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밀어 간호사를 다치게 한 환자의 각서

행동수정이론 ABC모델

Sep 18. 2025

만성신부전의 신장대체치료에는 복막투석, 혈액투석, 신장이식이 있다. 투석에는 복막투석과 혈액투석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혈액투석을 많이 한다. 일주일에 몇 번 정기적으로 병원에 와서 투석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일상생활과 여행에 지장이 있다. 투석환자는 심한 장애등급(과거 2급)을 받을 수 있다. 신장이식환자는 심하지 않은 장애등급(과거 5급)을 받을 수 있다. 혈액투석환자는 적게는 일주일에 2번, 많게는 일주일에 3번 병원에 와서 투석을 한다. 장기적인 투석치료에 환자들이 지치고 예민해지기도 한다.

신장투석실의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왔다. 투석실에서 항상 불만이 많고 화를 잘 내는 환자가 있는데, 이번에는 TV를 확 밀어서 그 TV가 간호사에게 부딪혔다고 한다.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충격이 있었다고 한다. 환자가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환자와 대면하는 간호사 입장에서는 환자에게 형사처벌을 하기도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기도 그렇다. 앞으로 일주일에 몇 번씩 대면해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제출한 서류확인, 현장확인, 간호사 면담과 제반사항을 검토 후 환자를 상담실로 불렀다. TV를 민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니 수긍했다. TV가 간호사에게 부딪혔으므로 폭행죄가 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환자는 자주 투석받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다고 했다. 그날은 간호사에게 어떤 것을 요청했는데 빨리 처리가 되지 않아서 화가 났는데 조절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잘못되었음을 시인했다. 함께 자리 한 아내는 더 좌불안석이었다. 이 양반이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순간적으로 화가 나면 사고를 친다고 했다. 지금은 반성하고 있다고 한다.

"처벌을 받게 되는 건가요?"

환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각서를 한 번 써보시겠어요?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화날 때마다 꺼내 보세요."

이런 상황에서 나는 당장의 처벌보다는 재발방지를 위해서 "각서"를 자주 활용한다. 병원이나 교직원입장에서도 중대한 범죄가 아니면 처벌보다는 재발방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잘못인 경우에는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사소하지 않은 경우에는 "각서"를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막연하게 각서를 쓰라고 하면 잘 못쓴다. 그래서 나는 견본을 만들어 드린다. 이대로 쓰라는 것이 아니라 참고해서 작성하라고 한다. 대부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각서의 마지막은 대략 이렇다. "... 향후 이러한 행위가 다시 이루어질 경우 어떠한 민형사상의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환자에게도 각서를 작성하게 했다. 사본은 환자가 보관하게 하고 원본은 병원에서 보관한다. 환자에게 지갑에 보관하라고 하고, 화가 날 때마다 이 각서를 보라고 했다. 환자는 몇 번이나 접어서 고이 지갑에 각서를 넣었다.

몇 달 후, 환자와 아내가 상담실을 찾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 양반 완전히 달라졌어요. 화가 날 때마다 이걸 꺼내 봐요."

아내가 환자 지갑 안에 있는 각서를 꺼내 보여주면서 말했다. 각서가 조금은 닳아 있는 듯이 보였다. 닳아진 각서만큼 환자의 모난 마음과 화도 닳아진 걸까? 환자와 아내는 감사를 표했다. 신장투석실에서 '환자분이 고객상담실을 방문하신 후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고 칭찬하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환자에게 말했다. 환자는 겸연쩍어하면서도 뿌듯해했다. 나는 각서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잘 보관하셔야겠다고 했다. 그 말에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