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는 거짓말. 어쩌면 사랑은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수연에게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오래 만나온 준우와 결혼을 진짜 해야 하는 것인지. 예전처럼 설레는 마음도 사라지고 말았고 그렇다고 준우의 집안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평생 맞벌이하다가 누구 한사람은 지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스크루테이프는 조카 웜우드에게 말했습니다.
“최근 수연이에게 생긴 마음의 변화를 보고 있느냐? 친구들중 가장 먼저 결혼한다고 선언 해놓고 지금 흔들리고 있지. 우리에게 아주 좋은 기회다.
우리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을 부추겨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이야말로 결혼의 근거라고 속여 왔지. 그러니 이 감정이 사라지면 결혼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거라고 인간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지.
오늘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따분하기 그지 없는, 그렇지만 필수 기술인 <인간의 성(性) 그리고 사랑>에 대해 알려주겠다”
1. 원수의 좁은 문
“원수는 인간들에게 ‘철저한 금욕’, 아니면 ‘일부일처제’ 라는 참으로 가혹한 선택지를 주었지”
스크루테이프가 진짜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습니다.
“우리는 철저한 금욕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일부일처제가 결코 인간들에게 쉽지 않도록 지난 몇 세기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시인과 소설가들을 부추겨 '열정적인 사랑에 대해 인간들이 꿈꾸게 한 것도 그 노력의 결실중 하나이지. 달콤한 사랑의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어야 올바르고 정상인거라고. 그러니 이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2. 지옥의 원칙
“지옥의 원칙은 아주 명쾌하다. <하나>는 <다른 하나>와 철저히 별개라는 것! 나에게 좋은 것만이 좋은 것이고 너에게 좋은 것은 불쾌하지. 나의 이득은 누군가의 잃음 혹은 빼앗김이다. 자아가 확장되려면 다른 것을 밀어내거나 흡수해야 한다. 짐승에게 흡수란 ‘잡아먹는 것’이고, 우리 악마들에게 ‘흡수’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의지와 자유를 빨아먹는 것이다. 즉,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뜻이지”
“반면, 원수의 철학은 모순덩어리이지. 그 작자는 만물이 여러 개인 동시에 하나라고 주장하지. 심지어 자신도 하나이면서 셋이라고 말한다. 유기체가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을 원수는 사랑이라고 부르지. 하, 어처구니 없지! 그것들은 경쟁이라는 자연의 운명을 거스르는 음란한 발명품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원수가 인간의 성(性)을 번식의 수단으로 삼은 것 좀 봐라. 자기 목적을 달성하면 거미 신부가 거미 신랑을 잡아먹는 방식으로 놔두었더라면 우리에게 아주 유용했을 텐데 말이야. 원수는 인간 번식의 욕망 사이에 쓸데없이 사랑을 끼워 넣었다구”
3. 원수의 발명품; 유기체
“그뿐만이 아니지. 자식은 부모에게 의존하게 하고, 부모에게는 부양 욕구를 줌으로써 '가족'이라는 끔찍하고도 위험한 유기체를 만들어냈다. 이 유기체는 가족 구성원 각자가 독자적이면서도 동시에 책임감 있게 연합하려고 노력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어떻게든 원수의 '사랑'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비열한 책략이지”
4. 우리들의 업적 ; 1)주객전도.
“이제, 진짜 웃기는 부분을 알려주겠다”
스크루테이프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원수는 결혼한 부부를 '한 몸'이라고 불렀어. 한 몸이 되어 가족이라는 유기체도 만들 수 있게 되었지. 원수는 인간들이 한몸이라는 것을 통해 사랑과 책임을 배워가길 바랐지. 또, 바울이란 작자는 한몸을, 단순히 부부만을 한정짓지 않았다. 성적 결합, 즉 단순한 교접 그 자체만으로도 서로간에 영적 책임을 맺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곧바로 우리 악마들은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인간들이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겉에는 사랑이란 가짜 이름표를 붙이고 책임없는 관계에 탐닉하게 했다. 이들은 ‘한몸이 되었기에 서로 정절을 지키고 선의를 가지고 돕고 사랑하는 것’ 이 아니다. 결혼생활의 결과로 주어지는 '정절'과 '선의' ‘사랑’을, 마치 결혼의 원인과 근거인 것처럼 생각했지.
5. 우리들의 업적 ; 2)'사랑했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싶다.
"이 유혹의 기술에는 이런 이점도 있다. 성적인 매력에 홀린 것뿐이면서도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하여 결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했다'는 핑계로 온갖 죄에서 도망치려 들지. 결국은 자신의 선택이었으면서도 결혼생활이 불행해지면 ‘내가 선택했으니 내 책임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저 사랑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렸을 뿐이니, 이 불행한 결과는 내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하며 합리화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예를 들어, 처자식이 있는데도 바람을 피우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때, '폭풍같이 밀려오는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이었을 뿐' 이라며 마치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끝으로 스크루테이프는 웜우드에게 당부했습니다.
"자, 앞으로 수연이가 준우와의 약속대로 결혼을 진행할지, 아니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감정을 갈망하는 감정의 노예가 되어 결혼을 파기할지 꼭 소식을 전해주렴. 진행상황에 따른 맞춤형 <지옥행 유혹의 기술>이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