을 생활의 터전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한국의 집과 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일까. 나도 그 교수님 아버지처럼, 모국인 한국만 그리워하다가 결국 미국에서의 내 삶에 만족 못하고 후회만 하진 않을까? 내가 미국에서 삶의 터전을 펼쳐 나간다 해도, 근본적인 내 기본이 한국인임이 바뀌지만 않으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날 이후. 내 정체성은 조금 더 명확해질 수 있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 앞에 놓인 나의 길을. 미국에서 의사로서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할 길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던 것 같다. 마치 풀리지 않던 매듭이 풀린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고, 홀가분해진 느낌도 들었다. 더 이상 한국에 대한 향수와 동경은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이때 즈음,
나에게는 둘째 아이가 태어났고. 그리고 한국에선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 냉정하리란 만큼 이 모든 절묘한 타이밍 속에서,
이제 난 정말,
정체성 고민으로 투정 부리던 유학생이 아닌, 이제는 어른으로서 이 미국 땅에서의 내 길을 담담히 걸어가야 할 때가 왔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03년, 대학교 1학년 신입생 때,
난 친구들과 아시아계 학생들 신입생 환영회에 갔었다. 미국 대학 여느 파티와 다르지 않게, 곳곳에서 우리 신입생들에게 물어왔다.
"Where are you from?"
"Where is your home?"
근데 그때 내 옆에 한국계 교포 선배 한 명이 맥주를 마시면서, 사람들에게 반문했다.
"What is home, anyway?"
그 선배는 영문학을 전공하던 선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난 그때 저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던 그 모습이 꽤 멋져 보였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돌이켜 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에게 집과 고향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