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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강 Nov 04. 2024

보통의 평범한 하루를 위해

거짓된 미소.

 잇몸을 보이며 순박하게 웃는 모습에 차가웠던 첫인상이 준 선입견이 풀린다. 그때부터 벌주에 걸리지 않아도 술을 마시던 나와 벌주에 걸리면 콜라를 마시던 남폰은 대화를 시작했다. 

  

"무슨 일 해?"

"마사지."     


 아무래도 과거 Asok에서 본 충격적인 장면에 직업이 제일 궁금했다. 하지만 직업을 물어보자마자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도 당연히 따라올 질문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빠는 무슨 일 해?“     


 그렇게 뒤따라 들어오는 질문에 머리가 멍해진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처럼 몸이 굳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대답한다.     


"... 쉬어, 그냥 쉬어."

"왜?"

"얼마 전에 식당이 망했어."

"아,"


 어쩐 이유에서 인지 여자의 표정에서 실망감이 보인다. 보통 안타까워하는데 왜 실망을 하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자는 곧장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얼마나 있어?"

"한 달 정도."

"어디에 살아?"

"온눗에 있는 룸피니 콘도에 살아."

"어? 나도 그 근처 사는데, 골든 튤립 알아? 거기서 룸메이트랑 같이 살아"

"어 본 적 있어. 그 룸피니 맞은편에 있는 거 맞지?.“     


 오래되고 낡은 룸피니 콘도는 수영장 말고는 내세울 만한 매력이 없다. 하지만 맞은 편 골든 튤립 콘도는 신축이라 깔끔하고 세련됐다. 이웃 주민이란 공통점을 찾은 우리는 술잔과 콜라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동생은 종업원을 불러 계산을 한다.     


"형 신디가 클럽 가자는데 같이 가자."

"됐어. 괜찮아.“


술도 적당히 마셔 잠이 오고, 클럽 가서 춤출 것도 아니다. 여기서 집에 가는 게 맞다.     


"아 또 뭐가 괜찮아야. 분위기 파투낼 거야?"     


 하긴 내가 지금 여기서 빠지면 여자 둘에 남자 하나라 분위기가 난감해진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마지 못해 동생의 뒤를 따른다.     


"형 근데 옛날에 클럽 좋아하지 않았어?"

"옛날에는."

"지금은 왜 안 갈라 그래?"

"피곤하기도 하고 가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안 가본 지도 오래됐고."

"아, 진짜 짜증 나게 하네, 형 오늘 각이라니까? 좀 텐션좀 올리고! 어? 퐈이팅있게 으잉!"     


 동생의 오버 섞인 행동에 실소를 지으며 따라간다. 동생이 나를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 모습이 약간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거짓된 연기일지라도 동생이 하자는 대로 해야지. 동생이 신디를 데리고 먼저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동생을 따라 클럽에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남폰이 내 손목을 잡아챈다.     


"할 이야기가 있어…. 나 사실 워킹걸이야."

"그래 일하니까 워킹걸이겠지,"

"아니, 돈 받고 남자 만나는 여자라고."

"아…. 남자 만나는 걸 일로 하는 거구나. 마사지사라고 하지 않았어?"

"나랑 자려면 돈을 내야 해. 그리고 나랑 잘 생각이 없으면 난 지금 다른 손님 찾으러 가봐야 할 것 같아.”     


 남폰의 말은 약간 충격이었다. 마사지사란 말과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외모에 몸 파는 여자란 생각을 전혀 못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있긴 했다. 너무 좋은 집에 살고 있었다. 룸메이트가 있다곤 하지만, 골든 튤립은 적어도 룸피니 콘도보다 월세가 배는 비쌀 것이다. 대충 계산해도 최소 월 80만 원인데, 일반 마사지사가 감당할 수 있는 월세가 아니다.      


“미안한데, 돈도 없지만, 돈 주고 여자랑 잘 생각은 더 없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남폰은 매몰차게 돌아 등을 보이며 떠난다. 마치 여태껏 시간을 낭비한 것에 화간 난 것처럼 보인다. 어이가 없다. 달콤한 말을 한 적 없고, 손을 잡은 적도 없다. 그저 평범한 대화만 나눴을 뿐이다. 왜 저런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하려 애써봐도 이해가 안 되니, 사람이 벙쩌진다.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보고 뭐 해? 여자는?”     


