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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깎러 May 29. 2023

6. Kristen, 나 이러다 쫓겨난다구요!

환상적인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민 로펌과의 한 바탕 씨름

Kristen, 제발 답변 좀 해요. Kristen!

TR;DR:

고용계약서에 서명한 지 아직 9주가 지나도록 아직 취업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나는 아직 손가락만 빨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발급받아 입사하려던 O-1 비자가 아직 기약이 없다.

보통 6주에서 8주면 접수가 가능하다는 지원서를 벌써 10주째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운 좋게도 추첨에 당첨된 H-1B는 아직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았다고만 한다.

피하실 수 있다면 Fragomen 로펌은 피하시길 바란다.


대면 면접 중 만나 뵌 팀의 매니저님께서는 일손이 부족하다시며 빨리 팀에 합류해 주기를 바라셨다. 매니저님 본인도 이민자이시기에 비자 취득과 영주권 취득 과정의 불확실성을 잘 알고 계셨겠지만, 일단 최대한 빨리 팀에 합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자고 말씀을 나눴다. 당시 나는 특수 재능 소유자(O-1) 비자는 급행 처리(premium processing)를 적용받아 접수 후 근무일 15일 이내에 취업 허가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매니저님께 빨리 서류를 준비하면 5월에도 합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빨리 취업하고 싶었던 나와 일손이 필요했던 매니저님이 함께 의기투합한 순간이었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기존 직원들에게 전문직(H-1B) 취업 비자를 제공하고, 이에 더해 H-1B 비자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직원들에게 O-1 비자를 지원해 준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과연 신분이 없는 신규 임용자에게까지 비자를 지원해 주는지는 미지수였다. 다행히도 내 지원서를 넘겨받은 인사팀 직원(recruiter) Sophia가 인사팀과 법무팀 사이에 내 지원서를 여기저기 회람시켜 가며 애써 준 끝에 O-1 비자의 지원이 가능해 입사 지원 절차를 시작해도 좋다고 확인을 받아 주었고, 그제야 나는 지원 과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취업 비자로 거주하고 있는 대다수의 비 영주권자 외국인들은 H-1B 신분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국적 외국인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학생 출신에게는 학생(F-1) 비자의 선택적 실습(Optional Practical Training, OPT)을 이용해 먼저 취업에 성공한 다음 OPT의 최고 3년의 기간 동안 H-1B 신분을 획득하여 취업 비자로 신분을 전환하고, 그 후에 영주권에 신청해 미국에 장기 거주하는 방식이 가장 왕도로 꼽힌다. H-1B 비자는 매년 85,000개가 신규 발급되는데, 취업 상태를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 한 번 발급받은 사람에게 최소 3년에서 길게는 반영구적으로 미국에서 거주할 권리를 제공한다. 최초 유효 기간은 3년이지만, 조건 없이 3년의 신분 연장이 가능하고, 만약 외국인 노동자 이민 청원(Immigrant Petition for Alien Workers, I-140)이 승인된 경우 신분 변경(Adjustment of Status, I-485)이 가능할 때까지 추가적으로 1년씩 신분을 연장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H-1B는 신청자의 이민 의도를 인정하는 이중 의도(dual intent) 비자로, 소지자가 미국에서 I-485를 신청했을 경우 미국 재입국의 기회를 인정하는 몇 안 되는 특수한 비자에 속한다.

이토록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비자이지만, H-1B의 가장 큰 문제는 취득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에 있다. 미국 내외에서 신청자가 몰리는데 반해 총 비자 숫자는 계속 적은 수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H-1B 추첨의 경쟁률은 지난 10년간 대략 50 % 를 하회했다.

올해(2024 회계연도, FY 2024) H1B의 경쟁률은 어림잡아 9:1에 달했다.

