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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ie Sep 19. 2023

<어느 멋진 아침> 영혼과 육체 어느 것이 진짜인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생각나는 영화

**아래의 내용에 영화의 스포일러와 주관적인 해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 오프닝에서 도도한 표정으로 요원을 암살하던 냉미녀 스파이 레아 세이두의 모습을 기억한다. 허리춤이 넘는 긴 웨이브의 금발머리를 하고 짙은 회색 코트를 입은 채, 부다페스트의 어느 허름한 뒷골목마저 순식간에 런웨이로 만들어버리는 모델 워킹까지. 내가 처음 본 레아 세이두의 모습은 젊고 예쁘고 화려했다.


<어느 멋진 아침>의 주인공으로 다시 만난 레아 세이두의 표정은 더욱 많은 사연을 담고 있어 보였다. 두 눈썹을 가운데로 모아 뾰족한 산을 만들고, 입술은 양끝으로 올려 미소 짓고 있지만 두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몽글몽글하고 위태로운 표정. 마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라며 두 손을 올리고 어깨를 으쓱할 때 지어야 할 듯한 이 표정.


영화에서 시종일관 혼란에 빠진 주인공 산드라 그 자체였다.



영화 <어느 멋진 아침 (One Fine Morning)>

개봉일: 23/09/06

장르: 드라마

감독: 미아 한센-러브

주연: 레아 세이두(산드라), 멜빌 푸포(클레망)

내용: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딸을 키우며 통역사로 일하는 주인공 산드라(레아 세이두). 한 때 철학과 교수였던 아버지가 지금은 혼자 있기 힘들 정도로 쇠약해지자, 이혼과 출가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를 시설에 보내기로 한다. 점점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슬픔, 요양 시설 입소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부담 등이 겹쳐 힘든 와중에 오랜 친구 클레망(멜빌 푸포)과 더욱 가까워진다. 바쁜 일상으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여성성을 클레망 덕분에 발견하지만,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고 둘은 다시 갈등에 휩싸인다.




 Q. 영혼과 육체 어느 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인가?


영화는 병들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 그리고 주인공과 클레망의 불륜 관계 양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에 대해 끊임없이 보여준다. 한 사람의 정신과 신체는 항상 같은 세트처럼 보이지만 결국 물리적인 연결일 뿐이다. 아버지와 클레망을 각각 가족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찰하는 산드라의 관점에서 이들은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여러 상황과 이유로 마음과 육체가 분리된 듯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1-1. 정신과 신체의 괴리

산드라의 아버지는 불과 몇 년 전까지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철학과 교수였다. 인지 능력과 신체 능력이 떨어지면서 이제는 환한 낮도 밤처럼 느끼고 코앞에 있는 딸의 머리카락 길이가 짧은지 긴지도 알지 못한다. 아버지가 머무는 요양 시설에서 대사 한 마디 없이 공허한 눈을 한 채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노인들처럼 산드라도 곧 자신의 아버지가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한 존재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사람에서 곤충으로 변한 평범한 직장인 그레고르 잠자처럼.


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하며, 산드라는 책이 아버지의 영혼 같다는 말을 한다. 프란츠 카프카, 한나 아렌트 등 아버지의 취향으로 가득 찬 서가는 산드라가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아버지의 정신이다. 자서전을 준비하던 아버지가 병증으로 변해가는 자신에 대해 쓴 기록들도 발견한다. '움직일 수 없는 육체에 갇힌 죄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이윽고 자서전의 제목으로 쓰려던 '어느 멋진 아침'이라는 글귀를 발견하는데, 철학 교수이자 지성인으로서 아버지의 정신이 온전할 때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 슬픈 마음이 들었다. '어느 멋진 아침'은 곧 특정한 아침을 '멋지다'라고 느낄 수 있어야 쓸 수 있는 형용사기 때문이다.


1-2. 감정과 이성의 충돌

산드라와 클레망의 관계는 불륜이다. 클레망은 산드라를 사랑하지만 별거 중인 아내와의 관계를 빠르게 정리하지 못한다. 두 여자 사이에서 클레망의 기묘한 줄다리기가 계속될수록 산드라는 클레망의 감정을 의심한다. 그녀가 가장 크게 폭발한 순간은 클레망을 별거 중인 아내와 물리적으로 공유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다. 클레망은 산드라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끌리지만 내 아들의 친모이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일까? 아니면 불륜관계가 밖으로 알려질 경우 지탄받을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산드라와 새 삶을 시작하는 듯한 클레망의 모습을 보여준다. 클레망의 선택은 산드라의 입장에서 로맨스고 행복의 시작이지만, 떠나온 아내와 아들에게는 불행의 씨앗일지 모른다. 극 초반에 클레망이 산드라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상황도 아들을 따라 나왔다가 발생했던 것을 보면, 클레망은 아들을 무척 아끼는 아버지였을 것이다. 아들의 거취는 정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예전 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 사랑을 택한 클레망은 이전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뒷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영화를 보며 생각난 것들

ㅡ 산드라 아버지의 증세는 알츠하이머가 아닌 벤슨 증후군으로 자막에 표기되는데, 정확한 병명과 증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ㅡ 우리나라라면 아직 상상하기 힘든 개방적인 관계가 등장한다. 오래전 이혼한 어머니와 그녀의 애인(새아버지인지 부정확함), 아버지의 수년 된 여자친구, 언니네 가족들이 함께 화면에 잡히는 컷이란.

ㅡ 아버지를 좋은 시설에 보내기 위해 여러 기관을 전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족의 노후를 맞이하는 일이 한국이든 프랑스든 쉽지 않아 보였다.




▼ 관련 리뷰 기사 링크 (스포일러 있음)


[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거듭되는 것 - <어느 멋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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