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이론-의사확인
환자가 피부과 외래를 방문해서 간호사에게 레이저로 점 하나 빼는데 얼마냐고 물었다. 모든 점은 같은 점이 아니다. 크기와 깊이가 다르다. 이것에 따라서 점을 제거하는 비용은 각기 다르다. 외래환자로 붐비는 대학병원외래에서 진료 없이 간호사가 그 점을 평가하고 제거하는 비용을 정확하게 알려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간호사는 일반적인 가격을 안내했다.
"점 제거는 개당 5만 원 정도입니다. 다만 점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 정확한 비용은 의사 선생님 진료 후에 확정됩니다."
이렇게 안내하면 연세 있으신 어르신은 보통 뒷이야기는 삭제하고 '점 하나에 5만 원' 이렇게 생각해 버린다. 본인의 점이 2개라고 생각한 환자는 10만 원이면 되겠다고 미리 생각했다.
며칠 후, 안내받았던 환자가 실제로 외래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진료 후 제거해야 하는 점은 3개라고 안내했다. 환자는 2개라고 생각했으나 의사는 3개라고 명확하게 판단했다. 10만 원을 생각했던 환자는 농담조로 1개는 서비스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의사는 농담으로 치부하고 점 3개를 레이저로 제거했다. 치료가 끝난 후 간호사가 15만 원을 수납하라고 안내했다. 환자는 점 하나에 5만 원이라고 했는데 왜 15만 원이냐?라고 따졌다. 간호사는 3개를 제거했으므로 15만 원이라고 안내했다. 환자는 의사가 점 하나는 서비스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의사는 서비스로 해준다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점 하나 가격을 서비스로 해주는 경우가 있었던가? 싶다.
"분명히 점 하나에 5만 원이라고 했잖아. 의사도 하나는 서비스로 해준다고 했는데 왜 15만 원을 받으려고 하는 거야?"
복잡한 외래에서 30여 분간의 고성과 실랑이가 있었다. 간호사는 보안요원을 불렀고 보안요원은 긴 설득 끝에 고객상담실로 안내했다. 고객상담실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됐다. 외래 와서 물었더니 점 하나에 5만 원이라고 했다. 점 3개 중 하나는 서비스로 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15만 원을 낼 수 없고 10만 원을 내겠다. 5만 원은 바가지 씌워는 거다. 외래에서 만들어놓은 점 가격표까지 제시하면서 설명했으나 막무가내로 설득이 되지 않았다. 15만 원을 청구하면 진료비를 내지 않겠다고 했다. 내든 안내든 알아서 하시는데 청구금액은 15만 원이라고 했다. 환자는 진료비를 내지 않고 집으로 가버렸다.
며칠 후, 진료비 납부독촉을 받은 환자가 한자가 대부분인 장문의 글을 써가지고 왔다. 병원의 15만 원 청구는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계속해서 15만 원을 요구하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오히려 반가운 마음에 법적으로 하시라고 했다.
몇 주후, 법원에서 내 이름이 피고인으로 적힌 고소장이 송달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본 고소장이었다. 돈 5만 원으로 인한 고소장이었다. 그런데 억울했다. 왜 상담하는 나를 고소하는지. 진료비를 청구하는 주체는 학교법인인데 말이다. 환자에게 전화했다. 고소를 하려면 진료비를 청구하는 주인인 학교법인 이사장에게 해야지 왜 고객상담실 직원에게 고소하느냐고 말이다. 들어보더니 이해가 되었는지 다시 할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몇 주후, 다시 고소장이 송달되었다. 이번에는 피고인이 학교법인 이사장과 상담자 두 사람이었다. 법인 법무팀에 이사장님이 피고인으로 된 고소장이 접수되었음을 알렸다. 법인에서는 협력 법무법인에 사건을 수임했고 법무법인에서는 무료 3명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5만 원의 진료비문제로 무료 3명의 변호사 선임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역사적인 사건일 것이다.
금액이 약소해서 이 사건은 약식으로 진행되었고 결과는 병원 측의 승리였다. 환자에게 전화해서 재판결과를 안내하고 15만 원의 진료비입금을 안내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환자는 15만 원을 입금했다. 이것으로 이 사건은 끝났을까?
재판에서 진 사람은 승소한 측의 변호사비를 부담해야 한다. 3명의 변호사비로 45만 원이 청구되었다. 10만 원을 내려고 했던 환자는 진료비 15만 원에 변호사비 45만 원, 합해서 6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본인의 생각보다 무려 50만 원을 더 내게 된 것이다. 이후, 환자는 법인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변호사비 45만 원은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에게 큰 부담이니 변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원내 변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법원에 가면 고소를 취미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시간 많은 사람들이 법원에서 변호사 없이 혼자 고소장을 접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고소도 취미와 여가생활이 될 수 있는가?
일상생활에서도 의사소통은 중요하다. 병원에서의 의사소통은 더 중요하다. 극단적인 경우, 의사소통이 잘못되면 사람의 생명에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과 환자, 의료진과 의료진 간의 의사소통 모두 중요하다. 분명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의사확인이 중요하다.
※ 이 아래는 안 읽으셔도 됩니다.
송신자 → 메시지 → 수신자 모델로, 정보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왜곡과 노이즈를 다룹니다. 핵심은 송신자의 의도와 수신자의 이해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피드백과 의사확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선택적 청취(듣고 싶은 것만 듣기)와 의미 왜곡(개인적 해석)이 주요 장애 요인입니다. 이 사례는 "의사소통의 실패(의사확인의 부족)가 얼마나 큰 갈등으로 번지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의사소통(의사확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 사례에서 의사확인은 3단계로 적용 가능합니다.
- 1단계(사전확인) : 간호사가 가격 안내 후 "진료 후 확정된다는 부분 이해하셨나요?" 재확인
- 2단계(진료 중) : 환자 농담에 대해 의사가 "실제로는 3개 모두 비용 청구됩니다" 명확히 선언
- 3단계(진료 후 수납 안내 시) : "처음 안내와 다른 이유를 설명드릴까요?" 사전 설명
※ 각 단계에서 "이해하셨습니까?" 의사확인 질문을 통해 갈등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 참고도서
- 의료인을 위한 의사소통, 김희동외, 2024. 수문사.
- 환자안전을 위한 의사소통, 김선아, 2021. HN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