다행히도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는 총 85,000개의 신규 비자 중 20,000개의 독립 쿼터 내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받기 때문에 조금 더 선정 확률이 높다. 다만 여전히 본인의 미래를 추첨에 걸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때문에 H-1B 추첨일은 유학생들 모두에게 큰 관심이 쏠리는 날이다. 이렇게 최근 높아져만 가는 경쟁률에는 외국(특히 인도)계 외주 회사(consulting firm 또는 outsourcing firm)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데, 이들은 소정의 소개비를 받고 지원자의 H-1B 추첨 중복 접수를 지원한 다음, 지원자가 H-1B에 당첨되면 커미션을 제하고 지원자를 파견해 수익을 얻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행위는 합법과 탈법의 사이에 있는 교묘한 행위이기 때문에, 미 이민국(USCIS)에서는 이러한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는지 열심히 관찰한다. USCIS는 올해 3월 말에 이루어진 FY 2024년의 H-1B 추첨에서는 불법적인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조금 더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도 한다.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은 다시 뒤집을 수 없고, 최근 몇 년간 추첨을 통해 H-1B가 어려워 다른 방도를 모색해야 했던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O-1 비자는 한국에 유재석 비자로 알려져 있다. 보통은 예체능 업계 종사자들께서 많이들 발급받으시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에서의 무한도전 촬영을 위해 유재석 씨가 발급받아 더욱더 그쪽(?)으로 유명해진 비자이다. 이 비자는 정확히는 "과학, 예술, 교육, 비즈니스, 운동 또는 영화와 TV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자 및 이들의 필수적인 보조 직원"들에게 발급되는 비자로, 엔지니어도 과학자로 취급받아 충분히 지원이 가능하다. O-1 비자는 H-1B 비자와는 다르게 비자의 총수량이 정해져 있지 않아 순수하게 USCIS 직원의 심사를 통과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비자는 아닌데, 이는 단독(self-sponsor) 지원이 가능한 카테고리의 영주권들(EB-1A와 NIW 기반 EB2)과 마찬가지로 '특수한 재능'을 증명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몇 가지 기준들을 충족시킨다는 증거를 제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준들은 EB-1A의 기준과 상당히 비슷하지만 다행히 조금 더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는데, 이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지원자는

국가적 또는 국제적으로 꾸준히 인정받은 특수한 재능을 소유하여야 하고 (Has extraordinary ability in the sciences, education, business, or athletics, which has been demonstrated by sustained national or international acclaim;)

본인의 분야에서 이뤄낸 성취가 다수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어야 하며 (Has achievements that have been recognized in the field through extensive documentation; and)

마지막으로 본인의 특수 재능 분야에 계속하여 종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입국하여야(Is coming to continue work in the area of extraordinary ability (but not necessarily that the particular duties to be performed require someone of such extraordinary ability))하는데, 

이를 위해서 아래 중 세 항목 이상에 해당하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국가적 또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수상 경력의 증명 (Documentation of the beneficiary's receipt of nationally or internationally recognized prizes or awards for excellence in the field of endeavor;)

뛰어난 업적을 기준으로 선정되고, 국가적 또는 국제적인 인지도를 가진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가입되는 협회의 회원이라는 증명 (Documentation of the beneficiary's membership in associations in the field for which classification is sought, which require outstanding achievements of their members, as judged by recognized national or international experts in their disciplines or fields;)

전문 학술지, 업계 전문지, 또는 주요 언론 매체의 발행물에 조명받은 증명 (Published material in professional or major trade publications or major media about the beneficiary, relating to the beneficiary's work in the field for which classification is sought;)

본인의 직접 전문 분야 또는 연관된 분야에서 개인 또는 패널의 일원 자격으로 남의 업적을 심사한 경력 증거 (Evidence of the beneficiary's participation on a panel, or individually, as a judge of the work of others in the same or in an allied field of specialization for which classification is sought;)

과학, 학문, 또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중요한 독창적인 공헌을 했다는 증거 (Evidence of the beneficiary's original scientific, scholarly, or business-related contributions of major significance in the field;)

본인의 전문 분야의 학술지나 주요 언론 매체에 학술 논문 또는 기사를 게재한 증거 (Evidence of the beneficiary's authorship of scholarly articles in the field, in professional journals, or other major media;)

뛰어난 명성을 가진 단체에서 중요하거나 핵심적인 직책으로 고용된 경력에 대한 증거 (Evidence that the beneficiary has been employed in a critical or essential capacity for organizations and establishments that have a distinguished reputation; or), 또는

과거 또는 미래에 높은 연봉이나 보수를 받고 있다는 증거 (Evidence that the beneficiary has either commanded a high salary or will command a high salary or other remuneration for services, as evidenced by contracts or other reliable evidence.)