 벙쪄있던 시간이 길었나 보다. 클럽에 들어갔던 동생과 신디가 나를 찾으러 밖으로 나왔다.      


“아 미안 문자 온 거 몰랐다. 워킹걸이래, 돈 줄 거 아니면 손님 찾으러 간다길래 돈 없다고 했어.”

“뭐? 헤이 신디. 너랑 같이 일한다는 동생 워킹걸이야?”     


 동생은 미안함 때문인지 목소리에 화가 잔뜩 담겨있다. 마치 심문하듯 신디를 몰아붙인다. 신디는 억울하다는 듯 손까지 휘 저의며 결백을 주장한다.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가 일 끝나고 뭘 하는지 자신은 알 수가 없다며 변명한다. 하지만 동생의 눈에는 의심과 분노란 단어가 빼곡히 박혀있다. 좀 전까지 광기 어린 성욕이 번들거리던 동생의 눈은 사라졌다.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도저히 클럽을 들어갈 분위기가 아니다. 신디는 화난 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맥주나 한잔 더하러 가자 말한다.     


“그럼 맥주나 한잔 더하러 가는 거 어때요?”     


 동생은 신디의 말을 무시하고 담배를 입에 문다. 동생도 신디가 담배피는 남자를 싫어한다는 말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단 거짓말을 했기에 둘은 쌍방과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분위기가 변해버렸다. 미안하다. 바로 전에까지 좋았던 분위기가 나 때문에 망친 것 같다. 이대로 마무리하면 동생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다. 조심스레 말해본다.     


“맥주 마시러. 우리 집 가자. 집에 맥주는 많다.”

"형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그럼 너 저 친구랑 따로 시간 보낼 거야?"

“아마 그냥 집 갈 것 같은데?”

"나 때문에 흥 깨진 거 같으니까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라도 해봐. 뭐든 간에 마무리는 짓고 가야지 아쉬움이 없지. 가자."

"그럼, 안주는 신디가 사."     


 내 말이 합리적으로 들린 것인지 아니면 의심과 분노란 글자 뒤에 숨어있는 성욕이 설득 한 것인지 동생은 너무나 쉽게 화를 가라앉혔다. 그렇게 어영부영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하자, 신디는 집 앞에 보이는 노점에 들러 여러 개의 음식을 사 온다. 과일이나 솜땀처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었고, 놈칫 같이 이름을 처음 들어본 음식들도 있었다.      


 집을 치우고 나왔나 아니면 엉망인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보니 벌써 집이다. 더러우면 치우고 놀고, 깨끗하면 그냥 놀면 된다. 역시 깨끗할 리가 없었다. 3일 만에 쌓여버린 빈 맥주병과 빈 맥주 상자가 보인다.     


"형, 내가 태국에 5년 넘게 왔다 갔다 하면서 집에 맥주를 박스로 사서 마시는 사람은 처음 본다."

"맥주를 슈퍼에서 사니깐 비싸더라. 그래서 도매상가서 몇 박스 주문했어."

“좀 살만한가 봐? 도매상 찾아서 돌아다니는 거 보니까?”

"그런가? 살만한 건가."

대충 빈 맥주병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 놓고 테이블 위에 안주와 맥주를 올려놓는다.

"형 잔은?"

"맥주는 원래 병에 입대고 마시는 거야."

"아는데, 그건 작은 병이겠지, 이런 무식하게 큰 병이 아니라."

"수영장이 넓다고 수영복 안 입는 건 아니잖아?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는다. 병맥주도 작든 크든 입대고 마신다. 같은 원리야."

"오~ 헛소리 하는 거 보니 여행 온 효과가 있긴 하는가 본데? 됐고 잔이나 내놔봐."

"오빠 잔 찾았어."     


 나와 동생이 쓸데없는 소리를 늘여 놓는 사이, 신디가 찬장에서 잔을 꺼내 왔다. 맥주를 마시며 조곤조곤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말로만 대화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영어로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신디는 영어를 잘한다. 의아함에 대학교를 나왔냐 물으니 웃으며, 26살이고 마사지사로 7년째 일하고 있다는 답변을 한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엄마와 함께 마사지사로 일하며 영어를 익혔으며, 엄마는 말레이시아에서 호주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이야기까지 늘어놓는다. 물론 결혼했다는 단어를 꺼내며 동생을 끈적하게 쳐다보는 게 심상치 않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어가자 술자리에서 주량이 가장 약한 동생 놈이 제일 먼저 고개를 휘청거린다.     


