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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강 Nov 11. 2024

보통의 하루를 위해

망가진 건 자존감 만이 아니다.

 보통 하루의 시작을 아침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하루의 시작은 밤에 잘 자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보통의 하루는 저녁 11시 시작된다. 11시가 되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야 하는데, 아니 불은 껐다. 눕기도 누웠다. 하지만,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지지 않는다. 연락 올 곳도 없고, 연락할 곳도 없는데 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침대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거실에 두고 온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감고 내일 할 일을 생각해본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수영 한 후 아침밥을 사 먹고 장을 보러 다녀온 뒤, 책을 읽을 예정이다. 그저 한량처럼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여도, 보통의 주말이라고 생각하면 꽤 바쁘게 보내는 축에 속할 것이다. 생각의 흐름은 자유롭게 흐른다. 무슨 책을 읽을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아침은 뭐 먹지? 장을 봐서 맛있는 거 만들어 먹을까. 아니다. 분위기 좋은 펍에가서 맥주나 한잔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생각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렇게 생각이 돌고 돌아 마침내 지금 몇 시지 하는 현실적인 상황에 도착했다. 11시 반은 넘었을 것 같고 12시인가? 아니면 설마 1시가 넘었으려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며칠 전에 있었던 불쾌했던 술자리가 떠오른다.     

 '아, 그때 화를 냈어야 했나. 아니면 따지고 들었어야 했다. 됐다 이미 지난 일. 잊자. 그런데 동생 말대로 변하고 있나? 그래 이런 의문을 갖는 것부터가 번한 거지. 잘하고 있는 거야. 참 고마운 동생이야. 장사만 잘 됐어도 맛있는 거 많이 사줬을 텐데. 나중에 한국 갈 때 선물이라도 사가야지. 선물은 뭐 사주지?'


 온갖 쓸데없는 잡생각이 머릿속에서 자리를 차지했다. 원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정시 취침이라는 녀석이 있을 곳이 없어 머릿속을 떠나 버렸다. 큰일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낸다. 큰 병 두 개나 비어버린 후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맥주가 만들어준 활발한 이뇨 작용 덕분에 새벽에 깨어나야만 했다.     

 

아침 7시 [배달의 민족 주문~] 아침 알람이 울린다. 죽은 듯이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식당 사장에겐 저 소리가 군대에서 들었던 나팔 소리보다 크게 들린다. 새벽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머리가 무겁고 몸이 찌뿌둥하다. 그래도 아침에 이렇게 일어난 게 어디냐며 최면을 건다. 일단 수영장에 가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가 잠을 쫓아내야겠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큰 수건과 물안경을 들고 수영장으로 간다.     


 야외 수영장에는 밤사이 떨어진 나뭇잎 여러 장과 죽어있는 벌레들이 둥둥 떠 있다. 이른 시간이라 수영장을 청소하는 직원이 출근하지 않은 모양이다. 물이 더러워보여 뛰어들까 말까를 잠시 고민하다 과감히 물속 풍덩 뛰어든다. 나뭇잎과 벌레는 밤새 수영장 물에 씻기라도 했지, 나는 밤새 후덥지근한 방에서 땀을 흘렸다. 나뭇잎과 내 몸 중 뭐가 더 더러울지는 비교해 볼 필요도 없다. 밤새 차가워진 물이 내 몸 구석구석을 휘감으며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운다. 물속에서 천천히 그 어떤 얽매임도 없이 자유롭게 팔다리를 휘저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느리지만 나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이다.     


 아침 9시를 바라보는 시간, 콘도 입구에 모여 있는 노점상으로 향한다. 콘도 앞에 식당이 없어서 그런지, 아침과 저녁에 노점상들이 콘도 앞에 진을 친다. 매번 바가지를 쓸까 봐, 먹고 배앓이를 할까 봐 망설이다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도전해 본다.     


 노점상에는 사람들이 한차례 몰아쳤다가 빠져서 그런지, 전시된 음식이 많이 빠져 있었고, 일부 노점상은 가게를 닫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밥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줄이 긴 곳이 맛집이란 생각에 줄을 서보려는데 한줄기 땀이 등을 타고 지나간다. 덥다. 더운 날씨에 오랫동안 서 있을 자신이 없다.     


 제일 짧은 줄에 선다. 밥과 반찬을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곳으로 봉지당 20밧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다. 신기한 건 야채도 한 봉지에 20밧 고기도 한 봉지에 20밧이란 점이다. 살짝 고민하다 어차피 봐도 뭐가 뭔지 모른단 생각에 주인아저씨의 추천을 받아 음식을 골랐다. 맛은 괜찮았다.     


 운동도 했고 샤워도 하고 맛있는 밥도 배불리 맛있게 먹었다. 핸드폰으로 책이나 좀 읽어볼까 하는데 갑자기 잠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어…. 어.어……. 눈이 감겼다.     


 번쩍! 하고 눈이 떠진다. 황급히 핸드폰을 열어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다. 소파에서 잠들어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하니 너무나 불편하다. 으…. 으…. 하는 좀비 같은 신음을 내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영할 시간은 있다. 수건과 물안경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수영이 끝나고 집에 오니 저녁 5시, 저녁을 사 오니 6시, 밥 먹고 치우고 나니 7시. 책 좀 읽고 영상 좀 보다 보니 저녁 10시다. 11시 되면 자야 하는데, 낮잠을 너무 많이 잤다. 결국, 오늘도 맥주병을 잡는다. 하지만 2병이나 마셨는데 잠은 오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시계는 벌써 12시를 가리킨다. 자야 하는데, 눈이 여전히 말똥말똥하다. 후, 망했다. 결국, 5병을 비우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배달의 민족 주문~] 알람이 들린다. 아마도 아침 7시겠지. 5분만 더 잘까 말까 고민하는데,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잠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눈을 뜬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10시다. 한숨이 나온다. 숙취로 인해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난다. 햇빛이 더 뜨거워지기 전 수영장으로 향한다. 수영을 빼먹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보통의 하루가 쉽지 않다. 그동안 망가진 건 자존감만이 아닌 듯하다. 정신상태도 썩어버렸다. 정신 바짝 차리고 몸에 밴 게으름을 몰아내야한다.


 그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린다. 확인해보니 뜬금없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문자가 와있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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