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미국에 와서 면접을 보고 한 회사에 가까스로 합격한 이야기
미국에 오는 길에 한 선배님의 referral을 받아 한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취업 허가 없는 외국인이라 면접까지 오는 길이 쉽지는 않았지만 가까스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나름 준비는 열심히 해서 그랬는지 어떻게 면접을 잘 통과했고, 다행히 고용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내가 고용 계약을 마치고 합류를 앞두고 있는 회사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한 하드웨어 중심 회사이다. 이 회사의 자리는 사실 제1 순위로 지원을 고려하고 있던 자리는 아니었다. 직책의 job description이 내 경험과 잘 맞아떨어지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큰 회사의 잘 나가는 팀이라 나보다 그 자리에 더 잘 맞는 지원자들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막 지원서를 준비하고 있던 시기에는 팀에 신규 인원 채용 여력이 없어서 하마터면 나와는 인연이 없을 뻔 한 자리이기도 하다. 고맙게도 면접 과정에서 팀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팀과 업무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팀원들과 매니저님, 그리고 디렉터님이 나의 업무 적합도를 높게 평가하셨기에 나를 합격시켜 주시지 않으셨나 생각하고 있다.
선배님께서 referral을 도와 주셔서 나쁘지 않은 위치에서 시작하긴 헀지만, 고용 계약서 서명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난했다. 가장 먼저 겪었던 난관은 지원서 작성후 얼마 되지 않아 생긴, 당시 한국에 거주중이라는 이유로 채용 과정이 중단된 일이었다. 입사 지원서는 미국 입국을 약 1달 여 앞두고 있던 시기 작성되었고, 당연히 미국 내 주소와 연락처가 없었기에 내 입사 지원서에 기록된 주소와 연락처는 당연히 한국의 것들이었다. 입사 지원서를 작성할 당시 선배님께서는 경제 위기 때문에 회사가 취업 비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시고 계셨다. 하지만 써니가 외국인 노동자 이민 청원(Immigrant Petition for Alien Workers, I-140)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던 선배님께서는 '일단 미국에 무조건 있기는 할 거고, 또 언제쯤 취업 허가서(Employment Authorization Document, EAD)를 발급받을 지 모르기 때문에 한 번 지원은 해 보라'는 식으로 추천을 해 주셨다. 다행히도 매니저님께서 적당히 2023년 중순 쯤엔 EAD가 나와 합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나의 패기어린 말을 잘 믿어 주셨던 것 같고, 그래서인지 일단 내 이력서는 screening을 통과해 recruiter 한 분에게 전달되었다. 나에게 배정된 recruiter는 Sophia라는 성함의, 고맙게도 이메일에 항상 빠른 답장을 보내 주시는 분이셨다.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서로 신상정보를 묻는 이메일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그러다 11월 말의 어느 하루, Sophia는 갑자기 나에게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해 주었다.
"Hi *,
I’m sorry I misread your resume as I thought you were already based in the US. Unfortuntately, we will have to put this on hold.
Thank you for your interest and I will let you know if anything changes."
분명 지사가 위치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과는 채용 과정을 진행하지 않는 회사 규정이 그 이유였으리라 생각한다. 이메일을 받은 당시는 미국 입국을 한 달도 채 남겨두고 있지 않아 살림살이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던 와중이기도 했고, 반복된 거절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던 시기기도 하여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어차피 EAD가 없으니 이런 경제 위기에 바로 일을 찾기는 글렀고, 일단 미국에 들어가 기다리다 보면 EAD가 언젠가는 나오겠지. 혹시라도 써니의 I-140에 문제가 생기면 대학원에 입학하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터이다. 일단 Sophia의 이메일에는 곧 미국으로 떠나니 혹시 기회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공손하게 답변을 보낸 후, 나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실제 면접이 시작된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2023년 1월 중순이 되어서였다. 이메일이 끊어지고 한참이 지난 2022년 12월 말, 미국으로 이사 후 취업은 어느 정도 포기한 채 마음 편하게 이삿짐을 풀고 있을 때 뜬금 없이 Sophia가 다시 이메일을 보내 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대단히 놀라운데,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어 이메일을 못 보고 넘어간 탓에 Sophia가 이메일을 다시 한 통 보내 주고 나서야 이메일이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메일은 놀랍게도 아직 hiring manager님이 계속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Sophia의 이메일이 고맙긴 했지만 몸이 태평양을 건너 왔을 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던 상황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었는데, 혹시나 모르니 일단 Sophia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아직 해당 직책에 관심이 있음을 알렸다. 연말이 끼어 있어 우리의 대화는 꽤나 지연되었는데, 이 과정에 쑈니의 회사에 정리해고의 조짐이 보이면서 I-140를 위한 영구 노동 허가(Permanent Labor Certification, PERM)의 승인 과정이 지체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EAD의 발급이 무기한 늦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Sophia에게 회사의 신분 지원이 꼭 필요할 것 같다고 간절히 부탁했고, Sophia는 나를 위해 인사팀과 법무팀에 여러 가지를 물어 봐 주었다. 다행히 회사는 신입 직원들에게도 특수 재능 소유자(O-1) 비자를 제공해 주고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며칠 밤을 새워 준비한 포트폴리오를 회사 법무팀에 제출하여 검토 받고 난 끝에 계속 채용 과정을 진행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고 면접을 진행할 수 있었다.
