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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강 Oct 18. 2024

운이 좋았던 해외생활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2)

내 목표는 자존감이고 해외 취업은 내 목표에 다가가는 수단이다.   

  

 학교 입학 후 술만 마시던 놈은 어느덧 대학교 3학년, 26살이 됐다. 그제야 진로에 대해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대기업이나, 해외에서 일할 거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놈이다! 나를 무시하지 마라! 그렇게 내 목표이자 소박한 소원이 만들어졌다.     


 그 후론 술자리에서 입버릇처럼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운명처럼 외국에서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말레이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학교 동기의 추천을 받았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작은 중소기업이다. 숙소를 제공해준다는 말에 월급도 모르는 채로 일단 가겠다는 말부터 먼저 던져 놨다.     


 하지만, 가겠단 말을 던졌지만, 낮은 초봉과 언어 소통의 두려움에 머리가 복잡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아버지와 막걸리는 한잔 마시며 해외에 취업할 기회가 생겼는데 확신이 없음을 털어놨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별 반응 없이 “하고 싶으면 해. 가서 오고 싶으면 오고,” 라고 하며 말씀을 아끼셨다.     


 하지만 속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막걸리를 거나하게 드시고 마당에서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불행히도 좁은 마당에 얇은 벽으로 지어진 집이라, 내 방에서 아버지의 혀 꼬인 소리가 너무나 잘 들렸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외국으로 취업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고생을 많이 할 것 같다는 푸념을 내뱉으신다. 그런데 항상 내 이야기만 나오면 비난하고 비꼬던 할머니는 그날따라 별다른 말이 없었다. 순간 몇 해 전 사촌 누나가 독일로 유학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앞에선 비꼬았지만, 뒤에선 부러워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옛날 사람 중 몇몇은 외국에 나간다고 하면 대단한 사람으로 본다는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다.

     

 가고 싶음과 두려움을 올려 정확히 수평이 맞춰진 저울에 할머니에게 보란 듯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가 저울 위에 올라갔다. 할머니가 차별했던 기억은 수평을 이루던 저울을 휘청거리며 한쪽으로 쏠리게 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에 출근했다.  


   


 쉽게 온 것 쉽게 사라진다 했던가? 취업이 쉽다 보니 퇴사도 쉬웠다. 아니. 쉽게 그만둔 건 아니다. 나름의 합당한 사유가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 직전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거래처 행사에 필요한 소주 한 박스와 막걸리 한 박스를 가져오라는 명령이었다. 저녁 7시쯤 회사차를 운전해 연회장에 도착하니 이미 현장은 마시고 죽자는 분위기로 변해있었다. 술 박스만 전달하고 가려는데, 취기가 올라온 거래처 높은 분이 술을 권한다. 옆에 있는 팀장이 손으로 툭 나를 친다. 마시라는 신호다. 어쩔 수 없이 분위기를 뛰우기 위해 술을 마셨다. 이날 난 처음으로 음주운전을 했다.     


 당시에 말레이시아에 대리운전도 없고, 택시는 악명이 자자했다. 그랩 이나 우버 같은 공유 자동차 앱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자연스레 음주운전을 해서 집에 가는 분위기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 취해서 차를 몰고 가는데, 사회초년생이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유세를 떨 순 없었다. 처음엔 거북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 회식에서 필름이 깜박깜박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집이 그리 멀지 않기에 차를 회식 장소에 놔두고 집에는 걸어가려는데, 팀장이 차를 도난당할 수 있으니 꼭 타고 가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알겠다는 대답을 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술에 잔뜩 취해 차를 몰고 가던 중 혼자서 보도블록 턱을 박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 앞바퀴 휠이 구겨지고 클러치(수동차량)가 망가졌다. 일단 차를 안전한 곳으로 빼놓는다고 갓길에 세워두고 차를 살피려 했다. 이때부터 장르가 액션 영화로 바뀐다.     


 갓길에 대 놓은 차를 보고 접근한 강도와 몸싸움을 벌이고, 이 모습을 본 주변 사람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과 마주하고 경찰이 내 가방을 훔쳐갔다. 도로 한가운데 땡전 한 푼도 없고 핸드폰도 없이 앉아있자, 지나가던 렉카가 딜을 건다. 이후 렉카 기사와 월요일에 돈을 주기로 거래를 하고, 차를 숙소 앞에 대 놓은 후 차 뒷좌석에 숨겨뒀던 노트북을 꺼냈다. 그러자 렉카 기사는 돈 대신에 노트북을 달라며 말을 바꿨다. 말다툼은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살면서 하나만 겪어도 평생 술자리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사건들을 단 하룻밤 사이에 겪은 것이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전날 밤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난 운이 좋았다.


 강도가 쇠몽둥이가 아닌 칼을 들고 있었더라면, 경찰이 부패 경찰이 아니라 정의로웠다면, 렉카 기사가 싸움을 잘했더라면 난 멀쩡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망설임과 고민 끝에 귀국을 결심하고 사표를 썼다. 언젠가는 마주할 죽음이지만, 음주운전으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 첫 번째 해외 취업은 취업도 빨랐고, 퇴사도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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