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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강 Nov 06. 2024

보통의 평범한 하루를 위해

보통의 하루.

 신디의 손은 동생의 몸을 더듬기 시작하지만, 눈은 날 바라보고 있다. 묘한 눈웃음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눈을 뗄 수가 없다. 가슴팍에 있던 손은 배를 지나 동생의 바지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런데도 신디는 나를 쳐다본다. 손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동생을 자극하는데, 별로 반응이 없는지 손이 점점 더 빨라진다. 결국, 아무런 반응이 없는지 손을 동생의 바지에서 빼낸다. 그리곤 나를 보며 입술을 혀로 가볍게 핥는가. 마치 “너는 어때?” 하며 묻는 듯한 표정이다.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못 볼 꼴을 본 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문을 닫았다. 모든 건 다 술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쓰레기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 놓은 후 불을 끄고 소파 위에 눕는다. 방금 훔쳐본 행동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론 혹시나 저 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아니면 뭔가에 대한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방안에서 두 명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허무함이 밀려오며 현실을 깨닫는다. 나는 졸지에 안방까지 뺏긴 간이고 쓸개고 없는 무장 공자가 됐다.     


 다음 날 아침 10시쯤 방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지 신경이 예민했다.     


“형은 왜 여기 있고 쟤는 왜 저기 있어?”

“그러게.”     


 화장실을 다녀온 동생은 자리를 정리하려고 방 안에서 자는 신디를 깨운다. 신디는 아기처럼 칭얼거리며 동생의 목에 팔을 둘렀지만, 동생은 손을 뿌리치며 강아지를 교육하듯 강한 어조로 일어나를 외친다. 입이 삐죽 튀어나온 신디는 자리에서 휘청거리며 일어나 동생의 허리를 감싼다.     


“형 미안, 갈게. 나중에 연락할게,”

“잘 가.”     


 문밖을 빠져나가는 동생과 신디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모습에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술이 덜 깬 모양이다. 쓰레기나 버리고 수영이나 하러 가야겠다.     


 그 뒤로 동생과 가끔 연락은 했지만, 신디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 한쪽 편에 신디와 동생이 그날 잤을까? 아니면 지금도 만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동생의 귀국 날이 다가왔다. 동생은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호텔 체크아웃 후 우리 집에 짐을 맡겨놓고 시간을 보낸 뒤 공항으로 갈 예정이다.     


 연락은 했어도 얼굴은 오랜만에 보는 동생은 무척 달라져 있었다. 오랫동안 술에 재워 놓은 고기처럼 사람이 쭈글쭈글해 보이고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긴다.     


“괜찮냐? 신디랑 술 마셨어?”

“신디? 누군데?”

“그때 같이 술 마시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간 애.”

“아~ 아니. 그날 각자 집에 가고 연락 차단 박았어.”

“왜?”

“그냥? 좀 짜증 나서?”

“그럼 어제는 누구랑 술 마셨냐?”

“지난번에 클럽 가서 번호 딴 애랑 술 마셨지. 술을 미친 듯이 마시더라. 와, 양주 두 병 시켰는데, 싹 다 비우고 왔어. 술 더 마시다가 죽을 거 같아서 떡도 안치고 도망쳤잖아.”

“아쉽지는 않고?”

“여행 오기 전에 단수 안내받은 집처럼 온갖 통이란 통에 물을 잔뜩 받아놨다고 치면, 지금은 단수된 상태에서 수도꼭지를 튼 거마냥 한 방울 나올까 말까요. 아쉬우면 그게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지.”

“고생했네.”

“형은 고생 좀 했어?”

“낮에 수영을 너무 많이 해서 등껍질이 벗겨지긴 했어.”

“어후 독거노인. 형 정 안되면 만남 어플이라도 이라도 다운받아서 돌려봐. 대부분 워킹걸이긴 한데, 가끔 일반인도 섞여 있으니까. 잘 찾아봐.”

