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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앤트 Jun 13. 2024

그림 그릴 때 운 사람

아무리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멘탈을 유지할 때 가장 간단하면서도 적용하기 어려운 한 가지 방법을 다뤄본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멘탈이 강하게 흔들릴 때가 있다. 될 것 같으면서 안 되고, 알 것 같으면서 모르겠고, 알았다 싶었는데 다음 날 되면 착각인 경우가 많다. 잘 그리는 사람이나 그림을 보면 나와는 다른 세계 같아서 좌절하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극복을 하게 되었다고 느끼기도 전에 1 턴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2,3,4,5 턴 끝없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멘탈이 온전하게 유지될 리가 없다.

 

그림이 더 답답한 이유는 안 풀리는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쌓이면 대략적인 추측이 가능하여 여러 가지 후보군이 생긴다. 그러나 정확히 문제를 타깃 하여 해결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개선해서 나아지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런 고민들은 누군가 에게 털어놓기도 애매한 언어 구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검색하기도 어렵다. 명쾌한 답을 얻는 과정이 사막에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힘들다. 

필자는 같은 구간을 수도 없이 맴돌며 안 읽어본 그림 관련 서적이 없을 정도로 정보를 찾아 헤맸다. 잘 그리는 사람도 찾아다니며 만났다. 막상 책을 읽어보거나 대화를 해 봤을 때 실망했던 기억이 종종 있다. 

생각보다 체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이나 얘기해주는 부분이 단편적이거나 근거가 불확실하게 느껴졌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느낌의 내용은 실전에 적용하기에 크게 부족했다.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생각을 정리해 놓는 경우는 드물다.


김앤트, 시범 프로세스, 37.2x27.2cm, 도화지에 연필, 2019

 

외부적인 정보를 더 얻기보다 그동안 모아놓은 내부의 정보를 다져나갔다.  

막히는 구간들은 가설 세우기와 평면 실험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헤쳐나가는 방법을 사용했다. 시간이 비효율적으로 오래 걸리며 시행착오를 반복해 성장이 뎌뎠다.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개똥도 쓸데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원리에서 벗어난 방향을 다양하게 경험해 본 과정 덕분에, 수업을 진행할 때 여러 변수에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업을 진행할 때 그림이 잘 풀리지 않는 학생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거나, 분위기가 축 가라앉고 말수가 현저히 적어질 때가 있다.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 어디서 어떻게 막혔는지, 그로 인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필자가 경험한 부분과 대부분 일치하므로 개선점을 찾아 이야기해 주기 수월하다. 


결과를 바로 얻지 못하면 조급해지고 보통 한 두 번의 실패만으로 그만두고 싶어 진다. 적은 도전 횟수와 상관없이 그 기간 동안 받는 스트레스가 꽤 크기 때문이다. 끝없이 반복되면 성공의 기대치가 낮아지기 시작하고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패배 의식이 자리 잡으며 다크 해지는 경우도 많다. 포기하고 싶어도 이미 투자를 많이 하여 포기하기 어려운 성장통 구간이라 볼 수 있다. 

필자는 그림을 그리다가 혼자 많이 울었다. 내면의 울분은 계속 쌓이는데 해결은 안 되고, 잘하고 싶은 마음과 현재 실력의 갭 차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복합적인 감정의 눈물이었다.



실패라는 단어를 없애기로 했다. 


완성의 개념도 동시에 없애기로 했다. 실패와 완성을 없애면 과정만 남는다. 무엇을 해도 과정을 맴돌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얼마큼 실용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방법이 맞지 않아도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도록 강제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계속 그리다 보니 그 서울로 가는 최단 거리가 존재했다. 그것이 바로 실용적인 과정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이 개념은 적용되지 않는다. 실패를 겪었을 때 충격이 크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을 관찰하기 바쁘다. 자신이 겪고 있을 미래를 떠올리며 장기적인 목표가 생길 때쯤 현재는 꼭 필요했던 과정으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멘탈을 잡지 않으면 사실 버티기 힘들다. 

어차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도움 될만한 방향으로 노선을 틀어 놓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다. 


과정안에서 20년이 다돼 가다 보니 특별하게 멘탈이 흔들릴 일이 없다. 잘 안되더라도 늘 해오던 대로 파악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해서 보완하면 된다. 완성작이 나와도 완성의 과정 단계에 있는 것이며 마무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2,3차 등의 순환 단계를 만들어 원하는 완성도 기준을 정해 놓고 진행하는 편이다.

성장기에서 멘탈이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을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은 어떤 마음가짐보다도 유용하다. 안 힘들 수는 없다. 힘들어야 정상이고 늘어 가는 과정에서 바람직한 감정이다. 오히려 힘들지 않다면 정체기다. 

그림의 장기 플랜을 세워놓고 좋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보자.


힘듦에 면역은 생기지 않는다. 단지 무게를 들어낼 수 있는 힘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김앤트, 시범 프로세스, 27.2x37.2cm, 도화지에 연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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