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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회승 May 19. 2023

4화. 선물

7년 만에 다시 당당한 워킹맘으로.. 워킹맘 출근기

내 나이 스무 살이 됐을 때, 엄마는 내게 처음 선물이란 것을 해주었다. 당시 유행했던 금색의 폭이 좁고 손목에 마치 팔찌처럼 찰 수 있도록 나온 여성스러운 손목시계였다. 클립 부분에 포인트로 동일한 금색줄이 매달려있어 꽤 멋스럽고 고급스럽기까지 했다.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기쁘면서도 그간 내게 전혀 관심도 없던 엄마의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라 어리둥절했었다.    

 

20대를 지나면서 시계 디자인의 유행도 변해 그 시계는 낡은 유물처럼 되어 내 서재 책상 옆 서랍에 비닐로 꼼꼼히 싸서 보관되어 왔다. 그때 엄마처럼 말이다. 꽁꽁 싸매두었던 그 시계를 오랜만에 열어보았다. 시계는 차지 않은 긴 시간만큼 배터리도 오래전 방전되어 그때 그 시간에 멈춰서 있었다. 내 스무 살 엄마랑 같던 기억 속 그 시계방 그때 그 자리에 멈춰 선 것처럼 말이다.    

 



어릴 적부터 어려운 가정 형편에 엄마는 집에서 미싱 하나, 둘 놓고 옷 만드는 일을 하며 늘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지금도 각인되어 남아있는 내 기억 속에 엄마는 미싱일하다 저녁이 되면 늘 지쳐 잠들기 바빴고, 잠들기 전까지 엄마의 저녁시간은 TV 보기가 전부였다, TV시청 시간은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 애국가가 나오고 TV화면조정시간으로 넘어갈 때까지이다. 피곤해 곯아떨어진 엄마는 TV 끄는 것도 잊은 채, 늘 TV 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잠들었고, 그것이 엄마의 유일한 낙인 듯 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늘 생각했다. “왜! 저러고 사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일 바삐 일을 하니 집안일은 할머니에게 넘겨주고 나 몰라라 하는 것처럼 보였고, 모범생이며 엄마 말 잘 듣는 오빠 외에 늘 반항심에 툴툴거리는 내게는 관심도 두지 않아 난 엄마가 혹시 계모가 아닐까 생각했다. 늘 땀내 나는 냄새, 자신의 속옷조차도 빠는 시간도 모자라 구석에 모아놓다가 빨았으며 화장대에 수북이 쌓인 먼지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 듯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엄마.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날이 엄마에 대한 원망만 쌓여갔다. 여느 딸과 엄마처럼 살갑게 대하지도 다정한 말 한마디 챙겨주는 것도 없었던 터라, 내가 스무 살이 되었다고 인천 부평 시장으로 내려가 장사를 하고 있던 엄마가 내가 머물고 있는 서울 집까지 나에게 선물 하나 사주겠다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올라온 엄마의 모습은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는 나를 우리 동네의 한 시계방에 데려가서 마음에 드는 시계하나 선물로 사주겠다며 골라보라고 했다.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마침 시계도 없던 터라 마음에 두고 있던 그 여성스럽고 고급미 풍기는 얇은 금색 시계를 골랐다. “이제 성인이 됐으니 시계라도 하나 있어야지.”하며 엄마는 바지 주머니에서 둘둘만 검은 비닐을 꺼내 열어 고무줄로 꽁꽁 싸맨 지폐 여러 장을 세더니 선뜻 지불해 사주었다.     


늘 추레한 옷차림을 한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미싱일을 하다 일이 잘 안 된 이후로 엄마는 인천 부평으로 내려가 부평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셨다. 가계가 아닌 바깥에서 생선을 팔다 보니 추위로 늘 두툼한 누빔 바지에 어디서 얻어 입은 것 같은 유행 지난 패딩점퍼, 추위로 귀까지 꼭꼭 싸맨 두건을 쓴 모습이 일관된 엄마의 겨울 패션이다. 돈을 건네던 엄마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늘 고된 일을 하는 엄마의 굵어진 손마디 마디에는 생선 자르다 다쳤는지 감긴 흰 테이핑이 누렇게 되어 그간 고된 노동의 흔적이 내 눈에 여실히 보였다. 추웠던 그날도 두꺼운 누빔 바지 주머니 속에서 꺼낸 검은 비닐 안에는 고무줄로 꽁꽁 싸맨 지폐가 혹여 잊어버릴까 잘 돌돌 말려 있었다. 기억에 십만 원가량 되는 그 당시로는 적지 않은 큰 금액이었다. 그동안 한 푼 두 푼 아끼며 마음속 무언의 안타까움으로 남아있었을 그 짐을, 내게 사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한 푼 두 푼 모았을 것이다. 왠지 가슴에서 울컥 무언가 올라오는 걸 처음으로 느꼈었다.     


엄마의 인생도 그리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처량한 노래를 늘 흐느끼듯 부르고 싶은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가방끈 짧은 엄마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엄마의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깨닫고 있다. 어리석게도 그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렸다.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철없는 그 시절, 엄마의 희생으로 얻은 고마운 선물을 받으면서도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전하고 싶지만, 그 엄마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여자로서 행복이란 것 평생 편안함이란 걸 경험해보기나 했을까, 싶은 고생에 안쓰러운 마음이 너무 크고 가슴이 아프고 시리다.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말보다는 너무 미안하고 정말 고마웠다는 진심 어린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의 소중한 땀이 담겨있는 선물 평생 잘 간직할게.



공부방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을 치르고 장지까지 가 엄마를 모셨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사실 실감이 잘나지 않는다. 전화를 걸면 아직도 엄마가 받을 것 같고, 잠깐 마실을 나간 것 같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어쩌다 엄마가 계셨던 곳을 지나갈 때면, 어리석게도 돌아와 예전 모습 그대로 그곳에 계시지 않을까 기웃거리게 된다. 아마 이것은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그리움일 것이다.  엄마가 살아계셔서 이 글을 보면 좋아하셨을까? 엄마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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