면접의 각 과정은 시간이 꽤 걸리기는 했지만 특별한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Hiring manager님과의 phone screening은 1월 19일, 팀원들과의 onsite interview는 2월 2일, director님과의 면접은 2월 23일에 진행되었고, 구두 채용 의사(verbal over)를 받은 일자는 2023년 3월 9일이다. 각 면접 과정이 서로 떨어져 있는 이유는 면접 결과가 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가 아니라, 다분히 현직자 분들의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Onsite interview는 원래 1월 24일에 바로 보기로 일정을 잡아 주셨던 것을 내가 준비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말씀드리고 한 주 뒤로 옮겨 2월 2일이 되었고, director님과의 면접은 director님의 출장 및 휴가 일정이 겹쳐 두 번 조정된 끝에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어 director님이 동부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시는 와중에 화상으로 진행하기로 예약되었다. 면접에서 여쭈어 보셨던 질문들은 내 예상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아무래도 대부분 면접관님과 그리고 나 모두 박사과정을 한 번 해 본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기에 서로의 연구에 관한 이야기라던지, 서로 일상에서 접하는 문제와 그 문제 해결 방법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정도의 시간이 많았다. 생각보다 다들 내가 했던 연구에 큰 관심을 보여 주셨고, 덕분에 주어진 면접 시간에서 너무 심화적인 고체 물리학 질문을 받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대면(onsite) 면접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대다수의 회사들은 2020년에 거의 예외 없이 화상 면접으로 전환된 시킨 후 아직까지 화상으로만 onsite 단계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한 번 화상 면접을 경험해 본 회사들이 그 가성비에 맛을 들인 나머지 지원자들에게 교통비와 숙박비를 지급해야 하는 대면 면접 방식으로 회귀하기가 쉽지 않아 그런 것 같은데, 내 경험을 들자면 솔직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내가 지원한 직책은 하드웨어 엔지니어 직책이라 아무래도 면접에 도표와 그래프를 활용할 일이 많은데, 처음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고민을 조금 했었다.
결과적으로 화상 onsite 면접에 아이패드 화면공유가 큰 역할을 했다. 첫 면접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컴퓨터나 아이패드가 무조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해 두고 포트폴리오와 빈 공책 페이지를 맥북과 아이패드 양쪽에 준비하였다. 모든 면접은 예외 없이 들어 오신 면접관님께서 먼저 간략히 자기 소개를 해 주신 다음 나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하시고 나의 연구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는데, 이 때 면접관님께 양해를 구한 후 아이패드 화면 공유를 이용해 간단히 준비한 나의 포트폴리오를 면접관님과 공유했다. 도표와 그래프 위에 직접 그려 가며 설명을 할 수 있었기에 조금 어려운 개념도 큰 문제 없이 잘 설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구 이야기가 끝나면 면접관님으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는데, 아이패드 없이 말로 설명하기를 원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보통은 내 아이패드 화면을 계속 공유해 가며 면접관님께 질문을 받는 실시간으로 도표와 그래프를 그려 가며 질문에 대답을 해 나갔다. Technical on-site 면접에서는 총 여섯 분의 면접관님을 만났고, director님은 딱 한 번 뵙고 모든 면접을 마쳤다.