"야 들어가서 자."

"어, 그래 좀 자야겠다. 신디는?"

"좀 더 마시고. 잘게."

"어 그럼, 나 먼저 잔다.“     


 동생은 방 안에 들어가 낡은 침대에 눕는다. 낡은 침대에서 울리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온다. 심지어 코 고는 소리도 방문을 새어 나온다. 방음이 전혀 안 되는 방에 약간 민망하다. 이럴 땐 짠 이 최고다. 잠이 부족한 동생이 코를 골며 자는 것처럼. 술이 부족한 우리는 짠을 외치며 술을 마신다.     


 신디는 마사지 가게 진상 손님 이야기부터 시작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꺼낸다. 말레이시아 생활, 마사지사가 된 계기,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까지.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입이 써진다. 별 생각 없이 클럽이나 다니는 어린 여자처럼 보였던 마사지사도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이 있는데,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쓴웃음에 잔을 비운다. 퐁 소리를 내며 병을 딴다.     


 언제부턴가 짠도 없이 맥주를 물처럼 마신다. 신디의 혀는 꼬부라져 가고 나는 눈이 서서히 풀려간다. 술기운도 문제고 잘 시간이 지난 것도 문제다. 벌써 새벽 4시다.     


"집에 안가? 출근해야지."

"오늘 쉴 거에요."

"저는 좀 자야 할 거 같은데…."

"아 그러면 알겠어요."

 

 티 나게 눈치를 주자 신디는 그제야 자리에서 휘청거리며 일어나 테이블 정리를 시작한다. 신디가 빈 병을 치우는 동안 난 음식을 정리한다. 음식을 그냥 놔두면 벌레가 꼬이니 봉투에 담아 꽉 묶어 놓는다. 그런데 술에 많이 취했는지 음식을 정리하다가 접시가 아닌 음식을 잡아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실소를 지으며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물을 틀고 손을 씻고 비누칠하고 손을 한 번 더 씻었다, 시간으로 치면 1~2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런데,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신디가 사라졌다. 집이 좁아 화장실 문을 나서면 집안 전체가 보인다. 그 어디에도 없다. 잠깐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혹시 나 하는 생각에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지갑을 확인해 본다. 돈은 그대로 있다. 괜한 의심을 했다. 그렇다면 신디가 급하게 나간건가? 그때 침대가 삐그덕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몰래 방문을 열어보니 신디가 동생 옆에 누워있다. 남의 집에서 뭐 하는 짓거리냐 하는 말이 목구멍을 삐져나오려 했지만, ‘그래 둘이 좋은 시간 보내라 난 소파에서 잘란다.’ 하는 생각으로 말을 참았다. 그런데 혹시나 신디가 동생 지갑을 훔치려고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쩌지 하는 생각에 잠시 지켜보기로했다. 별 문제 없으면 문을 닫으면 된다.     


 침대에 누운 신디는 꼼지락거리며 동생에게 다가간다. 신디의 손이 동생의 가슴팍에 올려지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그렇게 문을 닫으려 했는데, 신디의 잘록한 허리가 보인다. 얇은 이불에 가려져 있지만, 굴곡짐은 가려지지 않는다. 눈을 떼고 문을 닫아야 하는데, 쉽사리 눈에 떨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눈을 돌리니 허리 아래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골반이 보인다. 하,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번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이 움직여 가슴을 쳐다본다. 옆으로 누워서인지 아니면 큰 속옷을 입어서인지, 그녀의 가슴과 속옷 사이에 틈이 보였고 그 틈으로 검붉게 빛나고 있는 무언가가 살며시 보이려 함이다. 눈을 깜박이고 고개가 조금씩 앞으로 쏠린다. 하지만, 머릿속 이성은 눈을 떼고 문을 닫아야 함을 안다.     


 최후의 수단으로 육군 훈련소에서 배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찾고 반야심경을 외운다. 안타깝게도 교회에선 초코파이 대신 몽쉘을 주는 바람에 찬송가를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슬며시 시선을 올려 신디의 얼굴을 쳐다보니 신디가 살며시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등에 식은땀이 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빨리 문을 닫으려 하는데, 신디가 씩 하며 웃는 모습이 보인다. 입술에 신비함이 걸려 있어 문을 닫으려는 내 몸을 굳게 만든다.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렇게 신디의 붉은 입술을 바라보는 사이 신디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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