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2차 가해
입원병실에서 환자가 간호사를 성추행했다는 사건이 고객상담실로 접수됐다. 병동 매니저(구 수간호사)를 통해 확인한 내용으로는 간호사가 환자에게 처치하는 동안, 환자가 간호사의 허벅지를 만졌다는 것이다. 환자도 시인을 했고 간호사는 충격으로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부모님과 상의해서 최종결정할 것인데, 현재까지는 형사고소까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재발방지를 위해서 법무팀에서 환자에게 경고를 해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 남성환자는 여성 매니저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병동으로 올라가서 환자를 만났다. 입원환자인 경우에는 병동으로 올라가서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서 별도의 상담실에서 만났다. 환자의 재발방지를 위해서 각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그런데 준비한 내용 중에서 환자가 일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저는 허벅지가 아니라 종아리를 만졌어요. 허벅지는 아니에요. 종아리예요."
각서를 작성한다고 하니 환자는 허벅지가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래서 종아리라고 주장했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그렇게 큰 차이나 있나 싶은데, 실제로 판례에서는 조금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찌 됐든 환자는 종아리라고 주장했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 병동 매니저에게 확인을 요청했더니 황당해한다. 이미 본인과 상담할 때 허벅지라고 다 이야기했었는데 지금 와서 말을 바꾼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종아리라고 우겼다. 환자에게 설명했다. 허벅지든 종아리든 그 차이가 크지 않다. 피해 간호사가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니, 진정성 있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환자는 그래도 종아리라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주장하는 대로 "종아리"라고 적으라고 했다.
이 사실을 들은 피해 간호사는 흥분했다.
"종아리가 아니라 허벅지예요. 환자도 처음에 허벅지라고 인정했었어요."
환자가 말을 바꾸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괘심 하게 생각했다.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피해 간호사는 부모님과 상의해서 형사고소를 하기로 했다. 일이 커졌다.
이 사례를 보면서 정말 답답했다. 환자가 처음에는 잘못을 인정했지만, 각서라는 구체적인 책임 단계에서는 사실을 축소하려 했다. 전형적인 가해자 심리다.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바꾼 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덜 심각하게 만들려는 시도였다. 이런 태도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환자는 몰랐던 것 같다. 간호사는 이미 성추행으로 충격받았는데, 가해자가 사실까지 왜곡하니 2차 가해가 된 것이다.
결국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있었다면 관대한 처분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작은 거짓 때문에 형사고소까지 가게 된 것이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 후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실수 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한다. 실수 자체보다 실수 후의 태도가 결과를 좌우하기도 한다
※ 성추행 사건은 예민하고 민감한 사건이다. 피해자 보호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피해자 중심의 처리가 필요하다. 재발방지를 위한 확실한 조치가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되어 아쉬웠다.
※ 말 바꾸기(허벅지->종아리)가 자기 방어권일 수도 있겠으나, 사회적 맥락에서는 '2차 가해'라는 점을 피해 가지 못할 것이다. 법적인 다툼에서는 자기 방어권이 중요할 수도 있겠으나, 반성과 사과라는 합의과정에서는 오히려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주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