O-1 비자는 최초 최대 3년 유효하며, 이후 매 1년씩 무한정 추가 연장이 가능하다. H-1B처럼 연장에 제한이 있지 않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만약 신분을 유지한 채 새로운 고용주를 찾으려면 새로운 고용주와 I-129를 다시 한번 신청해야 한다는 점은 단점이다.


H-1B와 O-1 비자 모두 준비 과정이 고용주와의 긴밀한 협업과 법률적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보통은 회사가 고용한 이민 전문 로펌 (immigration law firm)과 함께 지원서 작성준비를 하게 된다. H-1B의 경우 고용주나 그의 대리인이 미국 노동부(US Department of Labor, DOL)에 노동 허가서(노동 조건 신청서, Labor Condition Application, LCA)를 신청하고 이를 먼저 승인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고용주가 해당 피고용인을 적절한 직책에 적절한 임금을 책정하여 고용하였는지, 혹시나 해당 외국인 피고용인으로 인해 자국인 직원이 피해를 받는 일은 생기지 않는지 등을 노동부가 점검하고, 이를 위해 immigration law firm이 고용주와 긴밀하게 필요 서류를 준비한다. LCA가 승인되면 고용주는 비이민 노동자 청원서(Petition for a Nonimmigrant Worker, I-129)를 이용해 피고용인의 H-1B 신분을 신청하게 된다. 매년 3월에 신청하게 되는 H-1B 비자는 당해 10월에 시작되는 익년 FY에 사용 가능한 비자이기 때문에, 보통 10월 1일에 맞추어 I-129에 10월 1일부로 신분 변경을 신청해 적용받는다. 피고용인이 미국 외에 거주하는 경우, 여기에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는(보통 visa stamping이라 불리는) 과정이 추가된다. 

O-1의 경우 노동부와 대면해야 하는 일은 없지만, 고용주가 직접 피고용인의 특수한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서류를 준비해 USCIS의 심사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 서류는 명목상으로는 고용주가 준비해야 하지만, 고용주가 보유한 제한된 내부 전문 인력이 모든 비자 지원자 개개인에게 차별화된 법적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대부분은 그러하지 못한다. 따라서 보통은 회사와 계약을 맺은 immigration law firm의 담당자가 피고용인과 함께 서류를 준비하게 된다. 단순히 증거를 요하는 서류야 인터넷이나 신문기사를 잘 수집하여 공유하면 문제가 없고, O-1 준비에 있어 가장 많은 노력을 요하는 부분은 자문('consultation') 부분이고, 가장 많은 시간이 드는 부분도 같은 부분이다.

USCIS는 O-1에 자문이 필수적이라("The Petitioner must provide...") 말하고 있는데, 이 consultation은 본인이 속한 분야의 노동조합이나 본인이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의 전문가(expertise in the beneficiary’s area of ability)에게 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H-1B 비자의 경우 이와 같은 특수한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므로 해당 과정이 생략되고, 지원자에 대한 비슷한 증거를 요구하는 NIW기반 EB-2 영주권EB-1A 영주권은 비슷한 서한(letter)이 지원자의 검증에 도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다수의 지원자들(과 로펌들)은 최대한 통과 확률이 높은 지원서를 만들어 USCIS에 제출함으로, 거의 모든 EB-1A / NIW 기반 EB-2 영주권의 지원서들은 이 자문서 내지 추천서를 준비해 지원에 임하게 되고, 따라서 O-1 비자 준비 과정은 EB-1A, 그리고 NIW 기반 영주권 준비 과정과 상당히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된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나의 H-1B 신청 과정은 너무나도 별 것 없었다. 워낙 아내 써니와 주변 테크 종사자 친구들로부터 H-1B 추첨의 무시무시함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H-1B를 노리겠다는 기대를 애초에 전혀 하지 않았다. 따라서 입사 지원서에 비자 지원이 필요하다고 적어 놓고도 항상 코멘트에 O-1 비자를 선호한다고 부기해 두었다. 물론 모든 회사들이 O-1 비자를 지원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력서에까지 적어 둔 문구는 "2023년 하반기에는 배우자(H-4) 비자에 추가되는 취업 허가서(Employment Authorization Documentation, EAD)로 취업할 수 있다"는 문구였다. H-1B는 매년 3월 말의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신청서를 접수받기 때문에, 고용주는 이 시기에 피고용자를 고용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보통은 이미 다른 신분으로 두고 있는 피고용주를 위해 H-1B 지원서를 내기도 할뿐더러) 보통은 H-1B의 지원을 꺼린다. 나도 회사와의 면접이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H-1B 지원 자체를 완전히 잊고 살고 있었는데, 회사로부터 채용 의사를 전달받기도 하루 전(!)인 3월 7일에 갑자기 회사의 immigration law firm인 Fragomen으로부터 H-1B 제출을 준비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처음에는 혹시 O-1 대신 H-1B를 신청하게 되는 것인가, 때문에 10월 1일이 되어야 근무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인가 걱정해 급히 회사 인사팀과 Fragomen에 여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다만 곧 H-1B는 O-1과는 별개로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하고자 지원한다고 설명받았고, 바로 별 기대 없이 일단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서를 제출한 후에도 회사와의 연봉 협상과 써니의 영주권 준비에 정신이 없어 별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막상 발표일이 다가오니 주변에서 H-1B 추첨일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되었고, 때문에 이유 없이 긴장되어 자꾸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고, Fragomen의 사용자 포털에 들락날락거리고,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추첨은 3월 27일까지 진행되어 USCIS가 그 결과를 각 고용주(와 로펌)에게 통보를 완료했는데, 나는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3월 28일 오후에 이메일을 통해 알게 되었다.

