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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위협했던 고객이 퇴근길에 뒤따라 와요

분노조절장애(간헐적 폭발성 장애)

by 서기

젊은 남자 환자가 고객상담실을 방문했다. 본인이 요구했던 내용들이 바로 수용되지 못하자 분노가 폭발했다. 분노조절장애 환자였다. 일상생활을 살면서도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섭다. 갑자기 상담실을 뛰쳐나가더니 로비의 안내센터에서 커트칼을 뺏다시피 가지고 와서 큰소리로 외쳤다.


"이 새끼, 죽여버리겠어~ 이리 와 ~"


모든 직원이 달려왔다. 고객상담실 책상 밑부분에는 은행처럼 비상벨이 있다. 비상벨을 누르면 은행은 경찰이 달려오지만, 고객상담실은 병원 보안요원이 달려온다. 고객상담실은 직원들과 보안요원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커터칼은 보안요원들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 과정에서 환자도 어느 정도 분노가 가라앉았다. 상담자의 불안과 분노가 가라앉았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저 순간에는 그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가끔은 헛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중상이 아닌 경상 정도로 부상을 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중상은 너무 아프고 위험하니까 안된다.) 그러면 업무 중 입은 부상임으로 공상으로 치료해 줄 것이다. 치료하는 동안에는 일을 안 하고 쉴 것이고, 병원 내에서는 영웅대접받을 것이다. 평소에는 무관심하다가 이쯤 되면 병원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그냥 허무맹랑한 영웅주의적 생각일 뿐이다.


틱낫한 스님은 "화"라는 책에서 “당신의 화를 아주 부드럽게 안아주세요. 화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 당신의 아기와 같습니다”라고 했다. 화를 억압하는 대신, 화의 본성을 알고 화를 포용하는 방법을 제시했지만. 실천하기에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상담실을 나가면 주 통로와 별개로 계단으로 빠지는 비상구가 있다. 나는 그쪽을 통해서 피신해 있었다. 흥분한 환자와 대면해 있으면 더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가 왔다.


"갔으니까 내려와~"

"확실히 갔어?"

"그래 갔어~"


상담실이 정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리로 돌아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한 모습이었다.


퇴근시간이 되었다. 보통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중년의 아저씨들로 구성된 멤버들은 바로 집에 가지 않는다. 저녁을 먹으면서 감정의 쓰레기들을 한 잔 술에 실어서 처리한다. 그런데 이 날은 다들 바쁜 일이 있어서 바로 퇴근했다. 고객상담실은 근무시간이 끝나면 바로 문을 닫는다. 이유는 짐작하시는 대로다.


동료 한 명과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했다. 횡단보도를 지나서 걸어가고 있는데, 칼로 위협했던 그 환자가 따라오고 있다. 갈래길에서 우리가 가는 길로 따라온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양손을 쳐다보게 된다.


"어? 저 사람 아까 그...(당황하면서) 설마 우리를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동료와 함께 물건을 사는 척하며 어떤 가게로 들어갔다. 환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솥뚜껑) 보고 놀란다"라고 했던가?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 한편으로는 허탈하다.


이런 상황에 자주 노출되면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여서 누적된다. 따라서, 즉시 심리적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해소시킬 수 있는 제도적 프로그램이 수반되어야 한다.






분노조절장애

분노조절장애의 올바른 의학적 용어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이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는 폭력이 동반될 수도 있는 분노의 폭발을 특징으로 하는 행동 장애로, 종종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에 의해서도 상황에 맞지 않게 분노를 폭발하는 증상을 특징적으로 한다. (예 : 충동적인 고함, 비명 또는 과도한 책망 유발)


출처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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