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초 난 이제 펠로우 마지막 연차였고, 수련의가 아닌 정식의사 (attending이라고 불리는)로서 일할 첫 직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구직활동이었기에 사실 좀 어렵기도 했고 불안함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운이 잘 따라줬고, 좋은 기회의 문이 열려서, 결국 마지막으로 수련생활을 했던 보스턴에 남아서 정식 미국 의사로서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유학생으로 처음 미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은 2000년 7월.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의대의 꿈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3년 가을이었다.
그리고 그 후, 학부졸업과 군대, 그리고 의대 졸업, 그리고 그 뒤를 따른 레지던시와 2개의 펠로쉽까지. 다 합쳐서 거의 20년이란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결국 나는 내 꿈이었던 미국의사가 되었다.
거의 20년이란 기간 동안, 미국에서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위해 달려오면서, 최선을 다하기도 했지만, 항상 고민과 방황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나랑 같은 상황에 있는 동료나 선배가 별로 없었다는 것 아닐까. 내가 어떤 고민을 마주했을 때, 어딘가에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조언이나 고민을 같이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별로 없었고, 그래서인지 혼자 부딪히면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지?" 이렇게 습관적으로 되뇌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나는 내가 정말 왜 꼭 미국에서 의사가 되고 싶었는지 잘 설명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학부생 시절엔 어떠한 명확한 소명이 있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꿈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그렇게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긴 과정 속에서 성장하며 겪어온 노력과 고민의 시간들이야 말로 나에겐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 되었다
금요일밤 유기화학 공부한다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들어서던 대학교 도서관.
밤늦게 생화학 실험실에서 실험을 마치고 돌아오던 캠퍼스 위의 수많은 반딧불들과 그 밤공기.
8시간이나 되는 의대입학시험 (MCAT), 그리고 잠깐의 쉬는 시간에 느껴본 점심 햇살.
정장을 입고 향하던 첫 의대 인터뷰 날 아침의 설렘과 긴장감.
난생처음으로 의사가운을 입어보던 White Coat Ceremony.
처음으로 내린 환자 사망 선고.
당직 날에만 볼 수 있었던 병원에서 보는 새벽노을.
학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구결과 발표하던 날의 떨림.
어텐딩으로 출근하던 그 첫날의 긴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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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나는 인생의 벽돌을 위로만 쌓을 것이 아니라, 옆으로도 쌓아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아마 그 당시에는 혹시나 내가 설정한 목표를 이루지 못할까 싶어, 방어기제처럼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했던 말이었겠지 싶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난 이 말을 다시금 스스로 되뇌인다. 원하는 꿈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과정 또한 내 인생의 여정이고 그 또한 내 삶이 일부분임을 받아들이기로 말이다. 어찌 보면 이 미국땅에서 꿈을 찾아 좇으며 보낸 지난 20여 년의 시간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