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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깎러 May 30. 2023

7. 저는 그냥 결혼을 잘 했을 뿐입니다.

배우자 잘 둬서 공짜로 취업이민 신청 했다는 이야기

나야 나 (내 사진 아님)

Tl;DR:

아내 써니 덕에 미국 입국 4개월 만에 (미국에 기여한 바 없이) 영주권 신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H-4 비자도 그랬지만, 써니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내 아내가 최고다.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5월 29일 오늘, 배우자 써니와 나는 우리의 영주권 신분 변경(Adjust of Status, AOS) 신청서인 I-485가 미 이민국(USCIS)에서 처리되기를 착실히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는 내일모레 근처의 USCIS 오피스를 방문하여 열 손가락의 지문을 제출하고 올 예정이며, 추후 USCIS의 추가 서류 제출 요청이 오면 신체검사를 받은 후 이에 응해야 한다. 이전에도 적었지만 우리의 I-485는 4월 5일에 승인된 아내 써니의 2순위 이민 영주권(EB-2) 외국인 노동자 이민 청원(Immigration Pettition for Alien Workers, I-140)에 기반해서 신청된 영주권이다. 나는 써니의 피부양자(dependent) 신분으로 써니와 함께 영주권을 신청했고, 이 과정에서 내가 한 역할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의 영주권은 단순히 배우자를 잘 둔 덕에 접수되게 된 것이다.


영구 노동 승인(Permanent Labor Certification, PERM) 후의 타임라인만 딱 떼 놓고 보자면, 우리의 영주권 신청 과정은 너무나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써니의 PERM은 2023년 3월 17일에 승인되었고, I-140은 3월 31일에 USCIS에 접수되었으며, I-140의 승인은 4월 5일, I-485가 접수된 것은 4월 25일이었다. 무려 만 39일 동안 PERM 승인부터 I-485 접수까지의 과정이 신속히 진행된 것이다. 다만 이 연재의 숨겨진 테마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영주권 여정은 정말 험난하기 짝이 없는 과정이다. 이미 이전에 언급한 바 있었지만 써니의 PERM은 미국 노동부(Department of Labor, DOL)에 작년 4월부에 접수되어 있었었는데, 보통 수개월이면 마무리되는 이 과정은 우리를 장장 9개월 여를 기다리게 한 끝인 올해 1월 초에 거절된 바 있다. 우리는 놀라고 좌절감에 휩싸였지만, 급히 정신을 차리고 PERM 과정을 면제받을 수 있는 국익 면제(National Interest Waiver, NIW) 조항을 이용하여 I-140 신청에 도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NIW 기반 I-140 신청을 위해 변호사를 고용한 것이 2월 7일이었고, 계약 후 만 한 달 동안 내가 거의 풀타임으로 달라붙어 로펌과 함께 추천서 초안의 준비를 완료했다.

희망의 끈을 놓고 있었던 PERM 소식이 들려온 것은 추천인들 모두에게 추천서 초안을 보내 드려 서명을 부탁드리고 그제야 한숨 놓고 있던 시기였다. 써니는 갑자기 회사 로펌 BAL에서 뜬금없이 미팅 일정을 잡으려 한다고 의아해했는데, 알아보니 다른 회사 동료들의 PERM이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던 사이 (이 시기에 많은 PERM이 불특정 감사(audit)에 걸렸다) 써니의 PERM은 기적적으로 승인되었던 것이다! 기쁨도 잠시, 우리는 부랴부랴 I-140 준비를 마쳐 I-140을 승인받고 빠른 시일 내에 I-485를 신청해야 했다. I-140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추천인 분들께서 추천서 답장을 속속 보내 주셨는데, 너무 경황이 없던 나머지 추천서에 대한 감사의 인사는 보내 드렸지만 아직 우리의 새로운 영주권 신청 타임라인에 대한 업데이트는 드리지 못한 상태다.


꼭 4월이 가기 전에 접수하기 위해 번갯불에 콩 볶는 속도로 I-485를 준비하게 된 주된 이유는 EB-2 영주권 카테고리의 승인 가능일(Final Action Date)이 급속도로 당겨지고(retrogress)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국에 건너오기 전에는 문호가 열려있던 EB-2 카테고리는 2022년 12월이 되자 문호가 닫히고 22월 11월 1일의 Final Action Date가 적용되더니, 3월까지 그 날짜를 유지한 채 닫힌 문호를 유지하고 있었다. NIW를 준비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어차피 문호가 닫혀 있으니 크게 무리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고, I-140을 너무 늦지 않게만 접수해서 대략 2023년 3월 말 - 4월 전후의 우선 일자(priority date)를 확보한 후 Final Action Date가 미뤄져(progress) 적체가 해소되기를 기다리려고 했다. 그렇게 큰 변화가 없이 3월을 맞게 되었는데 되었는데, 미국 경기는 나빠지고 있는데 갑자기 문호가 더 닫히게 된 것이다! 처음은 3월 미 국무부(Department of State, DOS)가 발표한 Visa Bulletin에서 그 쌔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4월이 되어서 발표된 Final Action Date는 무려 4개월이 앞당겨져 22년 7월이 되었다. 이 추세와 Visa Bulletin에서 읽히는 조짐에 따라 가늠컨대 5월의 Final Action Date는 무조건 훨씬 앞당겨질 것으로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예정보다 이른 4월 7일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5월의 EB-2의 Final Action Date는 무려 22년 2월 15일이 되었다!