H-1B에 기대가 없다던 사람의 반응이라기엔 솔직히 좀 격하기는 하다.

중간에 수 주간 아무 연락도 없이 방치되어 '얘내들 도대체 뭐 하나...' 궁금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H-1B 지원 서류 준비 과정 전체에 대한 내 평가는 긍정적인 편이다. H-1B를 위한 I-129는 추첨 후 90일 내에 제출되어야 하는데, 당첨이 약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나의 I-129는 아직 제출되지 않았은 상태이긴 하다. 지원이 늦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신분 전환은 10월 1일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급할 이유는 전혀 없고 서류 제출을 크게 걱정하지도 않는다. 내 평가가 나쁘지 않은 데는 학위기, 성적표, 여권 사본 등을 제외하면 내가 직접 준비해야 할 서류가 크게 많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기도 하겠고, 비자가 급하지도 않고 애초에 나에게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기분이 상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다. 내 서류 준비를 도와주던 패러리걸은 인도에 있는 친구였는데, 서로 시차가 있어 오히려 대화를 주고받기는 편했다. 서로 이메일을 보내면 주말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24시간 내에 답장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O-1 비자의 준비 과정은 사리를 양산하는 대 환장 고구마파티 같았다. 처음 연락받았을 때 함께 건네받은 안내서에는 서류 준비 시작부터 접수까지 6주에서 8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분명히 적혀 있었건만, 아직 10주가 지나도록 변호사에서 지원서를 검토받지 못했다는 점이 그 대부분을 설명한다. 나는 분명히 준비 전에 (1) 내 현재 신분이 7월 8일에 만료될 예정이고 (2) 팀과 빠른 시기에 합류하기로 약속한 바 있기에 빠른 시일 내에 준비를 완료해 주기로 부탁했었다. 여기에 나에게 돌아온 것은 최상의 고객서비스와는 거리가 있었는데, 먼저 (1) 연락을 잘 받지 않아 대단히 답답했던 것을 시작해 (2) 서류 준비가 약속보다 늦어졌던 것은 애교이고, (3) 약속된 기한보다 한참 늦게 수준 이하의 추천서 초안을 제공받았을 뿐만 아니라 (4) 한창 추천서 준비가 한창일 때 지원 과정 자체를 다시 재검토하자고 연락이 와 가슴을 철렁이게 하기도 했다. 내 O-1을 담당한 Fragomen 패러리걸은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Kristen이라는 이름의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아쉽게도 이메일을 받았을 때 답신(acknowledgement, ack)을 하는 기본적인 비즈니스 상식조차 없어 보이는 친구였다. 백번 양보하여 전문 지식 없는 패러리걸이 지원자 개개인의 경험과 능력에 완벽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힘들 수는 있지만 적어도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서 나와 공유해 줄 수는 있었을 텐데, 아니 적어도 나와 일말의 피드백을 제 때 주고받으면 나를 안심(?)시킬 수라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낸 총 23개의 이메일에 Kristen은 총 12번의 답장을 주었고, 그중에 10번은 Kristen이 제 때 답장을 하지 않아 Kristen의 매니저가 대신 ask을 한 바 있다.