“그래 참고만 할 께. 공항은 언제 가게?”

“밥 먹고 마사지 받고 갈려고.”

“밥은 뭐 먹게?”

“똠얌꿍 먹으러 가자.”

“좋네! 가자.”     


 첫날 왔었던 똠얌꿍 집에 다시 왔다. 이번엔 라면 한 그릇과 렝쎕만 시켜 나눠 먹는다. 익숙하지만 매번 먹을 때마다 새로운 똠얌의 맛에 넋을 잃고 먹는다. 밥을 먹은 후 동생의 손에 이끌려 마사지 가게에서 발 마사지를 받는다. 남자 둘이서 할 말이 그리 많지가 않다. 동생은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코를 골며, 졸다 깨다를 반복한다.     


“형 그거 알아?”     

방금까지 코를 골던 동생의 뜬금없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본다.     

“뭘?”     

“형 여행 오기 전보다 훨씬 좋아진 거? 남은 시간 집에 처박혀 있지만 말고 좀 싸돌아다니면서 알차게 보내. 틈틈이 만남 앱도 몇 개 돌리고.”     

“내가 변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밥 먹자고 하면 그래하고 따라만 오던 양반이. 오늘은 밥 먹자니깐 뭐 먹을지 물어보네. 많이 변했어. 좋은 쪽으로.”

“그래? 좋은 건가.”     


 할 말을 마친 동생은 다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단잠에 빠진다. 코골이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지난 10일을 돌이켜 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술 마시고 수영하고 밥 사 먹는 평범한 시간을 보낸 게 끝이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아, 어쩌면 평범한 생활을 했기에 내가 변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실패자란 굴레에 갇힌 나는, 나를 숨기고 보호하기 위해 내 속에 우울함을 모아 큰 외투를 만들었다. 밖에서 안이 비치지 않을 만큼 두꺼워야 하고, 나를 가릴 만큼 큰 외투를 만들기 위해선 내가 갖고 있던 우울함으론 부족했다. 더 많은 우울함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울함을 얻는 방법은 너무나 쉬웠다. 평범한 보다 못한 삶을 살면 된다.      


 지난 몇 달 동안 패배 의식에 찌들어 외출도 거의 안 하고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 밤낮이 뒤바뀌길 수십 번. 날짜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유일한 외출이라곤 집 앞 마트에서 소주를 사는 것이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밖에서 내 돈 주고 밥을 사 먹은 기억은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망쳐왔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우울함은 나를 숨겨주고 지켜줄 외투가 될 수 없는 재질이다. 아무리 우울함을 꼼꼼하게 묶어놔도, 따뜻한 바람 한 번이면 사르륵 녹아 없어져 버린다. 찬바람이 불면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도망치기 바빴다. 그렇기에 따뜻한 말 한마디도 내게는 상처가 됐고, 차가운 말 한마디에는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식당은 잘 되고? 힘내라.”

“장사 쉽게 보드만, 내 니 그럴 줄 알았다. 앞으로 우얄끼고? 힘들면 내캉 같이 일하든가.”     


친구들이 내미는 손은 내게 폭력이었다.     


“아들, 장사 힘들지?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이야기해.”     


부모님의 배려는 내게 죄책감을 심어줬다.     


 주변에서 힘내란 말은 아무런 힘이 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너무 먼 길을 걸어왔고 돌아갈 힘이 없었다. 그저 무너지면 무너진 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도 모르게 무너진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워주고 있었던 건 특별한 말이나 마법의 묘약이 아닌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였다. 아침에 눈 뜨면 뭘 할지 고민하는 삶. 식당에 들어가며 ’안녕하세요’를 외치는 삶. 피곤한 하루의 끝마침으로 맥주 한잔을 마시는 삶. 이런 평범한 것들이 모여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동생이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 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금 맥없이 마사지를 받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마사지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후덥지근한 바람과 오토바이 배기통에서 나온 검은 매연이 상쾌하게 느껴진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오늘부터 보통의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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