NIW I-140를 사용할 예정이었으면 어차피 늦은 priority date 때문에 조금 더 기다리겠다는 생각을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상황은 며칠 새 급하게 바뀌어 있었다. 이제 아주 빠른 priority date을 확보하게 된 상황이 되었기에 최대한 이 상황을 활용해야 하게 된 것이다. PERM이 오랫동안 적체되어 있었던 덕분(?)에 써니의 I-140 priority date는 무려 22년 4월 14일이었다. 이는 EB-2 접수를 대기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단히 빠른 priority date였고, 이는 분명 하늘이 내려준 기회에 가까웠다. 우리의 I-140이 승인되었을 때 아직 5월의 영주권 문호는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긴 했지만, 이미 3월에서 4월 Final Action Date가 4개월 거꾸로 뛰기(...)를 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기에 모든 준비를 제시간에 마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했다. 마침 곧 5월의 Final Action Date가 발표되어 우리는 4월에 무조건 I-485를 제출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매일 저녁 시간과 주말을 열심히 준비에 할애한 끝에 결국 안전히 우리 모두의 I-485 접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EB-2 Final Action Date가 급전직하하고 있던 저 때 우리는 겨우 막차 타기에 성공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단지 배우자를 잘 만난 덕분에 미국에서 회사 한 번 다녀보지 않고 I-485 접수에 성공했다. 내가 군 복무를 마친 후 공백기 없이 바로 미국에 올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배우자(H-4) 비자였기 때문에, 내 성공적인(?) 미국행의 모든 까닭은 다분히 배우자를 잘 만났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살짝 다르게 표현하자면 나는 인적 투자에 성공한 걸로 볼 수도 있다. 아내 써니에게 장난 삼아 나는 행복한 트로피 남편이라 말하면, 써니는 트로피답게 몸을 좀 키우는 것은 어떠냐고 받아친다. 최근 내가 글 쓰느라 바빠 운동을 소홀히 하고 있기에, 아내 써니가 한 인적 투자는 실패했다고 봐야 하나? 그것 참 아쉽다.


연재의 주된 주제가 아니기에 아내 써니와 나의 이야기는 간단하게만 하고 넘어가야겠다. 써니와 나는 2015년 미국의 한 대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공통된 친구가 한 명 있기는 했지만, 써니가 미국 박사 유학을 위해 미국에 오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었다. 써니가 진학한 학교에서 이미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나는 써니를 만나자마자 귀신같은 순발력으로 그녀를 낚아챘고, 우리는 2017년에 결혼해 지금까지 쭉 같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사귀던 초기만 하더라도 원래 우리는 함께 학계를 노리자고 약속했었다. 다만 써니는 교수님이 학생들을 모두 두고 떠나시는 불행한 일을 겪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어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고, 그녀의 능력을 알아준 좋은 테크 회사에서 인정받아 지금까지 잘 근무하고 있다. 반면에 나는 계속 연구를 하겠답시고 군 복무도 (현역으로 빨리 끝내고 돌아오는 대신) 3년간 연구소에서 복무하며 다음 기회를 모색하는 방법을 택하는 등 아주 먼 길을 돌아왔는데, 오랜 시간을 방황한 끝에 그제야 내 길이 아닌 걸 깨닫고 다시 회사들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가볍게 돌 사이를 뛰어다니던 대학원생 시절의 나와 써니.

써니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내가 군대를 간답시고 한국으로 훌쩍 떠난 3년의 기간 동안 혼자 꿋꿋이 미국에서 잘 살던 의지가 곧고 당찬 사람이다. 내가 한국에서 여러 가지로 빌빌대고 있는 동안 써니는 먼 길을 건너와 새벽일을 자처하며 내 옆에 있으면서 내 멘털을 케어해 주었다. 그 후 제대로 된 직장도 잡지 못하고 다시 한번(...) 빌빌대고 있는 동안 나를 믿고 심적 물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 준 것도 내 든든한 후원자 써니다. 처음 만날 때도, 결혼할 때도, 군 복무를 하러 한국으로 향할 때도 앞으로 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지난 8년을 돌아보면 50점 이상의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 보인다. 물론 항상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긴 한데, 그간 까먹은 점수를 만회하려면 앞으로 더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둘 다 오랜 기간 대학원에 머물렀기에 나왔기에 우리의 사회생활은 남들보다 좀 많이 늦었다. 주변의 동년배 맞벌이 부부들의 생활은 다들 우리보다 여유롭고 풍족해 보인다. 비록 나의 연봉은 작고 귀엽게 시작하지만, 열심히 일하면 너무 늦기 전에 괜찮게 불어나지 않을까? 일단 지금은 내 연봉이 써니의 연봉을 따라잡는 날이 올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만, 영혼을 갈아 넣다 보면 지금까지 고생한 써니가 좀 쉴 수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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