Consultation을 작성해 줄 추천인의 선정을 완료한 후 추천서의 초안을 돌려받은 것은 최초에 Fragomen에서 안내해 주었던 2주를 한참 넘어선 4주가 되어서였다. Kristen은 바빴는지 내가 총 3명의 추천인을 모두 확정하기 전까지 추천서의 초안 준비를 시작하지 않고 있었는데, 대략 1주일이 걸려 마지막 세 번째의 추천인을 확정하고 나서야 나에게 3주의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 한 바 있었다. 추천서의 초안을 전해 받은 것은 4주를 꽉꽉 채운 금요일 오후 9시였는데, 그때 받은 추천서는 너무나 군데군데 비어 있어(...) 도무지 초안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나는 꼬박 한 주가 더 걸려서 겨우 추천서 초안을 작성할 수 있었고, 다행히(?) Kristen이 휴가를 가 있던 동안에 업무를 대신해 주던 친구가 재검토를 하루 만에 빠르게 마쳐 준 바람에 추천인들에게 제시간에 추천서를 보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 번 가슴 철렁한 에피소드가 한 번 있었음은 이제 그다지 놀랍지도 않을 텐데, 갑자기 Fragomen으로부터 '이미 H-1B에 당첨되었으니 O-1 준비는 이제 나중으로 미루어 두자'는 이메일을 받은 것이 그것이다. 분명 처음부터 내 신분이 곧 만료될 예정이라고 확실하게 밝히고 비자의 준비를 시작한 것인데, 그새 그것을 까맣게 까먹고 본인들이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만 생각한 것이다! 물론 화들짝 놀라 답변을 보냈더니 다시 없던 일이 되기는 했지만, Fragomen의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데는 충분코도 남았다. 추천서를 받고 나서도 고구마의 파티가 계속되었던 것은 매한가지다. Kristen은 내가 추천서 초안을 검토하고 추천인들에게 추천서의 작성과 서명을 부탁드리고 사본을 돌려받는 약 2주 반의 시간 동안 내 서류는 그대로 어딘가에 쌓아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듯하다. Kristen은 모든 추천서를 송부한 후 사흘이 지난 날 나에게 뜬금없이 아직 받지도 않은 월급 명세서를 요구하는 행태를 보여주었는데, 내 서류를 어딘가에 처박아 놓고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에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없었다. 준비를 시작한 지 10주가 지나버린 아직까지도 내 서류는 준비 과정에 있다.


Fragomen이 악명 높은 immigration law firm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부아가 서서히 치밀고 있던 4월 중순경의 시기였는데, 구글에 Fragomen incompetence라고 검색하면 다양한 경험담이 뜨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자주 들르는 오픈카톡방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들어 그 무능함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확인했다. 레딧에서 여러 댓글을 읽다 보니 비용 절감을 위한 회사들의 노력이 시너지를 빚고 빚어 패러리걸들이 박봉에 비해 너무 과도한 일을 하게 되는 점, 그리고 때문에 패러리걸들의 평균 근속 년수도 짧아 경험 없는 패러리걸들과 일을 하게 되는 일이 많아 생기는 다분히 시스템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긴 했다. 다만 아쉽게도 근본적인 문제가 시스템에 있다고 해서 내가 받은 아픔의 크기가 작아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회사가 고용한 immigration law firm이 하필이면 Fragomen이었던 덕분에 내 취업 허가는 아직 하나도 확정된 바 없게 되었다. 글을 열심히 쓰고 있던 미국 시간 5월 27일 오후 혹시나 H-1B나 O-1 둘 중 하나의 카테고리라도 어떤 업데이트가 있나 Fragomen의 사용자 포털에 들어가서 잠시 확인해 보았는데, 역시나 아직 마지막에 확인한 이후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얼마나 많은 회사가 Fragomen을 이용하는지, 과연 피고용인 개개인이 immigration law firm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지기는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조건 Fragomen을 피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 한 마디만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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