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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rkim Aug 13. 2023

미국 레지던시 매칭이야기

어긋난 사랑의 짝대기

의대 4학년은 많은 시간을 레지던시 프로그램 인터뷰 다니는 데 할애했다. 마치 대학교 4학년 때 의과 대학 인터뷰를 다니곤 했던 것처럼, 전국에 있는 대학병원 내과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에 인터뷰하러 가는 것이었다. 의대 인터뷰 때 가보았던 학교와 병원을 다시 방문한 경우도 있었고, 새롭게 방문해 본 대학병원들도 있었다. 돈과 시간이 꽤 드는 여정들이긴 했으나, 모교가 아닌 다른 의대와 대학병원들을 방문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전에 의대 입학 인터뷰를 해봐서인지, 레지던시 인터뷰들도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나에게 묻는 질문은 대부분 비슷했고, 인터뷰 날의 일정들도 어쩌면 비슷비슷한 포맷들로 생각보다 수월하게 쭉쭉 진행이 되었다.


단지, 이번 단계에서도 내가 미국시민이 아니라는 점이 특이점으로 작용하긴 했다. 물론 의대 입학할 때만큼은 아니었다. 인턴과 레지던트는 의대생처럼 학비를 내는 포지션이 아닌, 봉급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수련을 받는 포지션이었던 만큼 외국인의로서의 합법적인 고용이 성립되어야 했고, 그에 따른 고용 비자를 스폰서 해줄 수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어쩌면 다행인 것은, 미국 내 내과 의사들 중에는 외국시민권자가 외국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은 의과대학보다는 외국시민권자들을 수련의로 받는 것에 꽤 익숙해 보였고, 그래서 이러한 비자에 관한 질문과 대화들을 나눌 때에 꽤 구체적이었고, 그래서인지 그렇게 막연한 두려움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보통 레지던시 인터뷰는 4학년 가을 11월 즈음 시작하여서 다음 해 2월 즈음까지 진행되는데, 그리고 나선 최종적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결정되는 시스템이 조금 특이하다. 모든 인터뷰가 끝나면, 학생 지원자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을 선호도대로 랭킹을 매기고, 마찬가지로 각각의 레지던시 프로그램들도 그들이 인터뷰한 지원자들을 랭킹을 매겨서, 레지던시 매칭 시스템 (NRMP- National Resident Matching Program)이란 곳에 제출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NRMP라는 기관에서 그 개별 지원자와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의 랭킹을 기반하여, 알고리즘을 통해 1:1로 지원자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매치해 주는 특이한 시스템이었다. 컴퓨터가 사랑의 짝대기를 연결해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 결과는 매년 3월 어느 한 날, 이른바 매치 데이 (Match Day)라고 하여 빅 이벤트로 전국 각지 의대에서 동시에 진행이 되곤 한다.


그리고 이 매치데이라는 것은 각 학교마다 진행되는 방식이 다 다르기 마련인데. 우리 학교는 대학병원 내 큰 강의실에 모여서 모두 서로 축하하는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의대 학장이 앞에 나와서, 각자의 매치 결과가 담긴 봉투를 개별적으로 나누어주고, 마지막엔 다 같이 각자 열어보는 식으로 진행했다. 누구에게는 바라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매칭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누구에게는 조금은 아쉬운 결과를 줄 수도 있는 그런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위기는 우리 모두 졸업 후에 수련할 프로그램이 정해졌다는 것에 축하를 해주는 그런 축제의 분위기였다.


의대 4학년 매치데이 사진. 저렇게 큰 강의실에 교수들, 학생들,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서 축하하는 분위기로 진행되었지만, 그 안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도 있었다.


그리고 그 매치데이날, 난 내가 인터뷰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들 중 꽤 상위에 랭크했던 대학병원에 매치되었다. 남부에서 큰 명문 의과대학 병원이었고, 내과 수련도 좋기로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 의대 4학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결심하고 준비한 내과 전공이었기에, 꽤 좋은 결실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주위엔 자기가 No.1으로 랭크한 프로그램에 되었다는 동기들의 환호성이 가득했고, 난 내 No.1에 매치되지 못했다는 그런 실망감이 점점 커졌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나는 우리 모교 대학에 남고 싶었다. 그런데 모교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나를 높게 랭크하지 않았고, 결국 알고리즘의 매칭에서 다른 지원자들에게 밀려났던 것이다.  


난 무엇이 다른 지원자들보다 부족했을까? 의대 성적? 시험 점수? 아님 추천서가 조금 약했을까? 정말 객관적으로는 너무나 성공적인 매칭 결과이었음에도, 나는 내 결과에 대한 실망감이 점점 커졌고, 더 나아가 내 의과대학생활에 대한 일종의 패배감도 들었던 것 아닐까 싶다.  


*********


사실 지금도,

내가 그때의 실망감을 다 회복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다 극복했다기보다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무뎌진 것은 아닐까.


시카고에서 그 해 그렇게 의대를 졸업한 후, 나는 애틀란타라는 도시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정말 너무나도 훌륭한 교수님들을 많이 만나서 생각지도 못했던 훌륭한 수련의 기회를 누렸다. 아마 어쩌면 모교에 남는 것보다 더 많은 성장과 수련의 기회가 주어졌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시카고가 아닌 미국의 다른 지역의 대도시에서 생활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대해서도 조금 더 시야를 넓히고 성장할 수도 있는 시간들도 주어졌었다. 그럼에도 무언지 모를 그 아쉬움은 꽤 지속되었다. 


과연 정말 난 그때 내가 픽한 No.1 프로그램에 매치가 되지 않은 것에 실망했던 것일까.

막상 돌이켜 보면 별 것 아닌데 말이다..


아님 어쩌면 그렇게 수많은 고민과 심리적 방황 속에 끝마친 그 의대생활,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나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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