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저 내가 원하는 건

악마가 웃는 식탁 ;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뒤에는 뭐가 있을까?

by 거북이

어느 마을에 우아한 귀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결코 탐욕스럽지 않고 절제하며 산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언제나 아주 조금씩만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옥의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조카 웜우드에게 편지를 쓰며 낄낄거렸습니다.


“많이 먹는 것만이 탐식이 아니란다. 진짜 탐식은 '양'이 아니라 '맛'과 '까다로움' 그럴 수 없는 상황인데도 ‘원하는 것을 먹고 싶어하는 마음’에 숨어 있지. 저것 봐라. 피곤해 보이는 식당 종업원에게 음식이 많이 담아졌다고 다시 조금만 담아 오라고 하는 걸 보렴. 단지 자신의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말이다”

부인은 모임에 초대받을 때마다 새침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곤 했습니다. “어머나, 됐어요. 제가 원하는 건 그저 홍차 한 잔뿐이에요. 너무 진하지도, 너무 연하지도 않게 말이죠. 그리고 아주아주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를 아주 작은 조각으로 하나만 곁들여 주세요”


그녀는 사람들이 왜 자신의 입맛을 까다롭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양도 적고 그만큼 값비싼 것을 먹지도 않은데 말이지요. 하지만 그녀의 '사소한 요구'를 맞추기 위해 요리사들은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부인은 아들앞에서 투덜댔습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없어. 내가 요구하는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요리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정말 다들 마음에 안들어”


사실 요즘 사람들이 변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변한 것이었죠. 젊은 시절엔 친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음식 맛이 조금 부족해도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남은 즐거움은 오직 '완벽한 토스트 한 조각'뿐. 그 토스트에는 옛날 젊은 시절 친구들과 맛보았던 즐거운 추억이 깃든 음식맛이 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요리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만들어도 그녀의 요구를 들어 줄 수는 없을 테지요.


이러니 그녀의 식탁에는 더 이상 감사가 없습니다. 또,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도 될 수 없습니다. 결코 재현할 수 없는 기준에 미달하는 모든 것을 비난하고 짜증 내는 자리가 될 뿐이지요.

“웜우드야, 부인이 계속 ‘그저 내가 원하는 건’ 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게 만들어라. 그 습관에 빠져 자기를 결코 돌아보지 못할테지. 날마다 실망하다 보면 짜증도 늘어날거고”


부인의 아들, 즉 웜우드가 맡은 '환자' 또한 위험합니다. 웜우드는 아들에게 속삭였습니다.


"너는 엄마처럼 까다롭게 굴지 마. 대신, '음식 좀 아는 남자'가 되는 거야. 스테이크를 제대로 굽는 맛집을 알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으스대며 자랑하기에도 좋지. 혹여 식당에서 네가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와인이 비치되어 있지 않으면 ‘스테이크와 찰떡궁합인 그 와인이 왜 없느냐’ 며 와인 전문가 행세를 하게 하렴. 이때 약간의 짜증도 곁들이면 더 효과적이란다“


머잖아 허영심으로 시작된 '미식가'의 모습은 어느덧 습관이 되고, 이제 자신이 원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충족되지 않으면 자비도, 정의도, 순종도 모두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스크루테이프는 웜우드에게 마지막 비법을 전수합니다.


"인간이 방탕한 행동을 했을 때, 결코 그가 어제 무엇을 어떻게 먹고 마셨는지 돌아보게 하지 마라. 그저 자기가 교만했고 믿음이 부족한 것 아니었을까? 라고 추상적으로 거창하게 생각하게 해.

사실은 어제 먹은 과한 음식, 자극적인 식단, 혹은 몸을 돌보지 않은 습관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자제력이 약해진 것뿐인데 말이야. 절대 환자가 ‘어제 술과 기름진 배달 음식을 과도하게 먹은 탓에 오늘 몸과 마음이 나태해졌구나’라고 깨닫게 해서는 안된다.

고상하게 교만과 신앙심 부족을 운운할 때 정작 아주 쉬운 해결책(야식안하기, 소식하기, 자극적인 음식 피하기)을 놓치고 유혹에 빠지게 만들 수 있지"


스크루테이프와 웜우드는 인간들이 과도하게 몸을 움직여서 피곤하게 만들면 성적 충동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을 믿게 하며 비웃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몸을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식탁에서 부리는 '사소한 고집'과 '자기 입맛대로 먹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짜 '가벼운 홍차 한 잔'일까요? 아니면 내 기분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완벽한 대접'일까요?


내가 원하는 건.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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