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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회승 May 30. 2023

1화. 엄마에서 다시 선생님이 되다

7년 만에 다시 당당한 워킹맘으로... 워킹맘 출근기

우리 딸아이는 네 번의 시험관과 두 번의 인공수정으로 태어났다. 내 배에 스스로 셀 수 없는 배란 주사를 놓고 거의 3개월에 한 번씩 여섯 번이나 수술대에 누웠으며, 2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내 우주와도 같은 지금의 내 딸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내 딸을 내 품에 꼭 안고 밤에 젖을 물리며 재울 때는 마치 온 우주를 품에 안은 듯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가슴 벅찬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아이를 평생 내 생이 다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겠노라고, 내 엄마처럼 너무 일찍 떠나지도, 일한다고 내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지도, 홀로 두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결혼 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로 정신없이 바삐 지냈다. 결혼 후, 임신과 출산 7년간의 육아로 나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일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이는 아직 어리고 어린아이를 돌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린 딸아이를 생전 모르는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학원을 재취업할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학원 수업이 오후에 시작해 늦게까지 수업을 해야 하니, 어린 딸아이를 두고 다닐 수는 없었다.      


내게 육아 경력 7년이라는 시간은 과거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쌓아온 나의 경력을 마치 쓸모없는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 같아 상실감이 무척이나 컸다.       

    

내가 과연 결혼 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      




딸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남편 직장과도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아파트 단지 안에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있어 입지조건도 좋은 곳이다. 아파트 근처에 큰 상가도 있어 유치원이 끝나면 아이를 픽업해 학원 보내기도 괜찮았다. 그날도 아이를 픽업해 상가에 있는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에 데려다주었다. 그러다가 그 건물에 있는 유명 학습지 센터에 아이 학습 상담을 하러 갔다. 상담하면서 자연스레 나의 학원경력 얘기를 하게 됐고, 마침 아르바이트 시간제 교사를 구하고 있어 일을 찾고 있던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아직도 한참 손이 많이 가는 일곱 살 유치원생이다. 유치원이 끝나면 아이를 픽업해 내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상가에 태권도학원, 피아노학원 미술학원을 차례로 등록해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학원으로 돌리기로 했다. 여느 워킹맘처럼 말이다.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가 학원에 있으니 조금이나마 안심하며 일을 할 수 있었다. 비록 봉급은 작았지만,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해 일을 하기로 했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2층 태권도학원을 간 후, 4층 피아노학원을 가고, 5층 미술학원을 마치면 내가 일하는 3층 학습지 센터로 내려와 1시간을 더 공부하고 난 후에야 나와 함께 퇴근을 한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아이는 내가 일하는 그 시간 동안 온갖 학원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었다. 엄마 일 끝날 때까지 말이다. 일을 시작하니 챙겨야 할 것들은 더 많아졌다. 아르바이트이기는 하나,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아이도 챙겨야 하며 집안일도 해야 한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아이와 함께 매일 마라톤 풀코스를 뛰듯 뛰고 있었다. 마치 제2의 육아 전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 준비를 해 내가 일하는 교실에서 나와, 딸아이가 공부하는 교실로 향했다. 딸아이가 교실에서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조심히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봤다. 좁은 교실에 독서실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칸막이가 있는 큰 책상에 7살짜리의 작은 체구의 아이가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쭈그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책을 펼쳐놓고 공부는 하고 있었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모습을 본 순간, 그동안 꾹 눌러 참았던 감정이 왈칵 눈물로 쏟아지는 걸, 누가 볼까 애써 다시 꾹 눌러 담았다. 칸막이에 가려 딸아이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축 늘어진 굽은 등만 보아도 지금 아이가 얼마나 힘든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딸아이의 손을 끌다시피 데리고 나와,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습지 센터 팀장님께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나 유명학습지들의 횡포인 듯 당월 휴회 규정 날짜가 지나 다음 달까지 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한 달을 더 풀코스로 다니고서야 그곳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직접 공부방을 운영해야겠다고 말이다.     


아르바이트로 경험한 학습지 외에 우리나라의 굵직한 몇 개의 학습지를 더 알아보고 난 후, 딸아이의 방문학습지로 1년간 경험을 해 본 유명학습지 브랜드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사한 지역은 내게는 초입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한 곳이었다. 인맥도 없는 이곳에서 공부방을 하려니, 사실 걱정부터 앞섰다. 그러나 다시 어린 딸아이를 매일 마라톤 풀코스를 뛰듯이 학원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7년여 만에 경력단절여성에서 워킹맘으로, 나는 엄마에서 다시 선생님이 되었다.      


이제 워킹맘으로 첫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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