바로 위에선 매우 쉽게쉽게 면접을 통과했 던 것 처럼 적어 놓긴 했는데, 면접 준비 과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각 면접 단계의 준비 과정은 꽤나 길었고, 매 면접 단계를 기다리는 동안 하두 스트레스를 받아 위산이 역류하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써니도 마음고생 몸고생을 많이 했다. 어쨌건 전자공학 박사 학위 소지자로 임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첫째로 내 박사학위 연구는 어떤 디테일도 술술 설명할 수 있었어야 했고, 둘째로 기본적인 전자공학 지식도 당황하지 않고 바로바로 설명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해 두었어야 했다. 따라서 상당한 시간의 복습이 필요했다. 다행히 나에게 referral을 주셨던 선배님께서 해 주신 조언을 착실하게 따라서, 한국서 회사 지원서를 열심히 작성하던 시기에 약 2-3개월 동안 퇴근 후 시간을 할애해서 학부 과정 필기 노트를 한 번 다 깔끔하게 요약 정리해 둔 게 있었다. 덕분에 학부-석사 과정 중 중요한 내용이 정리된 10장 내외의 개념 정리 노트를 가지고 있었고, 면접 사이사이 마다 노트의 내용을 달달 외우려고 노력했다. 박사 과정 동안 했던 연구는 사실 누가 언제 물어봐도 자신있게 대답해 드릴 수 있을 정도로 숙달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빼 먹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졸업 논문과 박사 학위 디펜스 자료를 몇 번 다시 읽고, 포트폴리오의 형태로 요약 슬라이드들을 정리해 가며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 질문에 대비했다.
고용계약서(written offer letter)를 전달 받고 서명한 날은 3월 20일이었다. 모든 면접을 마치자 마자 평판조회(reference check)를 시작했고, 3월 9일에 드디어 채용 의사를 구두로 전달 받고 연봉 협상을 시작했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연봉 협상을 한 번 해 보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사실 이 시기에 recruiter와 연결된 한 자리가 있었는데, 이 직책은 따로 referral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채용 공고를 이용해 직접 지원한 자리였음에도 어떻게 resume screening을 통과했었다. 아무래도 내가 주소와 연락처가 미국 것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더 쉽게 서류 심사를 통과했으리라 지레짐작 해본다. 아무튼 면접이 계속 진행되고 있던 과정에 나와 연결된 recruiter에게 과정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해 주며 이메일로 재촉했고, 그렇지만 아쉽게도 나에게 관심을 보였던 팀의 hiring manager로부터는 바로바로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딱히 사람이 급히 필요한 것 같아 보이지 않아 보였고, 결국 서로 쿨하게 채용과정을 그만 두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진행하던 다른 채용 과정이 하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제시할 다른 패(카운터 오퍼, counter offer)가 없이 연봉 협상에 임하게 되었고, 결국 살짝 미적지근한 연봉을 제안 받았다. 써니의 도움을 받아 판단하건대 괜찮음과 아쉬움 사이 어느 쯤에 있는 정도의 연봉이었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감지덕지한 연봉이었기에 한 번 튕겨는 보고 착하게 고용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고용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2023년 3월 20일에 일단 공식적으로 내 취업 준비 여정은 끝이 났다. 작년 2022년 4월 22일에 첫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으니, 대략 만 11개월의 시간동안 취업 준비를 한 셈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돌고 돌아 겨우겨우 거머쥔 자리 치고는 직책이 너무 분에 넘치게 좋아 보이는데, 앞으로 오랫동안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용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나의 합류가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미국의 고용계약은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자유 재량(at-will) 고용 계약이라 언제든 나나 회사나 수틀리면 위약금 없이 고용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 실제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몇 개의 테크 회사들에서는 구조조정과 동시에 고용계약서에 서명을 완료한 지원자들의 고용을 철회하는 일이 최근에 종종 있었다. 지난 두 달 간 경제가 추가로 더 요동치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철렁 했던 시간이 나에게도 몇 번 있었다. 다만 채용 과정에서 서로에게 들인 매몰 비용이 있으니 회사의 사정이 아주 나빠지지 않는 이상 신규 고용 계약을 철회하는 것은 아마 최후의 수단에 가까울 것이다. 다행히 다른 회사에 비해 내가 합류할 회사는 나쁘지 않게 견뎌 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회사의 경제 사정보다 나에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내 비자 발급이다. 상술했듯이 나의 배우자(H-4) 비자는 오는 7월 8일에 만료될 예정인데, 고용계약서에 서명을 하기도 전인 3월 14일에 시작했던 내 O-1 비자의 준비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이미 영주권자로의 신분 전환(Adjustment of Status, AOS) 신청을 해 둔 상태라 미국을 떠나야 할 일은 생기지 않지만, 만약 현재 신분이 완료되면 O-1으로 신분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서, 하릴없이 손가락만 빨며 EAD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음 글에 이민 로펌 Fragomen과 나의 지리했던 씨름을 한 번 정리해 볼까 한다. 일해라 Frago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